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집회를 보고
이번 계엄 이후로 광장의 목소리가 얼마나 멋진지 종종 메모를 했다. 실시간으로 대단한 일, 역사적으로 기록될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저 느낌일 뿐이지 그게 뭔지 나로서는 해석할 능력이 없었다. 특히 남태령 집회를 유튜브 라이브로 본 뒤로는 빨리 누군가가 이 현상을 짚어주고 해석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만큼 남태령 집회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라이브를 다 본 것은 아니고, 아침 시간에 두세 시간 정도를 봤는데, 그동안 내가 봤던 집회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우선, 내가 다니거나 본 집회는 대부분 하나의 이슈에 집중했다. 수입소고기반대집회라면 왜 수입소고기를 반대해야 하는지, 미국이 요구하는 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부가 뭘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사드배치 반대집회라면 사드라는 무기의 위험성과 핵 문제, 미국과 중국, 아시아에서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문제 등을 다루었다. 이번 계엄만 해도 그 순간 우리가 얼마나 놀랐고 일상이 무너졌는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해 다 같이 분노했고, 그동안 현 정권이 얼마나 무능했는지, 또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뿌리 뽑아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남태령 집회는 전혀 아니었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처한 소수자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성, 퀴어, 이주노동자, 그 2세, 학생, 직장인으로서의 어려움을 말했다. 또는 고립된 경험이나 병력 등을 말했다. 우울증이나 공황 등을 말하고 고립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기 때문에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며 두려움과 분노를 표했다.
그 밤에 또 그 새벽에 달려오는 이들이 대부분 소녀들이라는 것, 그리고 지원물품의 자발성과 독창성이 놀라웠지만, 그래도 발언 내용은 영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언제 농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거야, 하면서 남태령에서 멈춰버린 전봉준 투쟁단들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이미 앞에서 충분히 했는지 내가 볼 때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영상 보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왜 농민들을 위해 왔으면서 자기 이야기만 계속하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그들이 당사자라는 걸. 전봉준 투쟁단을 대신해서 말하고 있다는 걸. 농민이 느끼는 고립이나 여성이 느끼는 고립, 퀴어가 느끼는 고립 등이 전혀 다르지 않고, 각자의 투쟁이 다르지 않다는 걸. 이들의 '말'은 말이 아니라 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존재와 존재가 거대한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후에 나온 연대투쟁, 그러니까 남태령 집회 이후에 전농이나 한살림, 언니네 텃밭 등에 수많은 사람들이 가입을 하고 전태일병원건립에 서버가 터질 정도로 기부금이 밀려든 놀라운 연대, 또는 장애인투쟁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기 시작한 연대 등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놀랍고 중요한 연대투쟁이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어떻게 저토록 순수하지? 어떻게 지금껏 몰랐지? 어떻게 지금껏 숨어있었지? 놀라고 또 놀라면서 운동사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날 내가 느낀 건 그런 연대투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깨닫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당연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혼자였고 외로웠고 기댈 데 없이 고립되어 있었다. 그러다 번개처럼 깨달은 거다. 우리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것, 그런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같은 지향을 갖고 있었다는 것. 그런 의미의 연대였다. 이렇게 생생하게 몸으로 깨달은 통찰은 몸에 아로새겨져 사라지지 않는다. 순간 우리는 남녀, 계급, 계층과 세대 등으로 갈라 치기를 당해온 오랜 역사를 가뿐히 뛰어넘어버렸다.
우리는 우리 모두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나만 외로웠던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밟고 올라가야 할 경쟁 상대가 아니라 끌어안고 기대야 할 대상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스스로 발가벗어도 안전한 상태라는 걸 직감하며 해방구를 열어젖혔다. 한강 작가가 말하는 '인간 삶의 연약함'을 서로의 '말'을 통해 온몸으로 감각한 거다.
그 감각은 자기인식의 세계를 넓힌다. 하나의 개체인 '나'가 아니라 인류역사를 간직한 '나'이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통합으로서의 '나'가 만난다. '나'가 겪고 있는 것과 '나'아닌 이들의 통각을 함께 느낀다. 그래서 그 밤을 내달릴 수 있었고 계속해서 연대할 수 있었고 새로운 시민, 새로운 활동가, 새로운 전사들의 탄생을 우리는 예견하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집회에 있지도 않고 기껏해야 라이브로 보기만 했지만 랜선을 너머 그 놀라운 연대가 내게도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오늘 유시민 작가가 남태령 집회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영상을 봤다.
"우리 다음 세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구나.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와는 다른 감정과 경험을 쌓은 사람들인데 자기네들의 무기를 써서 그런 목표를 추구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구나. 마음이 되게 편해졌어요. 우리 죽어도 괜찮겠네..."
김어준 씨는 이들 중에 여성 대통령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이번 계엄반대 탄핵집회를 본 사람, 참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즉, 그들의 논평은 남태령집회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이번 탄핵집회 전반에 대한 것이다. 남태령은 달랐다. 남태령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또다른 변곡점이었고 기폭제였다. 그걸 발견해내지 못한 것 같다.
아마도 지금까지 유효했던 논평가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논평가만이 이 현상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래는 남태령 집회를 보고 쓴 한 줄 평이고, 나머지는 남태령 이후에 그러모은 '말'들이다. (혹시 문제 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남태령집회는 완전히 해방구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다! 그 세상이 궁금하고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