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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재 Jun 12. 2023

유럽 미술관을 즐기는 방법-기록하고 연결하라

6. 기록하고 연결하라

     

루브르나 프라도 같은 대형 미술관에는 수많은 작품들이 걸려있다. 세상 만물이 홀로 존재하지 않듯이 이 미술작품들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미술관을 꽉 채우고 있는 그림들은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있는 섬이라기보다 무수히 많은 시냅스로 연결된 뉴런에 가깝다.

  

유럽의 대형 미술관을 방문했다면 작품을 개별적으로 보지 말고 연결시키면서 봐야 한다. 연결시킨다는 것은 작품과 작품 간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을 말한다. 한국인들은 전반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에 약한 편이다. 입시 위주로 공부하다 보니 개별적인 팩트를 외우는 것에 중점을 둬서 그런 것 같다. 미술을 즐기는 것은 입시 공부가 아니다. 좀 더 유연한 마인드로 접근한다면 미술 감상의 재미가 늘어날 것이다.


< 좌측 다빈치의 모나리자, 우측 코레조의 나를 만지지 마라 >


개별적으로만 미술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을 설명할 때면 ‘스푸마토’라는 용어가 빠지지 않는다. 스푸마토는 자연의 색상을 연기처럼 뿌옇게 처리하는 기법을 말한다. 사물이 멀어질수록 희미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착안한 대기원근법 기술이다. 그런데 이 스푸마토는 다빈치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다빈치가 이 기술의 선구자인 것은 맞지만 르네상스 시기에 활동한 다른 화가들도 사용한 기술이다.


예를 들어 코레조 역시 스푸마토의 대가이나 코레조 그림 앞에서 스푸마토를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모나리자 앞에서는 스푸마토에 감탄하다가 – 사실 모나리자 앞에는 너무 사람이 많아서 가까이에서 보며 감탄하기는 무척 힘들다. - 코레조 그림은 쓱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이왕 다빈치 작품을 통해서 이해하게 된 기법을 다른 화가의 작품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 될 것인데도 말이다.     


미술을 연결시키며 감상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중요하다. 미술 전문가가 아닌 이상 자신이 가진 지식만으로 연결시키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이때 유용한 도구가 스마트 폰이다. 앞서 사진을 찍지 말자고 애기한 바 있다. 미술관에 들어온 이상, 스마트 폰은 사진기가 아니라 메모장이나 백과사전으로서 활용하는 것이 좋다. 마음에 드는 그림 혹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을 만난다면 작가와 작품명, 특징을 메모해 두자. 미술관 홈페이지나 위키피디에서 찾아보고 즐겨찾기에 저장해 둬도 좋다.


이제 다시 작품들을 감상해 나가자. 앞서 보았던 그림과 유사한 분위기의 그림 혹은 반대로 똑같은 주제를 그렸는데도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는 그림이 나올 것이다. 그 점에 착안하여 메모를 하자. 간략하게 ‘다빈치, 코레조-스푸마토’ 정도만 적어도 충분하다. 이렇게 기록을 하면서 감상하다 보면 뒤로 갈수록 더더욱 즐겁고 흥미진진해진다. 백 점의 작품을 개별적으로 보았을 때의 즐거움이 이라면 연결시키면서 보았을 때의 즐거움은 수 천, 수 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카라바조 - 골리앗을 이긴 다윗 >
< 호세 리베라 - 나사로의 부활 >

프라도 미술관을 예로 들어 작품 간을 연결시켜 보자. 프라도에는 카라바조의 그림이 딱 한 점 있다. 하지만 그 한 점으로도 카라바조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골리앗을 제압하는 다윗’이라는 그림이다. 카라바조는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로 유명하다. 이러한 기법을 테네브리즘이라고 한다. 카라바조는 인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카라바조 정도의 대가라면 추종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카라바지스트’라고도 불리는 추종자들 중 대표적인 화가로 호세 리베라가 있다. 프라도는 리베라의 작품을 다 보유하고 있다. 호세 리베라는 카라바조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다 보니 그의 작품은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쉽지만 카라바조의 영향을 생각하며 감상하면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 니콜라 푸생 - 다윗의 승리 >

이번에는 니콜라 푸생의 작품을 보자.‘다윗의 승리’라는 작품이다. 앞서 애기한 카라바조의 그림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니콜라 푸생은 카라바조, 호세 리베라와 동시대를 살았던 화가이다. 프랑스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푸생의 작품은 카라바조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밝은 색조를 띄고 있으며 극적이라기보다 차분하고 이성적이다. 호세 리베라의 그림이 카라바조와 유사해서 흥미롭다면 푸생의 그림은 카라바조와 달라서 흥미롭다. 어느 쪽이든 작품을 연결해서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다.     


미술관 입구에서 첫 작품을 만났을 때, 그 작품은 ‘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을 연결시키며 감상해 나가다 보면 ‘점’은 ‘선’이 될 것이고 ‘선’은 ‘면’이 될 것이며 미술관을 나설 즈음에는 ‘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후 다른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혹은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계속 구를 키워 나가자. 눈덩이를 굴리듯이 말이다. 탁구공 같이 자그마했던 심미안은 테니스공을 거쳐 농구공처럼 커져 나갈 것이다 . 그리고 어느 순간 느낄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작품 앞에 서더라도 그 작품만의 매력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가이드나 책이 없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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