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품 안의 아들은 죽었다. 하지만 여자는 죽은 아들의 손을 놓지 못한다. 그녀는 남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말이 없이, 그렇게 영원 속에 굳어버린 듯이 앉아있다.
Käthe Kollwitz - Pietà (Mother with dead Son), 1937-1939
베를린의 카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뮤지엄, 그곳에 전시된 브론즈 조각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 하나의 조각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피에타. 조각 앞에 새겨진 이름을 보면서 나는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떠올렸다. 슬픔마저 보일 듯 말 듯 우아하게 승화된 성모의 성스러운 얼굴과 그녀의 품에 안긴 죽은 예수의 몸이 매끈한 대리석으로 조각된. 보는 순간 슬픔보다는 정교한 표현과 아름다움에 감탄이 앞서는.
그에 비하면 콜비츠의 조각은 소박하고, 일견 투박하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가 빚어낸 여인의 얼굴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있다. 그것은 고독한 감정이다. 한없이 내면으로 침잠하는, 그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는, 그런 비극의 한가운데에 있는 여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아들을 떠올렸다. 전쟁에서 죽은 그녀의 작은 아들. 그녀는 그 아이가 어렸을 때,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를 그린 적 있었다. 여자는 마치 울부짖는 짐승처럼 그려진 반면, 품 안에서 죽어 늘어진 아이의 얼굴은 천사처럼 맑고 고요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콜비츠가 자신의 작은 아들을 안은 모습을 보고 그린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위해, 멀쩡히 살아있는 아이에게 눈을 감고 죽은 듯이 늘어져 있으라 했을 것이다. 십여 년이 지나 그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었을 때, 그녀는 이 그림을 떠올렸을까. 그것은 알 수 없지만, 피에타를 조각할 때는 그녀의 아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1937년, 아들의 기일이었던 10월 22일의 일기에 그녀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I am working on the small sculpture that is the result of my sculptural experiments to portray old age. It has become a kind of Pieta. The mother is seated, her dead son lying on her lap between her knees. (나는 작은 조각을 만들고 있는데, 노년을 다루는 내 조각 실험의 결과물이다. 그건 일종의 피에타가 되었다. 어머니가 앉아있고, 죽은 아들이 그녀의 무릎 사이에 앉아있다.)'
Käthe Kollwitz - Woman with dead Child, 1903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된 뮤지엄은 조용했고, 관객은 나 하나뿐이었다. 크지는 않지만 아늑한, 소박함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공간이 콜비츠 그녀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고요 속을 걸었다.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슬픔, 고통, 절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득 토론토의 콜비츠 전시에서, 깊은 어둠에 숨이 막힌다며 그 자리를 떠나던 H가 떠올랐다. 나는 그게 의외라고 생각하다가 한편으로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부분들이 이해가 될 것도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깨달음 앞에서 쓸쓸해졌다.
콜비츠의 조각과 그림이 프린트된 엽서 몇 장을 산 후 뮤지엄을 나왔다. 저물어가는 해가 정원을 비스듬히 비추고 있었다. 주황으로 물든 하늘, 공기는 서늘하고도 바삭했다. 그 순간 나는 오롯이 혼자였고, 자유로우면서 지독하게 쓸쓸했다. 문득 브람스가 생각났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Frei aber einsam)를 모토로 삼았다는 브람스. 평생 한 여자를 사랑했으나 끝내 혼자였던 남자. 하지만 그 누구를 사랑하든, 인간은 결국 혼자인 것을. 그의 인터메조. 장조인데도 슬픈, 혹은 장조라서 오히려 더 슬프게 느껴지는 피아노 곡을 들으면서 가을의 베를린 거리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