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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 Mar 01. 2019

그렇게 또 세상을 살아낼 수밖에

영화 <인사이드 르윈(2013)>


 카페 뒷골목에서 기다리던 노신사에게 맞아 르윈이 쓰러진다. 마치 환영처럼 등장해 홀연히 사라지는 그 노신사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영화에 몽환적 기운을 쏟는다. 쓰러진 르윈이 깨어나는 찰나, 그 몽환적 기운은 싹 사라진다. 이제 현실이다. 영화의 시작, 여유와 넉살을 가진 뮤지션의 모습을 풍기던 르윈은 온 데 없다. 친구의 애인을 임신시켜 더러운 바이러스에 비유당하는 데다 일말의 저작권도 들어오지 않으며 그를 찾는 편지도 없다. 남의 집 스프링 나간 소파를 전전하는 것이 일상인 르윈은 시종일관 무심한 듯 게으른 눈빛과 귀찮은 걸음걸이, 시니컬한 말투로 세상을 살아낸다.  


 

01. 나를 세 번 울린 르윈의 노래


 대부분의 사람이 한심한 눈길을 보내는 이 남자도 꽤 그럴듯해 보일 때가 있다. 바로, 기타를 잡고 노래할 때. 떡진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마저 '멋'이라 부를 수 있는 그 몇 분의 순간. 르윈의 노래에선 그의 고단한 인생이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는 영화에서 부르는 몇 번의 노래 중, 나를 세 번 울렸다.


 먼저 시카고의 그 제작자 앞에서 부르던 'The Death Of Queen Jane'에선 제인 여왕과 르윈이 오버랩되어 울컥했다. 고통을 호소하며 어서 아기를 꺼내 달라는 제인 여왕. 그리고 자꾸 무릎이 꺾이고 마는 현실에서 계속 노래하고 싶은 꿈을 품고 있는 르윈. 여기에 나의 과거와 현재가 더해지니, 마음이 뜨거워질 수밖에. 

 두 번째 울린 건, 아버지 앞에서 부르던 '청어 떼'. 르윈은 힘든 순간이 반복되고 늙어 죽어도 우린 청어 떼를 꿈꾼다며, 유년시절 아버지 앞에서 부르던 노래를 재현한다. 배에 오르기로 결심한 후 부르는 이 고기잡이 노래는, 아이러니하게도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울린 건, 마지막 무렵에 부르던 'Hang Me, Oh Hang Me'. 수미쌍관 형식으로 영화 오프닝 씬이 이어지는 이 노래는, 같은 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시작과 마지막에서 느껴지는 감흥이 꽤 다르다. 오프닝에서의 그 노래가 '좋은 노래' 정도였다면, 르윈의 삶을 엿보고 난 후에 듣는 이 노래는 이제 그의 탄식처럼 들린다.


  세상이 르윈에게 귀 기울여 주는 순간은 그가 노래할 때뿐인 것 같다. 하지만 그 한 가닥의 소중한 순간 마저, 그 끝엔 항상 대면하고 싶지 않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 능력은 있지만 돈은 되지 않겠다며 회의적인 제작자, 아버지의 소변 실수, 아내의 복수를 하러 온 노신사의 펀치까지.



02. 율리시스와 르윈


 자신이 잘못 데리고 온 고양이를 끝까지 책임지기보다는 끝내 버리고 뒤돌아서는 르윈. 자신 하나 돌보기 벅찬 르윈은 얼마 후, 또 하나의 고양이와 마주한다. 졸음운전을 하다 고양이 한 마리를 차로 치고 마는 것. 그 고양이는 다리를 절뚝이며 풀숲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자가 살고 있는 마을을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마주한 그 고양이는 그가 임신시킨 여자들처럼 보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자화상처럼 보였을까. 르윈이 부분적으로 해를 끼친 후 무책임하게 대처한 여자들. 그리고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는 르윈의 절뚝이는 꿈. 내겐 그 모두로 보였다. 그의 고단한 여정이 그를 바꾼 건 없다. 이제 지쳤다며 배를 타겠다고 결심하지만 항해사 자격증마저 그의 결심을 돕지 않는다. 끝내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 율리시스처럼, 르윈도 그렇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기타를 잡는다.


  

03. 코엔, oh 코엔


 고백건대, 나는 코엔 형제의 영화 중 단 한 편도 100% 이해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에 코엔을 꼽는 것은 스크린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스토리적 재미. 그리고 수많은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나를 돌이키고 세상을 돌이키게 하는 여지, 감독의 의도를 추측하고 싶게 하는 여지, 내게도 크리에이티브 본능을 자극하는 여지. 이러한 경험은 내게, 영화 볼 맛의 정점을 느끼게 해 준다. 그것이 좋다, 내가 영화에서 많은 의미를 해석해 내고 이해하진 못할지언정.


 실제로, 코엔 형제 인터뷰를 엮은 책 <코언 형제- 부조화와 난센스>에선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밀러스 크로싱> 속 모자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모자는 뭘 '나타내는' 게 아니에요. 바람에 뒹구는 모자일 뿐이죠. 그저 우리에게 다가온 이미지이고, 우리 마음에 들었죠. 그냥 머릿속에 들어온 거예요." / <바톤 핑크>의 기묘함에 대한 질문에: "몇몇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오며 '이해를 못하겠어'라고 말하죠. 그런데 전 그 사람들이 무엇을 '이해'하려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무얼 얻기 원하는 건지 말이죠. <바톤 핑크>는 꼭 알아야 할 부분은 다 얘기해 주고 끝을 맺는 영화예요. 그러니까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명확하지 않게끔 의도된 거예요. 그냥 그렇게 놓아두어도 상관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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