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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Aug 18. 2019

영화, 우리의 20세기, 2016

20th century women, 20세기의 여자들

#우리의20세기

오랜만에 가슴 촉촉해지는 휴머니즘 영화를 만났다.
지나온 20세기 인물들이 어떤 시대를 살아오고 그 속에서 사랑과 행복을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영화 보는 내내  잔잔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영어 원제는 20th century women(20세기 여자들)이다. 제목처럼 여자들이 상황을 끌고 가고 남자는 그에 약간은 휘둘린다는 느낌으로 참여된다. 점차로 많은 여성들이 사회 경제적 한 동력으로 세력을 형성하며 등장하면서 세상의 편견과 갈등을 마주하게 되어 그 해결의 당당한 주체로 활동을 개시하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낭만 가득한 아날로그 시대의 말미를 장식하는 극단적인 여성 해방의 물결이 넘실대던 시기 말이다.
전위적인 예술, 하드 록, 망가지는 춤, 모든 속박과 억제의 타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표출하고자 사용하는 언어(태연하게 사람들과 식사 자리에서 “난 멘스 중이야”하기.. 이게 엄청 중요한 거지! 그 당시만 해도)와 장식 소품들 즉, 붉은 머리 염색, 빨간 셔츠, 보라색 스타킹, 스타일리시한 담배 피우기, 적극적인 성적 탐색, 오르가슴 추구, 페미니즘의 태동, 공동체 생활, 생활 밀착형 예술 활동 등등이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을 전개하기 위해 등장인물 각자가 자기소개를 내레이션 하며 영화는 진행된다. 일종의 옴니버스 영화 같지만, 그렇게 각 인물별로 끊어지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의 다층적인 접촉면을 통해 이해력을 늘려 나가기 위해 추가적으로 계속 인물을 늘려가는 방식이다. 사람이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면을 넓히게 되면 갈등도 빚어지지만 자기 세계 또한 계속 확장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나 남들의 세계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이해하고자 했던 자신(도로시아)은 정작 자신의 세계가 빈약하고 보잘것없고 흘러간 옛 노래처럼 무가치하다고 여기고 자신을 열어보이지 않아 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의외로 새로운 세대에겐 자신 또한 매우 색다르고 어린 세대가 결코 경험하지 못할 이전 시대를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온 타임캡슐로 중요하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짐을 알게 된다. 어쩌면 지금 ‘레트로’가 유행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들은 다 각각이 자신이 제일 쓸모없는 인간처럼 여겨진다는 느낌에 시달리는 건 사실인 듯하다.



그 중심인물은 사람들과의 모임과 대화를 중시하는 셰어 하우스 주인 도로시아(아네트 베닝)이다. 그녀는 싱글맘으로 이제 15살 아들 제이미(루카스 제이드 주먼)를 키우기에 역부족이라고 생각하며 입주민 애비(그레타 커윅)와 제이미의 어릴 적부터의 여자 친구 줄리(엘르 페닝)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제이미는 새로운 세상에 갑자기 내던져진 상태가 되고 아직 이해하기 힘든 좀 더 나이 든 사람들의 세상을 이해하고자 애쓴다.

아네트 베닝이 사려심 깊은 눈매로 각 세대와의 경계에 서서 그들 하나하나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어딘가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우며 미소 짓는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엄마와 아들과의 관계란 절대 만만치 않고 어쩌면 가장 좋은 해결 방식이 서로를 침해하지 않을(어쩌면 절대 이해할 수 없기에) 일정한 벽을 사이에 두고 형식적이나마 모자지간의 정을 쌓아가는 게 최선이지 싶어 진다. 하지만 그녀는 모두와 함께한 노력 덕분에 다 함께 승리했다. 진흙탕 속 누군가를 구하려고 나서는 순간 나 또한 그 진흙탕 속에서 뒹굴게 되는 게 사실인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 상대의 입장을 진실로 이해하고 그 입장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랴! 내 입장에서 최선인 것이 절대 상대에게 있어 최선이 아니었음을 얼마나 많이 경험해 왔는가!
그리고 능청스러운 19금 대사들을 내뱉는 엘르 페닝의 나른하고 심드렁한 연기를 볼 수 있고, 심리상담업을 하는 엄마의 끊임없는 심리 탐색을 당하며 살다가 엄마의 히스테리로 독립해 그곳에 입주한 아비 역할을 맡은 그래타 커윅의 연기와 온몸 전체는 그 당시 뉴욕에서 예술 대학을 나와 잡지사 사진기자로 일할 정도의 지성을 갖춘 여성들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하게 해주는 실험정신 가득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즐겁다. 이 모든 독특하고 독립심 강한 여성들과 함께 살며 제이미는 실험실 쥐처럼 매일같이 이 여성들의 거침없는 쓰나미에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결국 이를 극복하고 더 나은 자신으로 성장한다.  “난 엄마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마디에 그 모든 엄마의 시름을 단번에 잠재운 여리고 착한 아들 역 제이미 역의 루카스 제이드 주먼은 알고 보니, 넷플릭스가 제작한 ‘빨강머리 앤” 시리즈의 길버트 블라이드였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영화를 보고 나면 뭔가 달콤 쌉싸름한 맛이 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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