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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연 Jul 03. 2024

미완성 서른

뭐 하나 고민스럽지 않은 게 없는 나의 인생 점검 에세이

(1)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던 29번째 생일이자 서른 살 생일

생일을 맞이했다. 한국 나이로 서른, 국제표준(a.k.a. 윤석열 나이)으로 29세이다.


성대했던 돌잔치, 김밥과 햄버거를 돌리던 초등학생 생일, 깜짝 카메라와 초코파이로 축하받은 중고등학생 생일, 생일주를 마시던 대학생 생일을 돌이켜본다. 나이에 따라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많은 축하를 받았다. 어릴 때는 생일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생일마다 많이 축하해주다 보니 생일에는 응당 잔뜩 축하받고 선물 받고 맛있는 거 먹는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권리의식(?)이 강해지다 보니 주객전도가 되기 쉬웠던 거 같다. 내 생일을 충분히 축하해 줬으면 좋겠고, 그날 나를 소중히 대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너무 커서 되려 실망스러운 생일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 시간들 속의 생일과 달리, 나의 올해 생일은 미온수와 같았다. 매일매일 세수할 때 내 피부에 닿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평범하고 당연한 물과 같이 평소와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 약속도 일정도 없었다. 어릴 때에는 12시 땡 하면 수십 개의 축하 카톡이 우르르 왔지만 이번 생일에는 거의 연락이 안 왔다. 내 남자친구조차 자정 전에 잠이 들었다. 아침에는 집에서 나름 특식인 월남쌈을 먹었다. 낮에는 방을 약간 정리하고 산책을 하다가 꽈배기 하나를 사 먹고 스타벅스에 갔다. 책을 읽고 할 일을 했다.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이젠 보상심리 같은 것을 느낄 만한 나이가 아닌 거 같다. 오히려 고맙게 연락해 준 주변인에게 내가 대접을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상황이 안 되었다. 요즘 뭔가 노력하고 준비하는 기간이라 당면 과제들이 많아서 일정에 이벤트가 끼는 것이 부담되었다. 맡은 외주 업무, 해야 할 공부, 준비해야 할 것들의 마감기한이 다가오고 있었다.


(2) 20대의 마지막과 30대의 처음 그 중간 어디쯤

20대라고 박박 우기고 있지만 20대 초반을 생각하면 같은 20대로 묶여도 되나 싶게 많이 다르다. 얼마 전 늦은 저녁에 대전 둔산동에 갔다가 여실히 느꼈다. 남자친구와 밤 산책을 하다가 갤러리아 백화점 뒤쪽을 들어갔는데 20대 초반 친구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계단에 자리 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스캔하는 남성, 썸남이 자리를 비운 동안 오프숄더 높이를 조정하고 입술에 화장품을 바르는 여성, 소주를 추가 주문하는 단체 손님들이 보였다. 밤 12시가 다 되었는데도 피곤한 기색 없이 한창 놀고 있는 그 친구들의 에너지에 한 번 놀라고, 가게에 적힌 ‘아침 10시까지 영업‘이라는 문구에 또 한번 놀라 자지러질 뻔했다. 그럼 이 친구들은 지금부터 아침 10시까지 놀기도 한다는 말인가...? 전혀 새로운 곳에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거리의 어린 친구들과 나는 완전히 다른 집단처럼 느껴졌다. 20대라는 같은 그룹에 속해 있다기에는 그들과 요즘의 나는 여러모로 다르다.


20대 초반에 나는 큰 성공을 꿈꿨고, 놀고 싶어 날뛰었고, 우정에 상처받았고,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커리어에 인생을 올인하기보다는 나와 내 주변 사람을 위한 사랑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고, 열심히 일한 만큼의 뿌듯한 보상으로서 여가를 즐기고 싶고, 우정에 기대하지 않고, 내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안다. 그때보다 많이 성숙하고 차분해졌다.

하지만 30대라고 말하기엔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서른이나 됐는데 왜 이 정도밖에 안 돼?’ 나는 서른 즈음이면 좋은 직장 다녀서 돈도 많이 벌고 고급스러운 블라우스를 휘날리며 커리어의 성공가도를 달리고 동창회에서 웃으면서 어린 시절을 추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직장도 그만뒀고 돈도 없고 커리어는 평범하며, 동창회는 무슨.. 대학 동기들 결혼식에서도 동창 만나면 어색해 죽겠다. 내가 서른이라고 생각하면 압박감이 느껴지고 조급함이 밀려온다. ‘이제 그만 방황하고 자리 잡아야지. 나이 서른에 뭐 하는 거야. 이제 시간이 없어.’


(3) 미완성 서른

아직은 서른보다는 스물아홉으로 살고 싶다. 아직 서른이 될 준비가 안 되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얘기지만 압박감이 다르다. 나 자신에게 아직 기회가 있고, 도전해도 된다고, 조급함의 엔진 시동을 끄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진짜 서른까지 딱 1년 남았다. 그동안 노력해서 완성형 서른을 맞이하도록 하자. 좌충우돌했던 20대 시절을 잘 봉합하고 마무리해서 앨범에 담아 넣는 준비를 하자. 30대부터 펼쳐질 인생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20대와 충분히 작별하자. 산만했던 관심사와 진로를 정리하고 또렷한 나만의 길로 깊게 뛰어들 정비를 하는 시간을 갖자. 내년 생일이 되었을 때에는 준비 중인 상황이 아니라 깊게 성장 중인 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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