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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리 Jan 10. 2022

엄마와 꽃게

30년 만에 귀인이 나타났으니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꽃게 요리를 자주 했다. 김치찌개도 못 끓이던 시절에도 나는 싱크대에 서서 꽃게 손질을 거들었다. 




 게 요리를 하려면 손질이 우선이었다. 활게들은 삶의 마지막 불꽃을 불살라 맹렬하게 집게를 휘둘렀다. 그럼 엄마는 싱싱한 꽃게들을 냉동실로 보내 급속 기절시켰다. 


 꽃게들이 정신을 잃고 잠잠해지면 작업이 시작된다. 먼저 집게발 두 개와 작은 발 여덟 개를 가진 생물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집게발을 비틀어 뗀다. 배딱지에 붙은 세모 모양 부분을 벌려 뜯고 배와 등딱지가 분리되면 꽃게 속에 꼭 갈비뼈처럼 붙어있는 아가미를 떼낸다. 내장은 취향에 따라 따로 꺼내두거나 그냥 둔다. 나머지 부산물로 보이는 부분(그냥 버리고 싶은 부분)은 정리한다. 잘 손질한 꽃게는 먹기 좋은 크기로 뭉텅뭉텅 잘라준다. 


 엄마는 비린내 나는 걸 뭐하러 만지냐고 하면서도, 이 나이에 꽃게 손질 할 줄 아는 애는 별로 없다면서 나를 추켜세웠다. 난 ‘꽃게 손질도 할 줄 아는 사람이지’ 하고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엄마 손가락에는 꽃게 집게발에 물린 흉터가 있었다. 엄마보다 늦게 결혼한 이모가 함들이 하는 날이었던가, 손님상을 차리느라 꽃게 손질을 하던 날이었다고 한다. 꽃게가 물었는데, 집게발이 손가락을 놓아주지 않았다. 집게발을 꽃게 몸통에서 자른 후에도 여전히 손가락이 빠지지 않았다면서, 엄마는 날더러 조심하라 신신당부했다. 개에 물린 사람은 개가 무섭다. 나는 엄마가 그러고도 게를 어떻게 계속 만지는지 의아했다.


저 매서운 기세를 보라 @pixabay DCChefAnna

 우리 집은 게철을 놓치지 않았다. 봄 가을 꽃게를 탕으로 무침으로 자주 먹었다. 엄마는 고춧가루를 넣어 빨갛게 만드는 게 무침을 맛깔나게 했다. 


 아빠는 엄마가 게 무침을 만든 날은 꼭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아이고 맛있는 게가 남아서 어쩔 수가 없네” 하며 반 공기를 더 먹었다. 둘째 날은 “게가 하루 삭은 날 제일 맛있지”하며 잘 먹었고, 셋째 날까지 게가 남은 날은 “아까우니까 얼른 먹어치워야지”라면서 싹싹 드셨다. 이런 꽃게 매니아에게도 도전적인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게 다리였다. 억센 집게발은 가위로 몇 번 잘라도 안 쪽 살을 꺼내기가 영 번거로웠다. 


 게를 몇 마리씩 사다 요리하면 인기 없는 집게발은 끝까지 남았다. 엄마는 “너네 아빠는 꼭 다리를 남기더라”며 눈을 흘겼다.



 그걸 보고 고른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이 집엔 꽃게를 좋아하는 사위가 들어왔다. 먹성이 좋은 사위는 특히 꽃게를 잘 먹었다. 


 이 집 사위는 멸치를 우린 물에 된장을 풀고 큼직한 애호박과 꽃게만 넣어 바글바글 끓이는 꽃게탕도, 새빨간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간장, 깨소금을 넣고 버무린 꽃게무침도 넙죽넙죽 먹었다. 그 중에서도 엄마가 감탄한 건, 꽃게 몸통만 편애하지 않는 그의 박애정신이었다. 그는 먹기 쉽고 살이 그득한 몸통을 먼저 공략하긴 했지만, 다리라고 남겨놓는 법이 없었다. 마지막 한 개의 다리까지 가위와 젓가락, 왼손 오른손을 총동원해 정성껏 발라낸 후 쪽쪽 빨아 먹었다. 엄마는 “너무 맛있게 먹어서 정말 꽃게 요리 해줄 맛이 난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엄마의 꽃게 인생 30년 만에 손 가는 꽃게 요리를 200% 즐기는 사람이 나타나 다행이다. 다음 30년은 엄마가 더 활기차게 꽃게 요리를 만들면 좋겠다. 그 다음 30년은 엄마의 비법을 전수받아 내가 꽃게 요리를 며느리에게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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