먼저 글에, 나는 좋아하지 않으면 사랑하기도 힘들다고 했지만, 또한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면 좋아하고 사랑하기 힘들다.
나 원, 불평등한 가사노동도 모자라서, 하다 하다 남편을 존경까지 해야 하는 거야 이젠? 하고 화를 내실지 모르는데, 그건 남편을 '우리 교수님/박사님' 등으로 부르는 '싸모님'들의 존재로 인한 오해이며, 그것에 환멸감을 느낀 사람들의 마음에 심심한 동의를 일단 전한다.
하지만 일단, 사람마다 fetish욕구가 발동하는 대상, 이를테면 매력 포인트? 도 다르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매력 포인트가 발목이냐 두뇌냐의 이유를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들 듯이, 그저 '나'의 개인 취향에 무조건 반감을 안 가지고 읽어보셨으면 좋겠고, 그래서 존경심이라는 감정에 대해 확실하게 집어야 한다는 필요를 느낀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존경한다고 하면 기본 단어는 아시다시피 보시다시피 respect, look up to someone이다.
그런데 이 respect는 존중하다는 뜻도 있다. 어떤 사람의 존재를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 그 대상의 가치를 느낀다는 appreciate라는 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리고 다시 appreciate는 또한 감사하다는 뜻으로도 쓰이므로 존경한다는 것은 '있어줘서 고맙다'는 뜻이 된다.
존중,이라는 말이 더 좋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만 골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종합 선물 세트 속에 좋아하는 고다 치즈를 가지기 위해서는 자리를 메우는 용으로 사용하는 메마른 소금 과자까지 같이 가져야 하고, 그래서 내가 누군가를 존경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 완벽해서가 아니고, 단점을 '참거나 눈 감아 주는 것도' 아니라, 그 사람의 장점을 온전히 ‘인정’recognize(not admit)하기 때문에, 그 장점을 위해 단점도 존재하는 상황을 이해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뭔가 한 가지라도 '정말 잘하는 게 있어야' 좋아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주장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림 잘 그리고 글 잘 쓰는 것도 좋지만, 뭐든 열심인 것, 착실한 것, 노래를 잘하는 것, 한결 같은 것, 심지어 밥 잘먹는 것, 모두 그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밥 잘 먹는 게 존경스러운 마음은 농담이 아니라 나처럼 저질 위장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보면 알게 된다. 무엇이 되었든 무엇 하나가 존경스럽다고 해서 누군가를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그 사람을 좋아하는 데 일조는 분명할 것이다. 다른 건 좀 아쉽지만 잘하는 건 되게 잘하는 사람도 있고, 이것저것 잔재주가 있지만 아쉽게도 되게 잘하는 건 하나도 없는 사람도 여기 있으니.
어떤 사람의 장점을 보면, 오오 멋지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선망의 감정은 admire, adore이다.
그리고 그런 존경의 감정은 저렇게 살아야지, 저렇게 되고 싶다,는 바람직한 대상을 닮으려고 노력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그런 것을 emulate라고 한다. role model을 따라 하면서 비슷해지거나 그보다 더 나아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냥 copy 하고는 다르다.
젊고 예쁜 사람을 닮으려고 노력해서 닮아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려나만 그건 어차피 불가능하고 뭔가 장기적으로 누군가 존경스러운 사람의 내면의 질 quality을 닮으려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하기야 요즘에는 성형으로 다 비슷비슷한 얼굴이 되어버린 게 현실이라지만, 아무리 nip & tuck 집고 땡겨도 중력을 막을 수는 없는지라 이대로 늙어가기로 결심한 지 오래 기도 하고. (터덜터덜 너덜너덜)
참고로 생김새가 닮은 것은 look alike이다. 누구누구를 '닮은 사람'도 누구의 look alike라고 한 단어처럼 쓴다.
She's Meryl Streep look-alike. 걔는 메릴 스트립 닮았어.
+참고로 한국인들이 칭찬이랍시고 하기 좋아하는, 누구 닮았다는 소리는 미국인들은 '웬만해서는' 별로 안 좋아하니 하지 말자.)
그런데 문제는, '존경'과 닮아 있지만 알고 보면 매우 다른 감정인 '부러움'이다.
내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존경하는 마음으로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본래는 하고 싶지도 않고 가지고 싶지도 않고 그 가치도 모르겠던 걸, ‘나도 남을 부러워하게 하고 싶다는 동기’에서 그런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은 문제다. '남부럽지 않게'라는 내가 매우 싫어하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은 심지어 시기/질투나 은밀히 그 사람이 못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질투라는 말 중, Envy는 누군가가 잘 되어서 배가 아프다는 뜻이고 Jealous는 지켜본다는 뜻과 시기한다는 뜻이 함께 있는 말이어서 약간 더 강렬한 감정이다.
+참고로, 의처증/의부증이 있는 사람들을 의심이라고 해서 suspicious 같은 말이 들어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jealous husband/wife라고 한다.
질투는 소모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얼른 자기 안의 감정을 파악해서 인정하고 바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많이 알려진 Schadenfreude샤덴 프로이데는, 남이 못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감정이다. 한국어로 고소하다? 는 말과 비슷하다. (*독일어에 온갖 뜻을 가진 단어가 많은 이유는 알고 보면 이들은 필요에 따라 조합어를 만들어내기 때문인 것 같지만. 이를테면 '사촌땅사배아파'로, 한 단어가 된 식이랄까.)
질투는 그 형태도 여러가지다. 내가 어려울 때 관심 가지고 자주 연락해서 덕담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게 너무 고마와서 잘되면 꼭 은혜를 갚아야지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가 좀 풀리고(?) 나자 연락도 없어지고 견제까지 하려는 것을 겪은 후로는 사람을 믿기가 힘들어져 버린 일이 있다. 슬픈 소식에 같이 슬퍼해주기는 뜻밖에 쉽지만 남의 좋은 소식에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은 드물다는 서글픈 사실을 그때 알았다.
아무튼, 내 것을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면 (빼앗아 간 것이라면 배 아프고 있을 일이 아니다!) 남이 잘되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고, 하다못해 기분 좋다고 밥이라도 살 텐데 왜 내가 기분이 나쁜지 이해가 잘 안 가지만, '어머 예뻐요. 본격적으로 해보세요', 하다가 실제로 일을 벌이면 '어디 얼마나 잘되나 보자'의 입장이 된다고 하고, 오늘의 팔로워가 내일의 back stabber 등을 찌르는 자=배신자,라고 하니, 뭐 그다지 드문 감정은 아닌 모양이다.
자기가 늘 가지고 싶은 거 가진 사람을 보면, 혹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하는 사람을 보면 속상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순전히 남들 눈을 기준으로 생기는 감정은 아니었으면 좋겠고, 내가 잘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남이 못되기를 바라는 감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잘되면 좋고 너도 잘되면 좋지만 걔도 잘되고 얘도 잘되고 우리 모두 잘되면 얼마나 더 좋은가.
아이고 존경은 무슨 존경, 나는 사촌이 산 그 땅 따위 하나도 안 가지고 싶어! 줘도 안 먹어! 하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괜히 엉뚱한 핑계로 싫어하는 것은 이솝이야기를 빗대 신포도 sour grape라고 한다.
혹시 주거들랑 먹을 거면서.
가령, 누가 근사한 곳에 여행 가는 사진을 보고, 아 부럽다, 고 말하는 사람이 모두 딱히 그 사람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나도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에는 분명 나는 아직 못 갔다/못 간다는 비교감이 들어가고, 그렇게 내가 못 하고 못 가지는 것에 대해 좌절감 frustration이나 bitterness을 생산하는 감정일 수 있다.
실제로 요즘 sns로 남들의 정제된 모습을 보고 자신의 삶과 비교해서 우울해지는 사람이 많다는데, 그냥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나 잘난 맛에, 혹은 못난 맛에 살면 된다.
한국말로 좋겠다, 가 '좋아 보인다'는 진심에서 나온 덕담이라면, 부럽다 얘 I envy you. 샘나네 Jealous! 보다는 야 네가 좋으니 나도 좋구나'I am happy for you' 좋아 보인다 'Looks great!' 이 적절하다.
사람들은 누군가 남들이 좋아하면 앞 뒤 재지 않고 덩달아 좋아하는 경향도 있다.
이러다가 다들 비난하기 시작하면 또 덩달아 조리돌림이 시작되는 것이 얼마나 흔한가. 좋아한 만큼 실망이 클 수도 있지만 애초에 누구를 그렇게까지 쉽게 믿고 선망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그렇게 쉽게 변심이 가능하다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럴 때는 그 감정의 반대말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아무리 내가 내 감정 하나 모르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거나, '이상하게' 슬프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자기감정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금방 밥을 먹었는데 '이상하게' 배가 고프기도 하니까.
존경한다는 느낌의 반대말이 깔본다 look down on는 거면, 존경한다는 것이 뭔가 나보다 '낫다'라고 생각해서 우러러본다는 말이겠다.
우러러보는 것 자체는 나쁠 것은 없지만, 반대말이 깔본다는 감정이라면, 사람의 ‘값어치’를 먼저 pre 판단 judge 한 데서 나오는 편견 prejudice이라는 감정에 기반한 것이므로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사람을 훌륭하다고 생각할 줄 안다고 해서 그 보다 못한, 혹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깔보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뭔가 있어 보이고, 남들이 다 존경하는 사람이니까 덩달아 그냥 미리 찌그러질 필요도 없다. 판사고 교수고 의사고 심지어 대통령이고 그냥 직업일 뿐이다. 누구를 업적이나 행위 없이 직위나 타이틀로 존경하는 것은 덧없는 일이다. 먹고 살기, 혹은 놀고먹기 바쁜데 아무나 존경할 필요 없다.
깔보다의 동의어들은 여기 참조. https://brunch.co.kr/@slsaznv/89
존경할 사람'은' 존경하는 것도 중요하고, 존경할 사람'을' 존경하는 것도 중요하다.
존경하지 않아도 돼. 그냥 인간으로 존중을 해줘
respect!
남을 내려보는 감정 중에는 깔보는 악감정 말고 얼핏 바람직한 동정 sympathy가 있다.
그런데 동감은 empathy이고 이 둘은 분명 다른 미묘한 감정이다.
다음에는 이 동정과 동감 사이를 살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