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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 Mar 05. 2019

003

부끄러움

003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사람이라는 건 정말 치욕적인 일이다.


윤동주 시인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은 무엇에 부끄러운 것이었을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울 정도라면, 그건 역시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나는 정말 비겁해서 부끄러운 거고, 윤동주 시인은 담대한 기준에 따르지 못하는 현실 속의 자신이 부끄러운 걸 테지. 비할 수 없는 일이다. 감히 윤동주 시인의 표현을 떠올린 것이 죄스러운 밤이다.


내 목표는 한없이 단순하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정해놓은 만큼을 하는 것. 스스로 말하기에는 우스운 얘기지만 그래도 여태 나는 꽤 성실히 살아왔기에, 내가 생각한 ‘이만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못 충격적이다. 어느덧 어딜 가도 성인으로 볼 만큼 살았는데, 아직도 나한테 놀랄 게 있다는 사실 자체 또한 충격적이다.

어찌 되었든 지금의 나는 내게 부끄럽다. 부끄러움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부끄러운 내가 부끄럽고, 이토록 부끄러움에도 한 발을 내딛지 못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자기 자신으로 인한 치욕감은 나를 무척이나 작게 만든다. 이제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


요즘은 내 인생의 주인공은커녕 조연도 아니고 엑스트라로, 그 중에서도 지나가는 사람1로 지내고 싶다. 영화에는 엑스트라도 꼭 필요하니까 비유가 부적절한가. 나는 적당히만 내 인생에 필요한 사람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결코 자랑스러운 건 아니지 그래도 사실이다. 나는 요즘 들어 내 인생이 무겁다고 느낀다. 그게 오롯이 내 것이라서 그렇고, 아무도 원망할  없고 아무에게도 떠넘길 수 없어서 더 그렇다. 되는 대로 살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되는 대로 살고 싶어졌다. 지난 좌절의 경험은 한 발을 내딛기가 힘들게 만들고, 한 발조차 내딛지 못하는 나는 도리어 지난 좌절을 미처 다 떠나보내지 못한다. 악순환인 걸 알면서도 그 한 발이 무척이나 무겁고, 그래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한껏 부끄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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