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2가 궁금했다. 조커 1편도 아직 보지 못했지만 명성은 익히 들었다. 마침 이동진 평론가의 리뷰 영상이 있길래 흥미롭게 보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이동진, 조커 2 댓글에 답하다.'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이례적이었다.
평론가와 대중의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는 흔하지만 평론가가 이렇게 곧바로 대응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대중들의 반발이 상당히 격렬했던 것 같다. 이동진 평론가는 댓글을 하나씩 소개하고 그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욕설보다 더 지독한 조롱 같은 댓글을 읽어 나가면서도 이동진 평론가는 비교적 차분히 애기해 나갔다.
이 동영상을 보고 있으니 비슷한 논란을 일으켰던 영상이 하나 떠올랐다. 바로 유현준 교수의 '천재로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 진짜 천재일까?'라는 영상이다. 2년 가까이 흘러간 영상이지만 본인은 얼마 전에 보았다. 이 영상이 나간 후 유현준 교수는 가우디 팬에게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유현준 교수에 대한 댓글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조금 있다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가우디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과연 가우디는 감히 비판할 수 없는 철옹성인가.
< 19세기의 예술은 한 눈에 우리를 사로잡는다 / 좌측 모네의 파라솔, 우측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
바로 이전 문단에서 유현준 교수가 '가우디 팬'에게 비판을 받았다고 했다. 가우디에게 팬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반인들은 건축가 이름을 잘 알지 못하고 이름을 안다고 해도 '팬심'까지 품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우디는 두터운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몇 안 되는 건축가다.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비판에 민감하다. 만약 유현준 교수가 치퍼필드나 프랭크 게리의 건축을 비판했다면 이 정도의 반응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뛰어난 건축가이지만 가우디 같은 팬은 없기 때문이다. 가우디는 왜 이렇게 인기가 좋은걸까?
사람들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의 유럽 예술을 특히나 좋아한다. 가우디는 바로 이 '벨에포크'에 활동한 건축가이다. 가우디의 건축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인상파 혹은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모네, 마네, 고흐, 마티스, 차이코프스키, 드비쉬. 벨에포크의 예술은 시각이 되었던 청각이 되었던 처음 접하는 순간 곧바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가우디의 건축은 분명 매혹적이지만 늘 찬사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유현준 교수에 대한 댓글을 보면 '남들 다 좋다는 데 당신이 뭘 모르는 거 아닌가'라는 듯한 뉘앙스의 글이 많다. 하지만 유현준 교수가 가우디를 비판한 세계 최초의 인물이 아니다.
가우디는 사후에 곧바로 가혹한 비판에 직면했다. 비판의 요지는 가우디의 작품이 지나치게 환상적이라는 것. 유현준 교수의 의견과 비슷하다. 가우디에 대한 비판은 고향인 카탈루니아에서도 제기되었다. 소위'노센티즘(Noucentisme)'이라는 운동에 몸담았던 예술가 집단은 '모데르니스모'와 '전위주의' 모두를 비판하고 고전의 가치를 내세웠는데 가우디가 바로 '모데르니스모'의 대표 건축가이다.
유현준 교수가 가우디의 작품은 장식성이 강할 뿐 자연의 본질을 구현하지 못했다는 의견과 노센티즘 작가들이 가우디의 건축은 고전의 가치를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일까. 세 가지 이유가 떠오른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들어가면 영적인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
먼저 사람들은 자신의 감동이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자신은 분명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영혼이 고양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이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다니. 그런데 전문가 몇 사람이 가우디 건물을 비판 했다고 해서 자신의 감동이 '가짜'가 되거나 '저급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페라 극장에서 아리아를 듣고 눈물을 흘리던 퇴근길에 발라드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그 눈물은 진실하고 애틋한 것이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내가 감동받았다고 해서 그게 걸작이라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BTS 음악을 듣고 감동받았다고 해서 BTS가 모차르트보다 위대한 것이 아니고 '달러구트 백화점'을 읽고 오열했다고 해서 그 작품이 '소년이 온다'보다 걸작인 것은 아니다. 즉 취향과 완성도는 별개의 문제다.
유현준 교수는 가우디 건축의 완성도를 논한 것이지 그곳을방문한 사람들의 감동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감동과 연계시켜 유현준 교수에게 항의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 안내서에서 비판적인 의견을 찾기는 힘들다 >
다음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이 무시당했다고 느낀 것 같다. 댓글을 보면 '바르셀로나에서 우리를 안내해 준 가이드가 가우디를 극찬했다'거나 '자신이 읽은 어떤 글에서 가우디가 위대하다고 했다.' 같은 내용이 많았다. 자신은 분명 가우디는 위대하다고 '알고' 있는데 왜 당신이 아니라고 얘기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만이 단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지식은 고정불변이 아니며 특정인이나 특정 책이 알려주는 내용만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다. 특히나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가이드나 여행안내 책자는 어쩔 수 없이 편향된 면이 있다. 바르셀로나를 안내해 주는 분이나 바르셀로나 가이드 북은 모두 이 도시의 좋은 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려 노력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가우디의 작품에 찬사를 바칠 수밖에 없다.
가우디에 대한 비판은 건축이나 미술을 깊이 있게 다루는 글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여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의 지식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만이 더 깊은 지점에 가 닿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문가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그런 공격적인 댓글들을 낳은 것 같다. 처음 댓글을 접했을 때 받은 느낌은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었으나 곰곰이 들여다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전문가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과 일치할 때는 '역시 전문가!'라며 '좋아요' 버튼을 꾹 누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전문가는 무슨?'이라는 심정으로 '악플'을 남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심지어 전문가에게 뭔가 가르침(?)을 남기기도 하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전문가가 모를만한 내용이 아니다.
나랑 의견이 같으면 전문가이고 나랑 의견이 다르면 사이비라는 태도는 좋지 않은 것 같다. 전문가는 모르는 엄청난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라고 섣불리 판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 충분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통한 -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되면. 그들의 의견에 침착하게 귀를 기울여보자.
그렇다고 전문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자는 애기는 아니다. 만약 전문가의 의견이 납득되지 않는다면 한 번 파고 들어보자. 전문서적도 읽고 다른 전문가의 의견도 듣고 홀로 고민도 해보고. 세상만사를 그렇게 피곤하게 파고들 수는 없지만 진정 자신을 감동시킨 대상이 있다면. 한 번 해 볼만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가 존중해야 하는 대상은 '전문성'이지 '전문가'가 아니다. 만약 특정인물에게 맹목적으로 열광한다면 그건 어긋난 팬덤일 뿐이다. 전문가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동안만 전문가이다.
본인은 스페인어 전공자라 대학 입학 후 스페인어 이름을 지어야 했다. 그때 '가우디'라고 지었다. 거의 30년 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가우디를 아는 사람도 잘 없어 내 이름을 소개하면 되묻는 사람이 많았다. (사실 가우디는 성이기 때문에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어쨌든 그만큼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을 좋아했다. 젊은 시절 아내와 바르셀로나를 방문했을 때도, 스페인에 근무하며 다시금 바르셀로나를 찾았을 때도. 가우디의 건물은 우리 부부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더 많은 예술을 접하고 더 많은 책을 읽다 보니 가우디의 작품이 마냥 위대하게만 생각되지는 않았다. 조선백자와 같이 간결하지만 그윽한 아름다움과비교해보면 가우디의 건축물은 장식이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우디의 작품에 대해 누군가 다른 얘기를 해 주기를 기다려 왔는데 마침 유튜브에서 유현준 교수의 의견을 들으며 적잖이 납득이 갔다. 이런 것이 인터넷의 장점이 아닌가 실감했다.
인터넷이 다양한 의견을 실어 나를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와 달리 편향된 의견으로 몰아간다는 우려가 있다. 인터넷이라는 공론장을 자신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 자신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곧바로 반발하기보다 자신의 견문을 넓히는 계기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유현준 교수는 가우디를 공격하지 않았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알려주며 다시 한 번 그의 작품을 보라고 권유하였을 뿐. 덕분에 가우디 건물을 더 깊이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