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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띠 Feb 13. 2023

이빨 빠진 호랑이 할머니

세상에서 우리 할머니를 이기는 사람이 있을까

단단한 팔뚝에 호랑이같은 눈을 가진 할머니가 누군가에게 지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세상에 우리 할머니를 이기는 사람이 있을까?


할머니는 엄격했다. 어린 나이에 가정을 이루셔서 그런지 엄청 보수적이셨는데. 할머니랑 사는 동안 어깨 밑으로는 머리를 기를 수 없었고, 반바지는 물론 7부 바지도 입을 수 없었으며, 할머니의 소원은 내가 25살 되기 전에 할머니가 정해주는 사람과 정략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아, 물론 할머니가 말하는 정략결혼에 반발했다가 횟집에서 수저로 정수리를 맞았다.



그랬던 할머니가 이제는 아이가 되셨다.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빨 빠졌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할머니의 그런 모습이 반갑다. 나에게 유독 강하고 혹독했던 할머니가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할머니가 가장 솔직해졌기 때문이다. 


세 번의 다리 수술을 마치고 재활병원에서 1달을 지내고 온 할머니가 침대로 나를 부르셨다. 침대에 걸터앉은 나의 손을 꼬옥 잡은 할머니의 얼굴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미간과 눈에 주름이 지더니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할머니가 말했다. 


"현지야, 할머니가 정말 미안해. 네가 이렇게 예쁜데... 이렇게 예쁜데 할머니가 너무 모질게 했다"


할머니의 그 말을 듣고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나는 할머니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이렇게 답했다. "그걸 이제 알았어? 그러니까 나한테 좀 잘하지 그랬어~" 그대로 할머니 침대에 누워서 손을 꼭 잡고 천장을 보는데 한 번 더 울컥했다. 이제 거동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할머니의 세상은 누워있을 때에는 천장이구나 하면서. 


정신이 또렷하실 때는 아직도 호랑이 같지만 그래도 솔직하고 너그러워진 할머니를 보는 마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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