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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Mar 01. 2024

사람이 먼저다

 많은 종교나 경전에서는 인간 속에 신이 계시다고 한다. 성경에는 인간은 신의 성전이라고 했고 동학에서도 하늘님이 안에 계신다고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도 뭔가 특별한 무엇이 내 안에 있는 듯한 경험들이 종종 일어난다. 

 예를 들면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면, 아니면 번잡한 생각들을 비우고 보면 분명 겉 사람인 나보다 더 훌륭한 존재가 내 안에 계심을 알게 된다. 그것을 신성 또는 불성 아니면 생명의 근원이나 삶의 강물 등 다양한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멀리 저 높은 곳을 바라보거나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바로 각자 안에 존재하는 그 존재의 특성대로 살아간다면, 매 순간의 경험이 그런 근원적 존재와 합일된 말과 행동의 표현으로 드러난다면, 우리 삶의 경험과 질이 전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머리로 이해하고 아는 것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삶이 다르다는 것이며, 경이로운 존재는 너무 거룩해서 안전한 내 가슴속 깊은 곳에 또는 저 깊은 산속이나 거대한 성전에 따로 고이 모셔놓고 나는 세속적인 내 기분이나 욕망대로 살아가는 이중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릴 적 경험한 깨달음 중 하나는 친구들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래, 안 싸우고 싶지. 그런데 남들이 자꾸 날 건드리니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지, 그럴 때 안 싸우면 내가 손해 보고 지게 되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싸우지 말라는 말이 지키면 좋지만 어쩔 수 없을 때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훈계나 도덕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내 맘대로 막상 친구와 싸우고 나니 자꾸 마음에 걸리고 다시 생각나고 잠자리에서도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서 잠이 잘 오지 않으며 내가 스스로 편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그런 말이 단지 교훈으로 지키면 좋지만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위해서 지키고 따라야 하는 법칙 내지 행동강령 같은 것은 기준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삶에는 내 작은 에고에서 나온 기분이나 욕망보다 더 근원적인 질서와 법칙이 있기에 그 길을 따르는 것이 바른 삶의 길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어릴 적 내 경험과 비교해 보면 바로 이렇게 삶에는 지켜야 하고 따라야 하는 질서가 있는데, 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신과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살다 보니 일어난 현상들이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해결책도 간단해진다. 우리가 안에 계신 완전한 존재에게로 돌아가서 그 존재의 법칙대로 살며 일치를 이루면 될 일이니, 참 간단하고 명료해진다. 비록 그렇게 에고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바로 도를 닦는 구도의 과정과 비슷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피를 흘리며 무장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와 세상을 바꾸려는 불가능에 도전할 필요 없이, 내가 스스로 실천하면 되니 상대적으로 참 간단하고 실천 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그렇게 되면 우선 내 안에서의 갈등이나 무력감 내지 공허함이 먼저 사라질 것이다. 더 나아가서 주변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자극제가 되어 함께 변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진정한 변화는 조용히 이루어지며 피 흘리지 않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지 않고도 우아하게 새로운 변화, 생명의 흐름이 이어져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그럴 것이다. 그렇게 소극적인 개인적 변화가 무슨 소용이며 언제 저 산적한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겠느냐고. 

 바쁜 마음과 근시안적 태도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본다면 근본적인 변화는 개개인 안에서 일어나며 큰 변화를 위한 출발점이다. 그래서 사람만이 희망이며 사람의 변화가 가장 튼튼한 새로운 흐름의 물꼬를 트게 된다. 

 그렇게 내 안의 경이로운 이와 합일을 이룬 사람의 영향력과 그들의 창조성은 바로 신의 권능을 대리하는 자이며 생명의 강물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보다 더 적절한 시작점은 없는 것 같다.


 혹자는 인간의 능력과 그 많은 지식의 축적과 과학적 성취를 무시한 채, 모호한 인간 안의 신적 특성에 의지하는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저버리는 것 아니냐고 되물을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만든 세상의 결과물을 보고 있지 않은가? 맘대로 살아 봤지만, 후회가 더 많지 않은가? 인간이 바른 위치에서 바른 시각을 가지게 된다면 지식과 기술도 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도 사람이 먼저 바로 서야 하며 그럴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다려 보는 것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사람이 먼저로 사람 안에서 근원과 하나가 되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변하게 될 것이다. 안에 계신 경이로운 이와 합일을 이룬 사람이, 가져올 변화는 한계성을 가진 인간의 안목으로는 가늠하기 힘들기에 실천해 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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