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영어로 말하고 쓰세요!
"일단 단어부터 외우고 말하려고요."
"그래도 기본적인 문법은 알아야 쓸 수 있지 않아요?"
"아직 완벽하지 않은데, 틀린 말이 굳어질까 봐 걱정돼요."
한국 학습자들은 영어로 말을 '못'하지 않는다. '안'하는 것뿐이다. 말은 어떻게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입을 떼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수천 명의 학생을 관찰한 결과 말을 방해하는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준비, 준비, 준비! 그놈의 준비. 최소한의 단어를 암기하지 않았다, 기초 문법을 숙지하지 않았다, 등. 여러모로 준비가 안 됐다고 주장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나름 영어 학습법 책도 읽고, 학원도 여러 군데 전전했다. 유튜브에서 본 언어 학습 이론을 들먹이며, '인풋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학생도 있다. 계속 읽고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이 터질 거라는 주장이다. 결국 속뜻은 영어로 말할 준비가 안 됐다는 이야기다.
틀렸다.
지금 바로 말해도 괜찮다. 당장 써도 문제없다. '준비'란 벽을 무너 뜨리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 준비는 허상이다. 왜 특별한 준비 없이 바로 말해도 괜찮은지, 왜 단어와 문법을 갖추지 않고도 아웃풋을 해도 상관없는지에 관해 알아보자. 다음은 내가 생각하는 3가지 결정적인 이유다.
첫째, 완벽한 때는 오지 않는다.
시험영어는 현재 내 영어 실력의 좌표를 알려준다. 토익 850점, 오픽 IH, 수능 2등급으로 내 영어 실력을 점수화한다. 그러니 토익 750점에 비해, 오픽 IM과 비교해, 수능 3등급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전 영어는 그럴 수 없다. 상대가 나보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지 수치로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험 점수를 일정 이상 받아야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영어 스피킹 티켓'이 있어야만 말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영어 공부를 오래 해도, '바로 지금이야, 이제부터는 폭발적으로 말해도 괜찮아'라는 순간이 올까? 14년간 매일 영어를 공부하는 동안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영어로 말하고 쓰는 데, 누구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다. 완벽한 순간은 오지 않으니까.
둘째,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영어 공부를 하는 동안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질문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영어로 어떻게 말할까?'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멈춘 순간 '수동적'으로 영어를 배우게 된다. 영어 공부 대부분의 시간을 읽기·듣기에 쏟는 사람은 이 질문을 하지 못한다.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 타인의 말과 글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니, 내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평소에 어떻게든 영어로 말하고 쓰기를 시도한 사람은 다르다. 이럴 때 어떤 단어가 찰떡인지, 어떤 문장 구조를 써야 잘 풀리는지, 어떤 문법이 오해를 막는지 늘 궁금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니 같은 말을 듣고, 같은 말을 읽어도 수동적인 사람보다 훨씬 영어를 잘 흡수한다. 또한 받아들인 영어를 '내 영어'로 길들이게 된다. 모든 주제에 유창한 사람은 없다. 내가 필요한 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영어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이다. 그 필요한 말은, 내가 써봐야만 알 수 있다.
셋째, 말과 글은 게임의 룰이 다르다.
인풋(읽기, 듣기)의 룰과 아웃풋(말하기, 쓰기)의 룰은 다르다. 다른 규칙이 필요한 다른 게임이다. 듣기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기에 필요한 스킬은 따로 있다. 내 입, 턱, 혀를 움직이며 실제 단어를 발화하는 스킬, 문장의 처음과 끝을 머릿속에서 완성하지 않은 채 덩어리 별로 입을 떼는 스킬, 상대방의 영어를 이해하며 동시에 내가 할 말의 키워드를 떠올리는 스킬 등이 요구된다. 상당히 복합적이다. 아무리 읽고 들어도 이런 스킬이 '저절로' 갈고 닦이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직접 말하지 않고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스킬이다. 그러니 읽고 들으면서 동시에 말하고 쓰자, 제발!
결국 영어 말하기와 글쓰기는 경험이 쌓여야 잘하게 된다. 경험치가 전부다. 물론 경험치를 쌓는 과정에서 반드시 실수할 수밖에 없다. 영어로 할 말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영어로 말할 상대가 없다는 변명도 할 게 뻔하다. 끝에 가선 '준비'가 안 되었다며 다시 단어와 문법 뒤로 숨게 될 것이다. (그 안락한 인풋의 세계로!) 하지만 실수를 건너뛰고 버걱거림을 생략하고 못난 나를 마주하지 않고서는, 영어로 말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깨진 만큼 늘고, 까인 만큼 성장한다. 완벽한 때는 오지 않고, 내게 필요한 말은 나만 알고 있다. 말과 글은 읽고 듣기와 다른 게임이다. 그러니 지금 말해도 괜찮다. 당장 써도 다치지 않는다. 당신은 이미 말하고 쓸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