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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살 어른이 Dec 28. 2023

아저씨가 술 마시는 법

마! 흔한 일 아니겠니?

코로나 거리 두기가 해제한 후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들과 만나 송년회를 했다. 학창 시절에는 일주일 중 3~4일을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들. 하지만, 이제 마흔이 넘긴 나이가 되니 일 년에 몇 번 만나는 것도 힘들다. 코로나 거리 두기가 한창일 땐 단체 카톡방에서 서로의 안부만 묻다 오랜만에 만나 그간의 회포를 푸니 다시 철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술이 얼근하게 취하니 목청들이 높아졌고 결국 술집 사장님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한참을 술을 마시고 있는데, 퇴근이 늦어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한 친구가 있었다. 

"밥 먹었니? 뭐 시켜줄까?"

"술은? 소주? 맥주? 말아줘?"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 우린 술을 마실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너 늦었어! 삼배주!" (삼배주란 어떤 짧은 노래가 끝나기 전에 소주 3잔을 마시는 거였다.)

"게임에서 졌으니 벌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지금 생각하면 '술은 벌'이라 여기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도 뭐가 좋다고 우린 그렇게 술을 자주 마셨을까? 다른 일정이 있어 늦게 온 친구에게는 삼배주를, 술은 선택권은 없이 언제나 제일 저렴한 소주로 통일하던 우리의 술자리 분위기도 마흔이 넘으니 참 많이 바뀌었다. 


# 술을 자작하면 대각선에 앉아있는 사람이 3년간 솔로로 지낸다

"바쁘니? 안 바쁘면 내 술잔에 술 좀 따라줘"란 말을 능청스럽게 하던 때도 있었다. 술은 옆 사람이 꼭 따라줘야 하는 것이 에티켓(?)이라 배웠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학교는 술을 자작하면 대각선에 앉아 있는 사람이 3년간 솔로로 지낸다는 미신이 있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대각선에 앉은 사람의 술잔을 항상 주의 깊게 살펴보곤 했다. 이런 미신은 아마도 술에 취하더라도 옆에 있는 사람을 챙겨야 한다는 유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지금도 접대를 할때면 비슷하다. 상대방의 술잔이 비면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따라준다. 하지만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는 다르다. 개인적으로 자작을 잘하는데, 내 잔에 술을 따를 때 친구 술잔이 비어있으면 같이 따라주는 식이다. 그냥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마시는 거다. 


# 술은 남기고 일어나는 거 아냐

"막잔 하고 일어나자!" 이 말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술잔을 모두 비우고 일어난다는 의미였다. 그게 소주잔이던 500cc 맥주잔이던 무조건 술잔을 깨끗이 비우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리고 잔을 비웠는지 스캐닝하는 밉상 친구들이 꼭 한두 명씩 있었다. 술이 너무 취했거나, 배가 너무 부르다면 정말 그 친구를 한 대 쥐어박고 싶기도 했다. 술을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시는 척하면서 술을 물 잔에 뱉는 스킬은 이때 쓰면 효과적이었다. 


요즘도 친구들을 만나고 술자리를 파할 때면 "막잔 하고 일어나자"란 말을 한다. 그런데 남의 술잔에 술이 남아있는지 여부는 관심도 없다. 그냥 마시고 싶은 사람은 마시는 거다. 


# 소주는 원샷!

어릴 땐 소주는 원샷으로 마시는 것이 정석이었다. 반잔씩 꺾어 마시거나 2~3방울의  술을 남길 때면 잔이 비었는지 스캐닝하던 그 밉상 친구가

"장판 두껍게 깔았네!" 

라며 공익제보를 하곤 했다.

학창 시절 여름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방학 동안 뭘 하고 지냈는지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온 친구가 말했다.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회식을 했는데, 아저씨들 술 마시는 거 무섭더라. 반잔씩 꺾어서 마시는데, 소주를 계속 마셔!"

소주는 원샷 아닌가?라고 의아해했는데, 친구가 그랬다.

"아저씨들은 그렇게 천천히 마시면서 깨면서 마시고 깨면서 마시고 하는 거 같아!"


마흔이 넘은 지금,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면 원샷을 외치는 친구들이 없다. 하지만 테이블 주위에 쌓이는 빈 술병들은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 그냥 마시고 싶은 만큼만 마시는 거다.


# 어딜 가? 의리지~~!!

대학교가 집에서 멀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다 막차 시간을 놓치면 어쩔 수 없이 외박을 했다. 막차 시간이 가까워지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오늘은 집에 가야 한다는 친구와 어딜 가냐며 의리를 지키라는 친구의 실랑이가 있곤 했다. 마음에 드는 썸녀를 집에 못 가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친구 자취방에서 새우깡에 술을 마시자며 집에 가지 못하게 했다. 다음날이면 꾀죄죄한 몰골에 어제와 같은 옷을 입고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강의실에 들어가곤 했다. 


지금의 캠퍼스 라이프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라떼는 말이지! 술에 매우 관대했다. 공강 시간에 막간을 이용해 캠퍼스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는 건 낭만이었다.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수업에 들어가도 교수님들이 "자네 술 마셨나? 그래도 출석하려는 노력이 가상하군!"이라며 웃고 넘어가곤 했다. 


술을 마실 때면 그렇게 집에 가지 못하게 잡았던 친구들. 지금은 9시가 넘어가면 서로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좌불안석이다. 집에서 처자식이 기다린다는 핑계를 대곤 하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힘들어서다. 지금도 해가 뜰때까지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술을 마시고 싶지만 슬픈 현실이다. 그냥 마실 수 있을 때까지만 마시는 거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즐겁고 내 삶의 작은 쉼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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