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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쓰 Eath Jun 27. 2022

각방을 왜 안 씁니까?

부부 관계,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죠.

구태의연하게 시대를 고대로 답습하는 모습에 거리를 두고 사는 지인이 있다. 그의 말은 시대의 한심스런 압력을 모두 담고 있다. 몇 살에는 결혼을 해야지, 연봉은 얼마가 되어야지, 대기업은 다녀야지, 결혼했으면 애는 낳아야지, 애가 없으면 부부가 아니지 따위와 같은. 그 좁디좁은 시야와 그것을 너무도 당당히 타인에 강요하는 꼴에 은근슬쩍 투명인간으로 대하고 있다.


비단 그뿐이랴. 어디선가 ‘부부가 각방을 쓰는 일’에 대해서 얘기가 나온 순간, 정말 각양각색의 의견들이 나왔다. 개중 많은 이들이 ‘부부는 각방을 써서는 안 된다’ 거나 ‘부부가 각방을 쓰는 건 막장이다’ 라거나 ‘부부는 당연히 한 이불 덮고 자야지’ 라거나 ‘헤어지고 싶으면 각방 써라’와 같은 반응들을 보였다.


나는 각방을 쓴다. 너무 좋다. 이 좋은 걸, 그냥 ‘각방은 원래 안 되는 거’라는 인습에 젖은 탓에 터부시 하는 사회가 참으로 안타깝다. 물론, 부부간의 수면 패턴이나 잠자리의 물리적인 니즈가 잘 맞는 경우는 제외다.


많은 부부들이 잠을 자는 문제로 크고 작은 트러블을 경험한다. 내 경우에도 문제가 많았다. 수면 패턴이 많이 달랐다. 나는 새벽 2, 3시에 잔다. 남편은 자정 전에 잔다. 남편은 빛에 예민하다. 암막 커튼을 쳐야 한다. 나는 아침 볕을 보지 못하면 잠에서 깨지 못한다. 몹시 피곤해진다. 남편은 잠귀가 몹시 밝다. 내가 거실에서 놀다가 새벽에 침실 문을 열면 남편이 깬다. 그리고는 좀처럼 다시 잠들지 못한다. 그러면 다음 날 내내 나에게 짜증을 낸다. 그러고 나면 며칠간 나는 남편 옆에 송장처럼 누워서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며 멀뚱멀뚱 짜증스런 밤을 보내곤 했다. 남편은 열이 많다. 나는 몸이 찼다. 선풍기를 틀고, 이불을 덮고, 서로 불편하게 잤다. 남편은 코골이가 상당하다. 자다가 귀가 아파서 깬 적도 있다. 부부 사이가 좋으려면 당연히 해야 되는 한 이불 덮기를 하면서 우리는 오지게 싸웠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욕구이자, 건강한 삶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활동인 ‘수면’의 질이 빠그라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따로 자자고 했을 때, 남편 역시 극렬히 저항했다. ‘그래도 그건 안 되는 거’ 란다. 세상에 그딴 건 없다. 사람을 죽이거나, 뭐 범죄 같은 게 아니면 세상에 원래 그래선 안 되는 건 없다. 짜증과 분노가 가득한 밤, 피곤에 찌든 아침을 맞이하던 어느 날, 다른 이유로 크게 싸웠다. 남편은 서재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며칠간 서로를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며 지냈다. 그때 우리는 깨달았다. 몸이 굉장히 편하다는 것을. 마침내 화해를 한 저녁, 남편은 수줍게 고백했다. “나 매트리스 주문했어.” 막상 침실을 따로 쓰며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혼자 자니까 너무 편하더라는 거다. 그렇게 남편은 서재방을 본인의 아지트로 만들기 시작했다.


각자의 방을 가진 것은 수면의 질이 높아지는 것 이상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같이 사는 재미가 늘었다. 퇴근하고 같이 밥을 먹고, 거실 소파에서 같이 노닥거린다. 그러다가 한 명이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이제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러면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심심해지면 노크를 하고 상대방의 방으로 들어간다. 남편이 아지트로 만들어버린 서재로 들어갈 때마다 나는 남자 친구의 자취방에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매트리스 옆으로 옷가지들을 널브러뜨려놓고 방을 그야말로 홀아비 자취방 꼴로 만들어놓았는데, 그 구질구질한 매트리스에 같이 포개어 누워서 핸드폰을 하고 놀고 있으면 딱 남자 친구의 쥐똥만 한 자취방에서 같이 노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거다. 거기서 같이 낄낄대다가 잘 때가 되면 “안녕!” 인사하고 나는 안방으로 간다. 커다란 침대에 혼자 데굴데굴 구르면서 자는 건 참 즐겁다. 


각방을 쓰는 것이 의무도 아니기에, 주말에 같이 자고 싶으면 같이 자기도 한다. 결혼하고 살림 구색까지 다 갖춘 집에서 구석방에 매트리스 하나 깔아놓고 둘이 자는 걸 상상이나 했나. 그건 묘한 재미가 있다. 


각방을 쓰면 안 된다는 말은 부부 관계가 벼랑 끝에 놓였을 때, 둘이서 스치는 것조차 끔찍해서 물리적인 공간을 나누기 위한 마지막 선택지로 각방을 선택하는 경우만을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각방을 써서 부부가 갈라지는 게 아니라, 이미 갈라지기 직전의 부부가 그저 각방까지 쓰면서 관계에 막타를 친 거다. 부부 사이가 좋아도 각방은 쓸 수 있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없는데, 남편이 코를 너무 골거나, 둘의 체온이 너무 안 맞거나, 수면 패턴이 다르거나, 한 사람은 낮에 출근하고 다른 사람은 야행성 프리랜서거나, 뭐 이런저런 이유로 같이 잠을 자면 서로가 불편해지는 상황이라면 각방을 쓰는 건 부부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어느 정도 개인적인 공간의 보장이 필요하다. 부부이기에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것이 재미있지만, 사이사이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가진다면, 함께 할 때의 재미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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