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적소에 감정선 넣었지만 정작 '공감'이 결여된 영화
<시에라 연애대작전(Sierra Bugess is a Loser)(2018)>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 평범한 외모에 뚱뚱한 몸매의 시에라, 완벽한 외모의 치어리더 베로니카, 그리고 미식축구 쿼터백이지만 찌질한 감성도 가진 제이미. 미국의 전형적인 캐릭터들을 활용한 청춘 성장 드라마다. 영화는 알맞은 타이밍에 들어갈 전형적인 장면과 감정들을 배치했다. 하지만 이 기본에 충실한 드라마에는 정작 가장 기본적인 것, ‘공감'이 없다.
사악한 퀸카 베로니카는 자신에게 작업 거는 제이미에게 시에라의 번호를 넘겨주었다. 시에라는 점점 제이미에게 욕심이 생기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제이미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는다. 베로니카와 시에라는 ‘불편한 장난’을 했다.
영화는 두 여자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갈등을 해소하고 보는 이에게 '뭔가'를 줘야 했다.
영화는 두 여자의 성장 배경과 가정환경을 보여주기는 한다. 베로니카의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이 트라우마로 인해 ’젊음’과 ‘외모’에 집착한다. 베로니카는 철저하게 외모를 관리해야 사랑받는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정작 남자친구에게는 무식하다고 무시 당한다. 반면 시에라는 ‘뇌섹녀’다. 부모님은 유명한 작가이고 스스로에게 프라이드 충만한 사람들이다. 시에라도 성적이 무척 좋지만, 자존감이 높지는 않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아주 무시 당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두 사람은 거래를 한다. 베로니카가 시에라에게 외모를 빌려주고, 시에라는 베로니카에게 지식을 빌려주는 것이다. (이 구도도 정말 전형적이다. 외모와 지식의 등가교환, 백치미와 뇌섹녀의 갈등과 우정이라니)
둘은 자주 만나서 서로의 연인을 속이면서 우정을 쌓는다. 이 감정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베로니카가 엄마의 구박을 받는 것을 보고 시에라가 제대로 위로해준 것도 아니고, 공감해준 적도 없는데 베로니카는 마음을 연다. 여기부터 시에라가 외모는 비록 훌륭하지 않지만 내면은 훌륭하다라는 명제가 깨지기 시작한다. 그저 베로니카가 여리지만 강한 척하면서 외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시에라에게 마음을 연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후에 친구들의 질타에도 굴하지 않고 베로니카는 시에라와의 우정을 지속한다.
두 사람의 우정은 점점 두터워졌지만, 애정 전선은 순탄치 못했다. 베로니카의 남자친구는 어린 베로니카를 갖고 장난치고 놀았을 뿐, 무식하다는 말도 어떤 관심도 영혼도 없이 했던 것이었다. 제이미는 오프라인 만남을 원하고 베로니카가 대신 데이트를 나간다. 제이미가 키스를 원하자 베로니카는 그의 눈을 가린 채 시에라가 그와 키스하게 해주기도 한다. 시에라는 베로니카가 제이미에게 마음이 생길까봐 불안해지고, 급기야는 두 사람의 관계를 오해하고 만다.
결국 제이미가 출전하고 베로니카가 치어리딩을 하고 시에라가 축하 음악 무대를 하는 날, 일이 터진다. 열등감 폭발한 시에라는 SNS에 베로니카의 비밀을 올려버렸고 그날 경기도 응원도 세 사람의 관계도 완전히 끝장나버린다. 베로니카는 상처받고(이후 은따 같은 것도 당한다) 제이미는 분노한다. 시에라는 모든 걸 자신의 자존감, 열등감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난 그 어떤 이유로도 시에라의 행동들을 이해해주기 어렵다. 지금까지 제이미를 기만해왔으면서 죄책감도 별로 느끼지 않고, 팩트체크도 하지 않은 잘못을 이유로 베로니카에게 엄청난 흑역사를 만들어주었다. 자존감 측면에서 봤을 때 찌질한 감성을 가진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싶지만 용기내지 못하는 제이미도, 제대로 된 소통 없이 외모로 속박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베로니카도 안쓰럽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스토리가 흘러가면서 제이미와 베로니카는 성장했다. 두 사람은 시에라를 용서하고 수용하기로 한다. 용기를 내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두 사람과 달리 시에라는 결말까지도 거의 아무 변화도 깨달음도 얻지 못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하나 만들어서 베로니카에게 보내긴 한다. '예쁜 네가 부러웠어..'가 골자인 변명의 노래다. 시에라가 해왔던 잘못, 세 사람의 감정 모두 제대로 해소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에라는 제이미와의 사랑, 베로니카와의 우정을 모두 얻는다.
이 영화에서 놓친 공감 포인트 몇 가지를 꼽아보았다.
(1) 시에라는 왜 제이미를 속이면서까지 그와 연락하고 싶었을까
시청자가 은연 중에 추론은 가능하지만 시에라의 단짝 '댄'과의 대화에서 좀더 진솔하게 나올 필요가 있었다. "나쁜 거 아는데, 정말 나쁜데, 이렇게라도 제이미랑 연락해보고 싶어. 대화는 결국 나랑 하고 있지만, 나와 교감하고 있지만, 내 외모가 베로니카가 아니라 시에라라는 걸 그가 안다면 버림 받는다는 현실을 난 너무나도 잘 안단 말이야..." 같은.
(2) 베로니카는 왜 그렇게 단호히 시에라를 지켰을까
베로니카는 평생을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왔다. 아무리 시에라와 우정을 쌓았다고 해도 평생의 습관을 한번에 버리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베로니카는 잘 나가는 친구들을 단호하게 버리고 시에라를 선택한다. 시에라한테 받은 철학 강의는 남자친구와의 연애에 거의 도움도 안 되었고 시에라랑 어딜 놀러갔다던지 시에라가 목숨을 구해준 적도 없는데 말이다. 영화 전개상 예상되는 행동이었지만, 감정의 터닝포인트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3) 제이미는 누가 지켜주나
이 영화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제이미이다. 두시간 동안 자신을 기만한 두 여자를 용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에라는 사랑하게 된다.
제이미는 베로니카의 번호를 물어봤지만 시에라의 번호를 받았다. 베로니카와 연락을 주고받는 줄 알았지만 그 장난에 넘어가 시에라와 하고 있던 것이다. 베로니카와 데이트할 때 자신은 설렜지만 베로니카는 하나도 안 설렜을 것이다. 베로니카(인 줄 알았지만 시에라)와 키스도 했다. 시에라 입장에서나 로맨틱이지 제이미 입장에서는 도의적으로 한참 잘못됐다. 게다가 시에라는 길에서 만났을 때 말을 하지 못하는 핸디캡이 있는 것처럼 연기까지 했다. 제이미는 가족 중에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 있어서 그 부분에 각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왜? 어떤 이유 때문에? 이 결말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그 이유가 필요하다.
시에라가 온라인으로 썸 탈 때 음악을 만들어줬고 그걸 제이미가 매일 들었다던지, 제이미의 자존감이나 친구, 진로 등 여러 고민들에 대해 공감하고 위로해줬다던지하는 결정적인 정신적 교감이 있었다면 어떨까.
지극히 평면적이고 찌질한 인간을 다양한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주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영화의 제목 그대로, 시에라는 루저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허탈함과 불쾌함, 그리고 베로니카 배역이 참 예쁘다는 감상을 얻었을 뿐 그 어떤 메시지도 가져갈 수 없었다. 각본이 탄탄하지 않은데 그 와중에 음악, 문학 등의 예술적 요소와 미국 입시, 청소년 문제까지 욕심내는 바람에 영화는 산만하고 얕았다. 상투적인 배경과 캐릭터, 허무하고 기만적인 전개를 보며 감독이 미국 청소년의 자존감이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고민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슬픔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