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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연 Apr 03. 2024

서른이 되니 줄어드는 친구들

뭐 하나 고민스럽지 않은 게 없는 나의 인생 점검 에세이

(1) 서른이 되고 달라진 친구관계

친구들과 항상 연락하고 지내던 나였다. 외동딸인 나는 또래와의 시간을 보내려면 오직 밖에서 친구를 사귀어야 했고, 그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을 정말 좋아했다. 이런 기조는 취직 후에도 지속되었다. 대학, 고교, 중학교 친구들에 직장동료까지 자주 연락하고 만났다.


그러던 내가 변했다. 친구를 자주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먼저 연락을 잘 안 한다. 이런 나 자신이 어색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어른들이 나중에 어차피 친구 다 없어진다고, 친구에 너무 시간 쓰지 말라고 말씀하실 때 안 믿었다. 공부를 위한 잔소리겠거니 여겼다. 난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게 어쩔 수 없는 수순임을 체감한다.


(2) 우정의 목적

우정만큼 접착력이 약한 관계가 없는 거 같다. 그 어떤 이해관계도 법적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혹은 첫 직장에서 만난 인연이라 하더라도 지금 공통된 그룹에 소속되어있지 않다면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내가 어떤 친구를 좋아해서 그 친구에게 지금까지 많은 열정과 시간을 쏟았더라도 마찬가지다. 만일 한쪽이 바쁘거나, 상황이 안 되거나, 이사를 갔거나, 혹은 서로 사소한 말다툼만 해도 관계가 멀어지기 십상이다. 더 무서운 건, 그냥 단순히 관심이 사라졌어도 쉽게 잊혀지는 관계라는 거다.


물론, 아직도 난 친구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제는 친구를 만날 때 이유가 필요하다. 할 말이 있거나, 취미활동을 공유하거나, 그런 모종의 목적이 있어야만 만남의 동기가 자극된다.


(3) 쿨타임과 현실자각타임

가끔 사는 게 지치고 외로워서 친구를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자주 연락하는 친구들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그 친구들조차도 약간의 쿨타임이 필요하다. 내가 직장에서 미치게 힘들어서 주말에 친구와 힐링하고 싶어도 같은 친구를 매주 만나지는 않는다. 정말 친한 친구도 최소 한 달, 보통 3달 정도의 쿨타임을 갖는다.


'그냥'이 없다. 이십 대 중반까지만 해도 ‘심심한데 놀래?’하고 만나서 그냥 친구랑 시간 보내는 일이 흔했다. 학교 끝나고 꼭 친구랑 공원이라도 가야 오늘이 꽉 찬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 친구들과 자주 만나서 웃고 떠들다 헤어지면, 집에 왔을 때 씁쓸하고 공허하다.


이 현타 오는 느낌은 뭘까?


(4) 내가 변한 걸까

외향적인 내 성향이 바뀐 걸까? 기력이 쇠한 걸까? 아님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걸까? 정신적인 것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 유물론적 삶을 살게 된 걸까? 혹시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일까? 놀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일까?


하나씩 탐구해 보자. 외향적인 성격부터 살펴보자면, 확실히 스무 살 때에 비해 차분해진 것은 맞다. 그땐 어느 집단에 끼지 못해서 아쉽고 친구에게 서운해했지만 이제 그런 감정은 거의 없다. 이게 내향적인 건가? 아니다. 난 여전히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그 사람 사는 얘기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새로운 장소나 문화를 경험하고 신선한 자극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관심받는 것도 좋아한다. 고로 외향적인 인간인 건 맞다.


슬프게도 기력이슈는 어느 정도 해당되는 것 같다. 음주생활에서 가장 체감한다. 어느 정도 술을 마시면 신이 나는 게 아니라 피곤하다. 조용히 택시 어플을 켠다. 게다가 숙취가 상당히 걱정된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갈아 만든 배를 마시고 하루종일 커피는 안 마시는 등 숙취 해소에 공을 들인다.


의미를 찾는 유물론자인지 자문해 보자.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뭔가 남는 게 있는 만남을 추구하게 된 걸까? 친구들을 만나면 즐거움이 남는다. 하지만 상술한 것처럼 비슷한 만남을 자주 갖게 되면 조금 허탈감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가끔 만나면 서로 업데이트할 소식도 있고 또 새로운 정보들도 있어서 재미있는데, 자주 보면 그런 자극이 부족한 걸까? 이런 도파민 중독자이거나 혹은 계산적인 사람인 걸까?


내 인생에 대한 압박감과 책임감 측면에서 생각해 보려면, 내가 그렇게 책임감 강한 사람인가를 정의 내리고 시작해야 한다. 내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고민으로 지새운 밤에 비해 대단한 사람이 되진 않았다. 정확히는 잘나지고 싶기보다는 뒤쳐지기 두려워하며 살아온 거 같다. 그러한 압박감을 강하게 받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또한 일을 시작하면서, 과음 같은 개인적인 이유로 컨디션이 악화되어 회사에 지각하거나 편집을 제때 끝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약간의 책임감은 갖게 되었다. 기력이 쇠했기에 자주 놀면 일터에서 피곤해지고 집중하지 못하니까 적당히 놀려는 것이 있다.


(5) 다들 가슴속에 숨 쉴 구멍 하나쯤은 있잖아요?

얼마 전에 친구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한 쪽이 사정이 기울면, 지금 같은 우정을 유지하기 힘들 수도 있어. 그러니까 우리 둘 다 계속 잘 되어야 해. 그래야 아무 거리낌 없이 우리가 만나고 여전히 서로를 응원하고 위할 수 있을 거야". 돌이켜보니 이 말에 오늘의 모든 고민이 함축되어 있는 거 같다.


어쩌면 인간의 생애주기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도 모른다. 10대에는 또래집단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중요했고, 20대 때는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게 중요했고, 지금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하고 내 일을 잘 해내는 게 중요하다.


많은 한국인들이 틀에 박힌 삶의 과정을 권장받게 된다. 20살에 대학 잘 가서 좋은 회사 취업해서 30대에 결혼하고 애 낳고 어쩌고저쩌고… 나도 그러한 권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친구들과는 생애주기에 따라 변화하는 우리 삶의 포커스와 나이마다 강권받는 여러 인생 과업의 압박에 공감대가 형성된다. 피가 섞이지도 않았고 경제적으로 묶여있지도 않지만, 나의 숨 쉴 구멍이 되어준다. 나도 친구도 자기 인생을 잘 살다가 한 번씩 만나서 숨 한번 돌리는 휴게소 같은 존재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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