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인 Mar 13. 2019

아버지는 복숭아 파이를 굽는다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 영화 <레이버 데이(2013)>

※ 이 글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폐쇄적인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소심한 소년. 이 어두침침한 집안에, 도망 중인 탈옥수가 끼어든다.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이 이번엔 스릴러를 만들었나, 싶은 순간. 뜻밖에도 이 영화는 심장 쫄깃한 피비린내 대신 달달한 복숭아 향을 풍기기 시작한다.



 모자를 인질로 잡은 탈옥수. 그는 모자가 사는 집 곳곳에 망치질을 하더니 함께 복숭아 파이를 만들고 소년과 야구를 한다. 탈옥수와 인질이 손을 모아 복숭아 파이를 만든다니! <레이버 데이>는 농익은 두 배우와 연출의 힘으로 그 오그라듦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간다.   


  탈옥수는 어머니와 소년에게 남편, 그리고 아버지 판타지를 그대로 충족시켜 준다. 숨 막히던 집안 공기가 끈적한 온기로 바뀌는 동안 탈옥수를 향한 세상의 추격은 계속된다. 집안에 퍼지던 복숭아 파이 향처럼 그들도 이제 단내 나는 삶을 살았으면 좋으련만. 탈옥수는 결국 체포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된 탈옥수는 철문을 나선다. 철문 앞엔 그처럼 머리가 하얗게 센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다. 셋이 함께 했던 짧은 시간. 그 기억으로, 어머니와 소년은 기나 긴 시간을 견뎌냈을 것이다. 찰나의 기억이 평생을 사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

 성인이 된 소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이 파티시에가 되었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소년이 구운 파이를 함께 나눠 먹을 것이다. 완벽하고 온전한 가족이 되어.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이 그를 미치게 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