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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Oct 22. 2023

오프비트

  토이, 성시경, 브라운아이드소울을 20년이 가까운 시간동안 한 눈 팔지도 않고 참으로 진정성 있고 뚝심 있게 반복재생 해 온 그와 나. 음악취향이 참 닮은 그와 나 사이에서도 미묘하게 나누어지는 부분이 있다. 여럿의 보컬이 함께 만들어내는 화음에서 희열을 느끼는 그와 좀 다르게 나의 포인트는 비트다. 물론 화성에도 으아 미친다. 하지만 굳이 조금 더 나를 흔드는 것을 찾자면 비트인 것 같다. 특히 다양한 세션이 음악을 꽉 채우다 순식간에 흩어지는 브레이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삐끗하는 오프비트는 정말이지.. 녹는다. 같은 가수를 좋아한데도, 같은 노래를 좋아한데도, 녹는점은 다를 법도 하다. 그래서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같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발견하기 어렵지 않지만 녹는점이 같은 사람 발견하기란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취향의 녹는점은 비결정성 고체 같아서 어쩌면 자신조차도 명확하게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 그냥 같은 음악을 들으며 같은 순간에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면 나와 당신이 그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짚어낸 공통의 녹는점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명확하지 않을 바엔 약간은 흐릿하게 당신과 내가 그러하다니! 하는 낭만 속에 넣어두는 거지 뭐. 정말이지 낭만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잇티제의 이 남자와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오프비트 녹는점에 대한 공감이 한 몫을 톡톡히 했으리라. 가만.. 공감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말하고 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딘가로 떠나는 차 안에서는 우린 꼭 음악과 함께다. 함께 노래를 듣다가 녹는점에 도달하는 구간에서 꼭 터져나오는 나의 꺄! 소리에 그는 꼭 반응을 보인다. 

‘그러게.’ 혹은 빙긋한 웃음으로. 

  녹는점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 그냥 옆에 앉아 지치지도 않고 감탄을 해대는 여자에 대한 애정일지도.

봐, 명확한 것보다 두루뭉술하게 남겨두니 이렇게 사랑에 대한 성찰에까지 도달했잖아. 


  꽤나 오랫동안 내 꿈에 등장했던 첫사랑 오빠는 드럼을 쳤었다. 어쿠스틱 피아노 반주자였던 나와 그 오빠는 소속된 곳이 달라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더랬다. 그러다 어떤 행사에서 합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날 이후로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렇게 몇 날이 이어지고 있던 어느 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냥 고개만 까딱하며 꽤 냉냉하게 지나가는 오빠에 설렘에서 순식간에 섭섭함으로 돌아서지던 그 찰나, 내 손엔 무언가가 쥐어졌다. 깜짝 놀라며 뒤돌아보았지만 그 오빠는 이미 저만치 성큼성큼 가고 있었다. 펼쳐낸 내 손 안엔 딸기맛 새콤달콤 하나와 찍 찢어낸 수첩 한 장에 채워진 그의 손글씨가 있었다. 그 오빠는 드럼 연주에 라이드 심벌을 자주 쓰는 사람이었더랬다. 그 덕분이겠지만 음악에서 그저 라이드 심벌이 쓰여지는 구간이 녹는점이었던 날들이 꽤 오래 이어졌었다. 그렇다면 그 때부터일까 나의 비트 녹는점의 시작.


  앗 우선은 지금 나와 살고 있는 그에겐 비밀로 해두어야지. 낭만은 없지만 질투는 폭발하는 그에게 오프비트는 사랑으로 남겨두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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