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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Feb 10. 2022

다정한 엄마가 되지 못할 거라면

매일 생각한다.

다정한 엄마 따뜻한 엄마 즐거운 엄마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현실은 하루에 만 오천 번 정도의 실패를 매일 맛보는 것 같아 자주 마음이 참혹해진다.

오늘 저녁 메뉴는 삼치 데리야끼 구이와 느타리버섯 볶음, 데친 브로콜리였다.

몇 숟갈을 뜨던 2번 어린이가

“엄마, 난 생선을 좀 안 좋아하는데요. 생선은 안 먹으면 안 될까요?” 하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생선의 효능과 너의 성장과의 관계에 대해 뻔한 설파를 하며 거절했다.

잠시 후엔

“나는 여기에 가시가 있을까 봐 걱정이 돼요.” 하더라.

“이건 엄마가 가시를 뺀 게 아니라, 가시를 다 없앤 생선으로 준비해서 파시는 거야. 그리고 엄마도 확인했고. 그러니까 그건 정말 걱정 안 해도 돼.” 하며 재차 거절했다.

그랬더니 이젠 훌쩍거리기까지 한다.

야… 진짜.. 너는!!!!!!!!

1차 발화점이었다.


2번과는 정말 식사 10번이면 9번은 갈등을 하는 편이다.

양도 적은 데다가 가리는 것이 많고, 식사시간도 저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말 오래 걸린다.

그래서 시간을 맞춰놓고 식사를 하고 있으며,

시간에 맞춰 잘 먹어야 약간의 좋아하는 간식을 주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그런데 정말 10분이 남건 5분이 남건 수다를 떨며 별로 개이치 않다는 듯 딴짓을 하다가는,

시간이 다 되면 울고..

아오.. 안 친절한 나를 마구 소환하는 능력을 지닌 친구이다.


그간 이 친구와 쌓아온 다양한 식사 레퍼토리에 대한 학습 탓인지,

오늘따라 퍽 팍팍했던 내 마음 탓인지.

생선을 안 먹겠다고 울기까지 하는 이 아이에게 너무나 화가 나 버렸다.

그래서 영혼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텅 빈 눈과 친절한 듯 하지만 차가워진 말투로

그럼 오늘은 그만 먹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참나..

“(그렁그렁한 눈으로)네. 그럼요,  내일은 내가 파이팅을 해볼게요.”하더라.

2차 발화점, 아니 활화점이었다.

아 진짜 이 친구는 어디서 왔나요?

화가 불일 듯했다. (사건이 다 지나간 지금은 저 대사가 퍽 귀엽고 재밌기까지 한데 말이다.)

‘그래.. 지금은 아예 말을 하지 말자. 괜히 말하다가는 화가 터져버릴 거야. ‘

애써 그 아이를 무시하며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식탁 근처를 배회하며 나를 힐끗힐끗 보던 아이가 나에게 자꾸만 말을 붙인다.

나도 왜 그렇게 좀처럼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최소한의 리액션만 하며 집안일을 그냥 계속했다.

몇 번 말을 붙이고, 탐탁잖은 리액션이 오가길 몇 번..

결국은 울먹거리며 그 아이가 다시 다가왔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엄마, 지금 내 마음이 슬픈데요?”

“왜?”

“엄마 목소리가 슬픈 거 같아서요.”

“그럼 엄마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나한테 더 예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풋.

아씨.. 웃어버렸다.

항상 얘는 이런 식이다.

쪼꼬만 게 아주 엄마를 갖고 논다.


“치, 알았어. 그러지 뭐.”하고는 결국 뽀뽀를 쪽 해버렸다. 그리고는 이 분위기를 몰아 “얼른 나머지 밥 먹고, 생선은 2번만 더 먹어보는 건 어때?”하며 제안했다.

그렇게 발화에서 시작해 활화산이 되었던 분위기는 다시 잔잔한 저녁으로 진정이 되고 있었다.

안다. 나도.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된다는 걸.

하지만 아까는 정말 그럴 맘이 아니었다.

그래 그냥 먹지 마. 니 맘대로 해보라고!!!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오늘을 지내며 생각해본다.

그래, 난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가 되긴 글러 먹었어.

난 느긋하지도 못하고, 화도 많은 걸..

괜히 하지도 못할 캐릭터 고집하지 말고,

쯧, 그래!! 화해 잘하는 엄마라도 하자.

그래.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내일부터 나의 목표는 하향 조정된다.

“화해하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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