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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 Mar 03. 2019

무엇이 그를 미치게 하는가

영화 <폭스캐처 (Foxcatcher, 2014)>

※ 스포일러 포함



  <폭스캐처>는 예고편이나 시놉시스 만으로는 쉬이 짐작하기 어려운 영화다. 누가 진짜 주인공인지, 실화 사건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본 나는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추측할 수 없었다. 참, 감도 되게 없지. 주인공이 채닝 테이텀인 줄 알았던 중반까지, 나는 동생이 질투 때문에 형을 살해할 것만 같았다. 살해하기까지, 세 남자의 관계가 점점 치닫는 모습을 보여줄 줄 알았다. 아니, 아니었다.




01. 싸늘한 화법


 <폭스캐처>는 그 어떤 과잉이나 친절함도 없이, 그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내가 본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그 어떤 영화보다도 무뚝뚝한 화법을 가졌다. 무뚝뚝함을 넘어, 싸늘하다. 구차한 설명 따윈 없다. 캐릭터들은 그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내뱉지 않는다. 총구를 내밀던 그 순간에도, 듀폰은 시시콜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가 총을 발사하기 직전 내뱉는 말은 단 한마디, '나한테 불만 있어?'뿐이다. 영화는 그들의 감정을 떠벌리느니, 입을 꼭 다문 모습을 보여준다. 격정적인 BGM을 깔아버리느니, 적막한 풍경을 택한다. 그래도 우린 각자의 방법대로 느끼고 읽을 줄 안다, 그들의 온전치 못한 내면과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그 불안함을.

 시끄럽게 세뇌시키는 콘텐츠들 속에서, 나는 이 화법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관객은 감정 고자가 아니다. 제발, 내 감정은 내가 알아서 하게 좀 내버려 둬 주길.



02. 한 남자의 스토리


 <폭스캐처>는 '살인 사건'에 대한 스토리도 '관계'에 대한 스토리도 아닌, '존 듀폰'에 대한 스토리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레슬링 연습장에 듀폰의 어머니가 찾아온 씬이다. 그 안에 쌓여있는 콤플렉스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씬이자, 그가 왜 그렇게 히스테릭한 태도로 레슬링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는 씬이었다.  

 

 형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하며 콤플렉스와 질투로 슬럼프를 겪는 마크를, 데이브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며 감싸 안는다. 하지만 이런 가족이 듀폰에겐 없었다.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어머니를 둔 듀폰은 성인이 되지 못한 채 미성숙하다. 레슬링 트로피를 건네는 아들 앞에서 장난감 기차 이야기를 꺼내는 어머니. 그리고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 척하는 듀폰의 모습은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어머니는 끝끝내, 아들을 인정해주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버린다. 듀폰의 응어리는 그렇게 풀리지 못하고 뒤틀려버린다.



03. 조용히 장악하는 연기


 스티브 카렐. 나는 이 배우가 주,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를 여러 편 보긴 했지만 한 번도 그를 인식해 본 적이 없다. 영화를 보며, 많이 본 그 배우인데 어디에서 나왔더라, 하고 앉아있었다. 지금 그의 필모를 훑어보니, 그럴만하다. 영화 선택하는 기준이 '맡아보지 않은 캐릭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것도 대부분 코미디 장르여서, 이 영화에 그를 캐스팅을 한 사람의 눈썰미를 극찬하고 싶다.

 채닝 테이텀이 힘을 뺀 채 캐릭터에 꼭 맞는 연기를 하고 마크 러팔로가 영화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연기를 한다면, 스티브 카렐은 영화를 장악한다. 영화 전반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은 연출의 몫은 물론이요, 스티브 카렐 자체의 에너지도 큰 몫을 차지한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말을 풀어주던 모습, 그리고 데이브를 죽인 후 집으로 돌아가며 보여준 일그러질 듯 말 듯한 얼굴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했다.     

 


04. 탄탄히 쌓아가는 감정


 <폭스캐처>는 '실화'를 다룬 영화가 걸려들기 쉬운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사건 그대로를 지루하게 나열하지 않으며 단 한 마디, 단 한 씬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앞의 씬은 뒤에 가서 어김없이 유기적인 영향을 준다. 몇몇 예를 들자면, 듀폰이 마크에게 어머니가 돈으로 친구를 샀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씬은 영화의 결말 즈음 같은 장소에서 듀폰이 혼자 술을 마시는 씬에서 그의 고독함을 더해 준다. 그리고 영화의 제일 마지막, 마크가 격투기 선수가 된 모습은 영화 중반에 레슬링 동료가 격투기 선수가 된 다른 레슬링 선수를 비참하다고 하던 씬의 영향을 받는다. 이런 시나리오와 베넷 밀러 특유의 안정적인 연출력. 여기에 배우의 힘까지 더해진 덕분에, 캐릭터 하나하나에 납득을 하며 스토리에 끝까지 집중할 수 있었다.


 <머니볼>에서 <폭스캐처>까지 이어진 만족감에, 베넷 밀러의 다음 영화가 몹시 궁금하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다작을 하지 않는 감독인데, 이제 부디 다작의 세계로 건너오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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