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해서 더 좋아: 걸을 맛 나는 국내 여행 3
파워 워킹이 간절한 순간이 있다. 채 삭히지 못한 마음 깊은 곳 앙금을 꺼내, 걸음걸음마다 사뿐히 즈려밟고 싶은 날. 그런 날엔 어디로 떠나면 좋을까? 등산은 내게 여행이 아니라 힘든 운동이오, 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여행지만 골랐다. 짧은 거리는 아니되 비교적 잘 닦인 완만한 고갯길로, 걸을 맛이 절로 나는 곳이다. 쉬엄쉬엄 이 길을 걷고 걸으며 잊고 싶은 '그것들'을 사뿐히 즈려밟아 보자.
지리산 3대 봉우리 중 하나인 노고단. 한국의 알프스라 소개해도 될 만한 탁 트인 절경을 품고 있다. '지리산'이란 말에 난이도를 우려할 수 있지만, 등산이 아닌 하이킹 정도의 코스이니 안심하시길. 운동화만 신는다면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다. 구례 터미널에서 노고단행 버스를 타고 성삼재 휴게소에 내린다. 성삼재 휴게소에서 노고단까지 왕복 약 6km, 2시간 소요.
특히 기억해야 할 점은, 2019년 올해부터 연중 내내 탐방예약제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정해진 기간에만 미리 예약해야 하고 다른 기간엔 자유 입장이었으나, 변화가 생긴 듯. 아래 정보를 꼭 미리 체크하시길.
위치: 전남 구례군 산동면
문의 전화: 지리산국립공원남부사무소 (061-783-9106, 061-780-7700, 061-783-1507)
탐방 예약: https://reservation.knps.or.kr/information/trailInfo.action?trailCd=3
문경새재는 스케일 있는 운치가 있다. 곳곳에 역사의 체취를 묻히며 자란, 성숙한 풍광이 있는 곳. 그곳이 문경새재다. 흙길이라 발이 편안하며 1 관문부터 2 관문, 3 관문까지 통과하며 걷는 성취감 덕분에 덜 지루하다. 많은 사극 촬영지로 사용되고 있는 오픈세트장이 있어 소소한 재미도 있는데, 특히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했던 <킹덤>의 주요 촬영지이기도 하다.
1 관문~3 관문 거리 9.1km. 3~4시간 소요. 3 관문까지 걷는 것이 목표라면, 자동차는 가져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가려면, 이 거리와 시간을 2배로 잡아야 하기 때문. 차가 없으면, 3 관문을 지나 조령산 자연휴양림을 넘어 고사리 마을로 간 다음, 수안보행 버스를 탄다. 수안보 시내에서 시외버스 탑승.(버스 정보 미리 확인 필수)
탐방로 상시 개방
문경새재 관리 사무소: 054-571-0709
위치: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문경새재 초입을 지나 1 관문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이 생생하다. 든든한 어깨를 양쪽으로 크게 펼치고 있는 그 스케일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아래 사진부턴 1 관문과 3 관문 사이의 풍경.
10월의 끝에 갔던 문경새재. 단풍 끝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말갛게 익은 신선한 단풍을 좋아하는 나인지라, 아쉬움이 쉬이 가시질 않더라.
나무 사이사이로 늦은 오후의 마지막 볕이 한껏 내려오고 있었다. 저 살굿빛 볕을 등에 담뿍 등지고 앉아,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이어폰을 꽂고 맘껏 맘껏 여유 부렸다.
숲길 한쪽으론 물고기들이 사는 맑은 물이 흐른다. 이땐 공기가 제법 차가워지기 시작한 가을이어서 계곡 쪽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여름엔 땀이 찬 발을 첨벙첨벙 담그며 열을 식힐 수 있을 듯.
억새 군락지로 명성 높은 간월재는 가을에 특히 인기가 높다. 정비가 잘 된 매끈한 길을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드넓게 펼쳐진 은빛 억새밭의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지대가 높기 때문에 온도가 낮고 바람이 거세니, 여러 겹으로 단단히 입을 필요가 있다. 왕복 약 12km.
특히, 촤르륵 촤르륵 억새가 나부끼는 연주를 들으며 먹는 컵라면 맛이 일품이니 놓치지 마시길. (간월재 휴게소에서 컵라면 판매)
위치: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알프스리
교통: 울산역 시내버스(328번/ 1328번) 탑승, 주암마을(배내통하우스) 하차
* 나는 가을 끝무렵에 가서 억새 절정 타이밍을 놓친 데다, 짙은 안개까지 드리워 사진이 초라하다.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