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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an 28. 2021

시골이 뭐가 좋아서 남편과의 생이별

3편| 우린 이렇게 살기로 했다.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밖에 추워?” 물으면

 “시골보다는 덜 추워. 거긴 영하 20도 야”하는 대답이 날아온다. 이 남자 나의 시골행에 여전히 불만이 있는 걸까?


 하나부터 열까지 나에게 다 맞춰주던 남자. 우리의 결혼 생활은 대체로 원만했다. 시골 가서 살고 싶다는 나에게 남편은 은퇴 후 그 꿈을 이루어 주겠다고 했었다. 

 "은퇴까지 못 기다려. 지금 가자"

 나의 진심을 투정으로 받아들인 남편은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네가 그런 마음이구나. 육아가 많이 힘들지? 주말에 바람 쐬러 나갈까?" 하며 모범 남편 대사를 날리곤 했다. 


 우리 남편은 전형적인 도시 남자다. 도시에서 태어나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집-학교-집-학교만 반복하는 학창 시절을 보냈고 거뜬하게 대학에 진학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다. 나 같은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과 똑같은 유형으로 자녀를 키웠을 사람이다. '보통'이라는 단어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우리 남편! 그런 그에게 나는 좀 많이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감정적이고 완급조절이 잘 안 되는 경주마 스타일이니까. 우린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첫 만남에서 그는

 "전 너무 정석이고 지루한 삶을 살았어요. 돌발적인 이벤트가 생기면 재밌을 거 같아요"라고 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화들짝 놀라

 "어머 얘! 너 임자 만났구나!" 생각했다. 내가 그날 너무 참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던 탓일까 그는 나를 자신과 같은 과로 봤다가 만날수록 기괴한 나의 특이점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그에게 우리 아버지는 경고했다.  

 "내 딸은 보통이 아니네"

 "알고 있습니다."

 훗! 남편은 그때 다 알지 못했다.


 시골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여러모로 여건이 되지 않으니 내 가슴은 타들어갔다. 장난감 코너에서 드러누워 떼쓰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남편 마음이 동해서 그가 스스로 시골행에 열을 올리게 될까? 나는 귀농귀촌 모범사례를 찾아서 남편 카톡으로 보내주곤 했는데 그걸 눈치챈 구글이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전원일기를 보여 주었다. 

 맙소사! 전원일기는 불과 2~30여 년 전의 이야기인데 지금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게 구닥다리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살림을 부수는 장면이 간간히 나왔는데 그 부부는 사실 사이가 매우 좋은, 현재까지도 잉꼬부부로 회자되는 '수남이네', '복길이네'다. 주먹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데 남편과 한 이불 덮고 자는 수남 엄마와 복길 엄마를 보면 나는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또 농사지어서는 자식 공부시키기 힘들어서 겨울 한때는 서울 부잣집에 식모살이 가는 에피소드나 빚에 못 이겨 야반도주하는 가족 에피소드에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아이를 재워놓고 전원일기 한 두 편 보다 스르륵 잠든 날은 다음날 남편을 붙잡고 전원일기 이야기를 쏟아 놓게 되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 시절에 결혼생활을 하지 않아 다행이다. 나는 지금의 삶에 무척 감사한다."였지만 남편은 "그걸 또 봤어? 그렇게 시골에 가고 싶어?"하고 동상이몽을 했다. 남편의 착각에 내가 손해 볼 건 없지. 남편은 아직도 내가 시골에 너무 가고 싶어서 전원일기로 마음을 달랬다고 알고 있다. 

 

 그러다 친구네 부부가 시골에 멋진 전원주택과 포도밭을 사게 되었다. 교사인 친구는 귀촌을, 직장인이던 친구 남편은 포도생산자로 귀농을 하게 된 것이다. 친구의 계약 소식이 뛸 듯이 기뻤던 나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제 거점은 거기다. 친구네 집 주변으로 땅을 뒤져보자"

 시골이면 어디든 좋다는 마음은 싹 사라지고 친구네 집 인근의 땅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범위가 좁혀지니 목표를 이루기라도 한 듯 기분이 좋았다. 둘째가 100일이 되던 무렵부터 우리는 자주 친구 집에 갔다. 그때마다 우리 부부는 동상이몽. 나는 시골이 간절했지만 남편은 교외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이직할 직장만 있으면 바로 사표 낼께"

 집 지을 땅에 꽂혀있는 나에게 남편은 직장부터 구해달라고 했다.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직장은 당연히 없지.   


 시골은 남자보다는 여성 일자리가 더 많은 편이다. 주변에 남편 직장문제를 고민드리면 남편 말고 내 일자리를 알아봐 주시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적게 벌어도 내가 돈을 벌어올 테니까 걱정 말고 사표 써. 텃밭에서 허락하는 만큼만 먹어도 우리 4명 굶지는 않을 거야. 교육비가 드는 것도 아니니까 충분히 살 수 있어"

 그렇게 입을 놀리던 때를 떠올리면 너무 부끄럽다. 내가 철없는 소리를 자꾸 떠드니까 남편은 가장으로 경제활동을 놓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더 생겼을 수도 있겠다. 


 돈벌이 문제로 남편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남편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강력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시골행을 막는 가장 단단한 걸림돌이 된다. 그는 단순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을 넘어서 가족에게 윤택한 삶을 제공하고 싶어 했다. 시골에서 일자리는 구할 수 있겠지만 도시에서만큼 벌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남편에게는 공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우린 항상 원점으로 돌아오는 대화를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서로의 차이를 좁힐 수 없었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이해가 되었기에 강력한 어필을 하지 못하고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대화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마을에서 집을 내어주시고 군청에서 공사까지 해주시는 행운이 우리를 찾아오게 되면서 우리 부부는 새로운 삶의 형태를 찾게 되었다. 100이면 100명이 다 말린다는 주말부부. 남편을 도시에 둔 채 나는 아이 둘을 데리고 시골로 가기로 했다. 눈물까지 보여가며 괴로워하던 남편도 이제는 마음 정리가 되어서 솔로 라이프의 설렘에 휩싸여있다. 


 오랜 시간 남편과 동상이몽 해왔지만 이제는 일심동체의 결론을 보았다. 과정에서 의견 차이는 이제와 얘기할게 못 된다. 내 쪽에서 목을 맨 시골행은 맞지만 최종 결정은 부부가 같이 내린 것. 결정을 내린 이상 양보했다거나 맞춰줬다는 비겁한 말을 빼고 앞으로의 책임을 함께한다. 그렇게 우린 주말부부가 되기로 했다. 


 이제 집만 잘 고쳐지면 된다. 시골 기온이 영하 20도라는 소식은 내 기를 꺾기 위함이 아니다. 진짜 집이... 단열이... 수리만이 살길이다. 






4편도 꼭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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