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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비맘 Jul 31. 2020

2013.03.19 너를 처음 만난 날

신당역에서 만난 손바닥보다 작던 솜뭉치 토끼

  그 날은 원래 코스가 아닌 다른 코스로 내가 과외를 하던 돌곶이역을 가고 있었다.

돌곶이역에서도 걸어서 20분이 넘게 걸리던 곳.

내가 살던 외대앞역에서 이사를 온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과외를 그만둔다 말하지 못하고 1시간 반이나 되는 거리를 매번 2번의 환승을 거쳐 이사 간 신대방역에서 돌곶이역 인근 과외 장소로 가는 길이었다.

기존의 코스는 2호선을 타고 신도림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외대앞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과외하는 장소로 가는 코스가 가장 빠른 코스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날따라 지도 어플은 다른 길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선택한 코스는 2호선을 타고 신당역에서 내려 6호선을 타고 돌곶이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는 코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평소 신도림역을 지날 때면 재미있는 구경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토끼 파는 할머니'가 데리고 오는 바구니 속의 아기 토끼를 구경하는 일이었다. 작고 작은 토끼 5-6마리를 항상 작은 바구니에 담고 뽈뽈 걸어 나가는 아이들을 한 손으로 우악스럽게 다시 잡아채서 다시 바구니로 집어넣기를 반복하던 할머니.

80세는 족히 되셨을 거 같은 할머니는 항상 거기서 구경을 하면 한 마리에 15000원이라면서 얼른 한 마리 사가라고 다그치고는 하셨다. 나는 그 작고 작은 토끼가 귀여워 충동적으로 데려 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가도 좁은 원룸에서 그것도 생명이라는 것을 책임질 용기도 당시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던 내가 감당할 자신도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늘 10분이고 20분이고 쳐다만 보다가 오기가 일쑤였다.


그날은 하필 신도림역에서 환승을 하지 못하고 신당역에서 환승을 해야 하는 바람에 며칠 전 신도림역에서 환승하면서도 보지 못한 토끼 할머니를 아니 그 할머니가 데리고 온 토끼를 못 본 다는 생각에 조금은 속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2호선을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신당역에서 다시 6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길고 긴 길을 지나야 했다. 친구와 함께 그 길을 지나고 있는데 6호선으로 갈아타는 에스컬레이터 바로 앞에 어쩐지 낯이 익은 사람이 보였다. 그 할머니였다.


본능적으로 다다다 달려가서 보니 평소 데리고 오던 하얀 토끼들 사이에 새로운 2마리가 보였다. 하나는 노란 토끼였고 하나는 갈색과 흰색이 섞인 토끼였다. 갈색과 흰색이 섞인 토끼는 연신 바구니를 이탈하기 바빴고 할머니는 그 아이를 다시 잡아채서 바구니에 넣기 바빴다. 그 아이를 잡아채서 넣으려고 하면 다른 아이가 바구니를 튀어 나가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아이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어? 신도림역에 계시던 분 아니세요?"


하고 나 혼자 반가워하며 물으니 누군가가 역무원에게 신고를 해서 신도림역에 있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신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 나에게 한 마리 가져가라고 2만 원인데 15000원에 주겠다고 회유를 하셨다. 그전에 신도림역에서 15000원에 파는 걸 봤는데 나에게 은근 가격을 올려 흥정해 주는 척 토끼를 팔려는 심산이었다. 나는 평소 지갑에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는 터라 충동적으로 사려고 해도 살 현금이 없었고 할머니는 카드결제를 하시지 않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내 지갑 속에 하필이면 그날은 2만 원을 현금인출기에서 찾아둔 터였다. 친구가 과외하는 장소까지 함께 가주기로 했고 내가 과외하는 곳은 나와서 1분만 걸으면 시장이 길게 있었는데 거기서 무언가를 사 먹거나 하려면 늘 현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과외를 기다려준 친구와 그 시장에 가서 포식을 할 요량으로 미리 현금을 찾아뒀던 것이었다. 할머니가 자꾸만 흥정을 걸면서 15000원에 한 마리 데려가라고 했는데 새로 온 노란 토끼와 갈색 흰색 섞인 아이가 눈에 띄었다.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고 연신 토끼들의 움직임을 쫓는 나를 눈치챘는지 할머니가 노란 아이를 들어서 '이거 가져가~ 이것도 15000원에 해줄게'라고 딜(deal)을 했다. '웅... 키울 마음이 없는데....' 그런데 지켜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귀엽다고는 하는데 누구도 사는 걸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궁금한 마음에 '그런데 얘네는 안 팔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라고 하니 할머니는 너무도 태연하게 커지면 농장으로 보내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암놈이면 새끼를 빼면 되고 수놈이면 토끼고기가 되기도 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말을 나에게 건넸다. 그러자 갑자기 알 수 없는 측은지심이 생기면서 이 녀석 중 한 마리는 내가 구해줘야겠다는 어설픈 동정심이 생겼다. (사실 그런 곳뿐 아니라 어디에서건 동물을 사는 행위는 불쌍한 동물을 만드는 강아지 공장이나 토끼농장에 일조하는 일이라 절대 동물을 돈을 주고 사서는 안된다는 걸 뒤에 알게 되었다.)


"저 갈색이랑 흰색 섞인 애는요?"




아주 뽈뽈 도망 다니기 바쁜 호기심이 많아 보이는 갈색 흰색 섞인 아이가 자꾸만 눈길이 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다른 토끼들보다 월등히 예쁘고 눈이 가는 외모였다.


"아 걔? 걔는 3만 원인데 내가 2만 원 해줄게!"

"네? 그전부터 토끼 파는 거 봤는데 다 15000원이라고 하시더니 왜 얘는 2만 원이에요? 그냥 15000원 해주세요"


평소 물건을 살 때 물건값을 잘 깎는 나는 살 마음이 100%도 아니었는데 할머니가 부른 토끼 값에 나도 모르게 흥정을 하고 있었다. 흥정을 해서 물건값 깎는 걸 잘하던 내 습관이었는지 그 애가 내 가족이 될 운명이라 그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흥정을 하는데 할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걘 안돼. 걘 3만 원에라도 팔려. 2만 원에 줄 때 그냥 가져가"


15000원에 깎고 할머니가 주는 정체 모를 5000원짜리 밥을 사면 딱 2만 원인데, 절대 깎아주지 않는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지갑 속 전 재산을 내밀었다.

흥정을 하다 죽어도 양보하지 않는 주인을 만나면 그냥 안 사고 말지 하고 그냥 포기할 때도 있는데 왜 끝까지 내가 살 맘도 없던 토끼 값을 흥정하고 흥정에 실패했음에도 그 아이 값을 덜컥 지불하고 말았는지 그 당시에는 아이러니했지만 그것도 어찌 보면 인연이 아니었을까 하고 훗날 생각했다.


그렇게 그 아이는 분홍색 물방울무늬 무늬 종이백에 선물 포장에 할 때 같이 넣는 잘게 잘린 종이와 함께 담겨 우리에게 넘겨졌다.





작지만 용감했던 아이는 종이백 안에서 쫄지(?) 않고 두발로 서서 잡히지 않는 균형을 잡으며 요리조리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느라 바빠 보였다.



마치 물건처럼 살아있는 토끼를 건네받고 과외를 하는 길 내내 같이 있던 친구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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