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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Hwa Jin Sep 17. 2024

알스톤에서 시라쿠사 까지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꼭 써야 한다고 해서 썼던 숙제 같은 일기 말고, 정말로 내가 글이라는 것을 써서 남기고 싶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보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 유명 작가의 20대를 마무리하는 30살의 글이 지금까지 우리가 읽고 있는 대작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 얘기를 듣고 나서, 나 역시 10대를 마무리하는 20살의 글을, 20대를 마무리하는 30살의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알스톤에서 시작한 글이 시라쿠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는 잠깐의 휴식과, 그만한 편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10대를 마무리하는 스무 살의 글은 군대에서 쓸 수 있었다. 컴퓨터 한 대를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던 (다만, 인터넷이 연결되지는 않았다.) 덕분에, 나는 군대에서 첫 나만의 글을 쓸 수 있었다. 당시 썼던 글들은 '제2회 병영문학상'이라는 곳에 출품을 하게 되면서 약간의 편집이 되었다. 단편 소설 분야에 출품하기 위해서 나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짧은 단편 소설을 썼고, 운 좋게 입상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글은 그때부터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스무 살의 알스톤에서부터 서른다섯 살의 시라쿠사까지의 글을 써보려 한다. 


- 미국, 알스톤에서



뉴욕, W36st, 6th AV , 누워있다. 문득 잠을 자다가 생각이 났다. 다시 집에 돌아가면 여행에서 다녀온 메모를 남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언제나 길든 짧든 글을 써야 되는 게 내 습관 아닌 습관이었다. 

여행에 다녀와서 글을 쓰는 습관은 학교 숙제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런 습관 때문이었는지,  지금은 열흘이나 넘게 여행을 다녀오고서도 글을 쓰지 않는 것은 뭔가 공허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다녀온 여행에 대한 글을 남기면, 그 기억을 조금 더 천천히 잊어먹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딱히 그 글을 다시 보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쓰는 순간 내 기분이 좋은 거니깐.' 


내가 살았던 곳이 아닌 낯선 곳을 다녀와서 글을 쓰는 순간은 기분이 좋았다. 

내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봤고, 누구를 만났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무엇을 봤고 누구를 만났는지는 머릿속으로 다시 재구성하는 것이 전부였다. 글을 쓰면 약간은 내가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람이 과거의 기분을 항상 머릿속에서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아니니깐 그 정도는 괜찮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지금 기분으로 다시 기분을 왜곡할 수 도 있으니깐.'

기분을 잘 왜곡하는 건 내 특기였다. 근데 이번 메모만큼은 솔직하게 기억되고 싶었다.


어렸을 적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글을 썼었는데 그때 나이 치고는 꽤 긴 글이었다. 근데 솔직 하지는 못한 글이었다. 어디서든지 억지로 과정적인 수사법을 붙였고 내 기분을 가정한 것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그 멀리까지 다녀왔는데 내가 엄청난 것을 보지 않았으면 안 될 것 같았고, 엄청난 기분을 느끼지 않았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내가 글을 쓰면 결국에는 누군가가 볼 것이라는 압박감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 대한 글은 소설처럼 쓰면 내 기분을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은 거짓을 가정하는 진실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사람은 이런 부분에서 참 아이러니하다. 사실을 쓰려고 하면 거짓을 쓰게 되고 거짓을 쓰면 더 솔직해지는 아이러니.

여행을 오려고 결정하는 시간은 사실 얼마 필요하지 않았다. 미국으로 여행 간다고 말은 많이 했지만 구체적으로 준비한 건 비행기 표를 사면서부터가 처음이었다. 실질적으로 여행준비를 한 건 3일 정도밖에 안 됐다. 여행준비라고 해 봤자 거기 날씨가 어떤지, 내가 무슨 옷을 입을지, 그리고 내가 얼마 정도가 필요할까 정도밖에 안 되니깐 준비도 아니지. 

월요일 저녁 늦게 비행기 표를 사고 그날 밤에 내가 항상 일하는 곳에서 일을 했다. 동네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일이 다 끝나고 나니깐 12시가 넘었다. 

집에서 여행 계획 짜기 위해 컴퓨터를 켜기도 전에 잠이 몰려왔다.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계획을 세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커피 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일주일에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해야 했다. 꼭 그래야 되는 것은 아닌데 보통 그랬다. 그리고 이틀에서 삼일 연속해서 하지 않았다. 연속해서 하면 너무 힘드니깐. 그런데 이번 주는 목요일 날 아침 일찍 여행을 가서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월요일 화요일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 주만큼은 월요일 화요일 연속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수요일 아침, 아침 일찍 일어나 스포츠 센터에 운동을 다녀왔다. 한 시간 정도 스쿼시와 수영을 하고, 사우나를 하고 오면 기분이 꽤 좋아진다. 가끔은 수면실에서 잠을 잘 때도 있으니깐 운동을 하는 곳이기보다는 내가 쉴 수 있는 곳이었다.

‘빨리 도서관 가서 책 빌려야 되는데’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사실은 항상 머리를 말리지 않는다. 머리를 안 말릴 때가 멋지다고 그 나이에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으로 나갔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는 내가 일하는 커피전문점이 있다. 커다란 통유리로 되어있는 커피 전문점 안에서 같이 일을 하는 내가 좋아하는 형을 보았다. 

"어? 어디가?"

형이 나한테 물었다.

"도서관에서 책 빌리 려고요. 형 오늘 아침부터 일하시네요."

"응, 뭐 줄까?"

"네, 타조 차이티 라테 따뜻한 걸로 주세요."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하루에 두 잔씩 일하는 사람들한테 마실 음료를 준다. 원래는 일하는 날만 마실 수 있는데, 나는 집이 가까워서 거의 매일 들려서 음료를 마시고 온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서 제일 막내여서 그런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잘해줬다.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그중 제일 좋은 것은 맛있는 커피나 음료수를 공짜로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마신다고 해서 아직 모든 종류의 음료를 마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오늘처럼 가끔 안 먹어본 음료를 마시는 날이 있다.

"오늘 같은 날씨에 따뜻한 타조차이티는 꽤 맛있네"

라고 혼자 말로 중얼거리면서 아이팟을 귀에 꽂았다. 오늘은 날씨가 별로 안 추워서 그런지 지퍼를 목까지 올리지 않아도 되었다. 요즘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서 운동을 하러 나갈 때는 반팔 티 두장을 겹쳐 입고 그 위에 겉옷만 하나 겹쳐 입는다. 아이팟에서는 허밍어반 스테레오에 “Hello stranger"가 나온다.

<내게 이러지 마세요 우린 안 돼요. 그리고 당신 내 타입 아냐. 코가 너무 크고 아무에게나 꼬릴 흔드는 남자는 난 너무 싫어요.>


도서관에서 미국 여행서에 관한 책을 세 권 빌렸다. 전체적인 여행서 한 권과 그리고 미술관에 관한 여행서 두 권. 전체적인 여행서는 벌써 이년이나 지난 책이었다. 그래서 그 책은 지도와 내가 꼭 가봐야 하는 장소만 체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리고 미술관에 관한 여행서는 꽤 요즘 것 이어서 요즘 뉴욕에서 보이는 것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딱히 미술을 공부한 적은 없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미술은 나의 관심 분야가 되었다. 어쩌면 미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을 좋아하는 것 일 지도 모르지만... 고등학교2학년 때 처음으로 서양미술사에 관한 수업을 들었었다. 동양미술사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는데 그 이후에 했던 서양 미술사는 잊을 수가 없었다. 우울했던 고등학교생활이었다. 성적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고 고등학교 중간에 학교를 옮기는 바람에 친구들이랑 사이도 좋지만은 않았다. 학교도 일반 학교가 아니었기 때문에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학교 생활 속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수업 듣는 미술 수업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그 이후로 조금씩 미술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2학년 두 번째 중간고사를 보고 나서, 미술사 수업이 끝난 이후에 처음으로 미술관을 갔다. 처음 갔던 미술관이 서울 시립 미술관이었다. 그때 서울 시립 미술관은 저녁 8시까지 하는 몇 안 되는 미술관이었다. 수업이 다 끝나면 다섯 시, 그리고 저녁을 빨리 먹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 시청역까지 6시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2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서 보이는 것들, 시청, 정동극장, 이화외고, 정동교회, 그리고 시립미술관. 가장 나를 즐겁게 해주는 길이였다. 그렇게 시립미술관을 갈 때 기분은 너무 좋았다.


'모마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가면 되겠지?'

'아마 열흘 중 며칠 처음에는 보스턴에 있고 다음에는 뉴욕으로 가겠지.'

'하루에 밥값으로만 80달러 정도 쓸 거고. 80달러면 물가까지 생각하면 하루에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원 정도 쓴다고 생각한 거니깐 뭐 나쁘진 않겠지.'

계획은 이게 끝이었다. 

‘가보면 알겠지. 계획이란 건 또 바뀔 거니깐.’

그래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워싱턴 DC 도시 방문이 문제였다. 

‘하루 정도는 워싱턴을 가고 싶긴 한데…’

메신저로 쪽지가 한 장 왔다.

“* 공항에서 지하철 파란색노선 Bowdoin행 타고 * Government Center에서 초록색노선 B (Boston College행), C (Cleveland Circle행), D (Riverside행) 중에 하나로 갈아타서 

* Kenmore역에서 내려서 계단 위로 올라와서 밖으로 나와서 57번 버스 승차 

* 20분 정도 타고 가다가 버스에서 North Beacon Street이라는 방송 나오면 노란색줄 누르 고 하차 (Store 24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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