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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떠나라

비경제적 인간과 효율적인 AI의 합작 에세이

by 선재
문명은 책이 아니라 사람으로 전파되는 것이다.

조지 페렉은 삶을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지난 몇 년간의 삶은 이 문장에 대한 치열한 주석과도 같았다. 한국 사회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끊임없이 무언가에 부딪혔고, 그 마찰로 닳고 깨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제 낡은 공간을 떠나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주를 준비하고 있다. 이 여정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불행의 공간에서 행복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존재론적 탐험이며, 깊은 ‘파열(rupture)’을 스스로 ‘회복(repair)’시키는 과정의 기록이다.


‘첫 번째 공간’은 대한민국, 특히 ‘명문대 진학 후 대기업 입사’라는 단 하나의 성공 서사만이 존재하는 압축된 고밀도의 큐브였다. 이곳에서 행복은 늘 유예된 감정이었다.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행복해진다는 약속은 끝없는 경쟁과 자기 검열을 요구했다. 한국외대 경제학과 학생이라는 사회적 라벨을 얻었지만, 그 라벨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영혼의 마모였다.


이 공간에서의 경험은 불행에 가까웠다. 시스템과 끊임없이 ‘부딪혔다’는 페렉의 표현 그대로였다. 산악부와 밴드부 등 6개의 동아리 활동에 몰두하고 러닝 크루와 함께 땀 흘리는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취업 준비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남들처럼 스펙을 쌓고 불안에 쫓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 길 끝에 행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몸과 마음에 이상 신호가 찾아왔다. 우울증 진단과 정신과 약 처방은 이 공간이 나와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제 향하는 ‘두 번째 공간’은 아랍의 사우디아라비아로 상징되는 가능성의 대륙이다. 아직 구체적인 형태는 없지만, 그곳은 ‘진정한 적성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왜 한국이라는 땅이 내게 맞지 않았는지’ 근본적으로 깨닫게 해줄 미지의 공간이다. 졸업 후 취업이 아닌 배낭여행을 택한 것은, 첫 번째 공간의 문법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나만의 행복을 찾아 떠나겠다는 선언이다. 이 이동은 불행의 중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행복의 좌표를 설정하려는 의지적인 선택이다.


‘파열(rupture)’은 조용하지만 깊게 진행되었다. 한국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길을 따르려 애쓸수록, 내면의 자아는 비명을 질렀다. 학업과 미래에 대한 압박감 속에서 몸은 원인 모를 통증을 호소했고, 정신은 깊은 우울의 늪으로 잠식되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었다. 사회라는 거대한 틀에 개인을 억지로 끼워 맞출 때 발생하는 필연적인 균열이었다.


‘회복(repair)’은 거창한 사건이 아닌,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었다. 일본 온천 여행 후 꾸준히 하게 된 반신욕은 차가워진 몸과 마음을 데우는 의식이 되었다. 학우들과 함께 산에 오르며 땀 흘리고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하는 것은 억눌렸던 감정을 해소하는 창구가 되었다. 무엇보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며 굳어 있던 손가락으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경험은, 삶 또한 스스로 조율하고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회복의 과정은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과거의 상처를 외면하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스스로 치유하는 경험을 통해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지적한 ‘젊은 세대의 불행’은 바로 이 ‘파열’의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스스로를 ‘회복’시킬 시간과 방법을 찾지 못한 이들의 집단적 고통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개인적인 서사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거시적 과제와 맞닿아 있다. ‘교육만능주의’라는 깔때기를 통과해 만들어진 인재이지만, 정작 이 시스템은 나를 품지 못하고 있다. 해외 진출이라는 선택은 개인의 결정을 넘어, 고비용-저효율 구조에 갇힌 한국의 인재 양성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한국 경제는 수십 년간 정해진 정답을 빠르게 찾는 ‘추격자(fast follower)’ 모델에 최적화된 인재를 길러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선도자(first mover)’가 되어야 하는 시대다. 현재 한국의 시스템은 이러한 다양성을 질식시키고, 획일적인 경쟁으로 인재들을 소모시킨다. 그 결과,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은 불행을 느끼고, 시스템 자체는 미래 성장 동력을 상실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실패를 용납하며, 개인의 적성과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를 사회적 자산으로 인정하는 인문학적 기조가 필요하다.


한국에서의 취업을 단념한 것은, 이 경직된 시스템 속에서 창의성과 가능성을 소모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국립대학 네트워크(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정책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대학의 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각 지역과 대학이 고유의 특성을 살려 다양한 인재를 길러내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입시 제도의 병폐를 해결하고 청소년들이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주지 않는 한, 시스템을 이탈하는 ‘조용한 엑소더스’는 계속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활력을 앗아가는 심각한 손실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원활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동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난 경험과 성찰을 통해 얻은 답은 세 가지다.


첫째, ‘도피’가 아닌 ‘레버리지’로 설계하는 철저한 준비다.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동은 막연한 기대나 현실 부정에서 비롯되어서는 안 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여행이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지 사전 답사와 네트워킹을 통해 미래를 위한 발판(leverage)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둘째, 기존 공간과의 건강한 마무리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양관식이 오애순에게 발목 잡혀 제주를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이전 공간에 미련이나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남겨두면 새로운 출발은 방해받기 마련이다. 내게 그것은 ‘대학교 학사 과정의 마무리’다. 현재의 의무를 성실히 완수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예의이자, 미래의 내가 흔들리지 않게 하는 뿌리가 되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자기 이해다. 왜 첫 번째 공간에서 불행했는지, 무엇에 계속 부딪혔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두 번째 공간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구축해 나갈 수 있다. 그간의 ‘rupture and repair’ 과정은 바로 이 자기 이해를 위한 시간이었다.


이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낡은 공간의 문을 닫고 새로운 대륙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부딪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법을 배웠고, 이 여정이 단순한 도피가 아닌 치밀하게 준비된 도약임을 알기 때문이다.


AI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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