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선물
"그거 봐? 재벌집 막내아들"
얼마 전까지 큰 붐을 일으켰던 재벌집 막내아들은 회귀물이다. 고졸로 대기업(순양) 오너 일가의 더러운 일까지 마다하지 않고 임무를 다하던 윤현우(송중기)가 해외출장 중 죽음을 맞이하고는 순양그룹의 재벌 3세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회귀물을 접하면 이따금 드는 생각이 있다. '다시 돌아간다면 어떨까? 다시 돌아가면 이렇게 살 거야.'라는 생각. 정확히 회귀는 아니지만, 2023년 만 나이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좀 더 어린 나이로 살게 되었다. 저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요. 일단 환호성부터 지르겠습니다. 와!
정식으로 법이 적용되는 것은 6월부터지만, 만 나이가 실행되는 올해 29살로 돌아간다. 그러니 두 번째 스물아홉을 살게 된다. 이 법이 적용되기 이전, 스물아홉 살을 앞두고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아홉수'라는 단어였다. 대략적인 느낌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뜻을 찾아보니 '아홉이 든 수. 남자 나이에 이 수가 들면 결혼이나 이사와 같은 일을 꺼린다'라고 되어있다. 성별과 상관없이 이 단어의 의미를 음미해보기로 한다.
'스물아홉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스물아홉을 한 번 치르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스물아홉은 순탄치는 않았다. 그렇다고 대단히 특별하게 안 좋은 일이 있지도 않았다. 운동을 무리하게 하다가 갈비뼈에 금이 간 것, 서른살 초에 들어야지 생각하던 요가 지도자과정을 몇 달 앞당겨서 29살의 끝자락에 들은 것 정도? 그게 삶에 대한 내 태도를 송두리째 바꿔버릴지는 몰랐지만.
아홉수라는 단어를 듣게 될 무렵 솔직히 살짝 긴장했다. '괜히 아홉수 아홉수 하는게 아닐거야'라며 길을 걸을 때도 조심, 고민할 때도 조심, 여행을 갈 때도 조심. 하지만 정작 서른 살이 되어서 아이폰 메모장에 '서른살의 일기'라는 제목의 일기장을 만들고 난 뒤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스물아홉의 일기장이 없네... 아쉽다'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컨텐츠가 대거 등장하고 나도 그 중요성을 전보다 더 인식할 무렵의 생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기록하고 필기하는 것을 너무 너무 좋아해서 다이어리를 비롯한 노트에 빼곡하게 무언가를 적었는데 이곳 저곳에 적다보니 한 곳에 아카이빙 되지 않은 아쉬움이 컸다. '서른살의 일기'를 만든 것도 종이와 볼펜을 사용한 아날로그 일기 외에, 한 곳에 모으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다.
그런데 2023년이 되고 시작부터 선물을 받다니! 그것도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스물아홉의 일기장을 말이다. 숫자 29로 쓰는 일기장이 아닌 '스물아홉'이라고 한글로 적은 일기장을 만들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 서른의 일기장에 기록할 때는 디지털 기록을 습관으로 들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었다. 습관이 잘 자리잡아 2023년 1월 1일의 쓰는 손가락은 가벼웠다. 서른의 일기장에만 200개가 넘는 이야기가 모였는데 2023년 두 번째 스물아홉의 일기장에는 얼마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쌓이게 될지.
대외적으로 나를 소개할 때 나이가 어려지는 때문도 있겠지만, 두 번째 스물아홉이 반갑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처럼 똑같은 사회 경제적인 상황이 반복돼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뀐 삶의 태도로 2023년 두 번째 스물아홉에 일어날 것들을 좀 더 부드럽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니 이왕 젊어진 2023년 좀 더 즐겁게 시작해 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