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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Apr 29. 2020

하루의 문화생활 / 비밀 앞에 선 사람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누구나 아는 비밀’


동생 결혼식에 맞춰 고향을 찾은 라우라. 고향은 이미 잔치 준비로 떠들 썩 합니다. 즐거운 분위기도 잠시, 결혼식 저녁 라우라의 딸 일리나가 사 라집니다. 몸값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받은 가족은 지혜를 모아 딸을 찾아 나섭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범행이 가까운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가족의 오래된 비밀 역시 함께 드러납니다.

라우라의 가족은 대가족입니다. 엄청 많은 인물이 나오죠. 누구를 주인 공으로 봐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인물들의 비중 또한 균형 있게 나오기 때문에, 영화 초반을 견디기 어려울 수 있어요. 자막에 이름이 쓰여서 나 오는 것도 아니고요. 인물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도 어렵죠. 이런 영화는 주요 인물을 유명한 배우를 써서 관객에게 인물을 각인시키기도 합니다. 한국영화 1987이 비슷한 접근을 했죠. 이 영화 역시 주요 인물은 유명한 배우지만, 인물 관계가 워낙 복잡해서 한 번에 관계도가 그려지진 않습니 다. 하지만 이 시간을 견디고 영화를 보다 보면, 곧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인물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건이 중요한 영화는 아닙니다. 일리나의 납치는 중요한 사건이고 이야 기의 전환점이지만, 정작 납치과정과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과정은 초등학생 방학숙제 하듯 후루룩 해결해요. 범죄의 서스펜스에는 관심이 없 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입 니다. 이야기는 일리나의 납치에서 한 번, 어떤 비밀이 밝혀질 때 한 번 전환됩니다. 영화는 두 사건을 드라마틱하게 다루지 않고, 그 사건을 마 주하는 인물의 얼굴을 담담히 비춥니다. 이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 어 하는지, 무엇에 관심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영화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모든 인물이 저마다의 비밀 을 갖고 있습니다. 비밀을 지키는 사람, 비밀을 지키지 않는 사람, 비밀 앞에 숨는 사람, 비밀 앞에 정직하려고 하는 사람. 극에서 등장하는 총은 결국 쏘아져야 하듯, 극에서 등장하는 비밀은 결국 밝혀집니다. 그리고 인물들은 갈등합니다. 모든 인물이 결국 저마다의 선택을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는 영화가 도덕극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보통의 도덕극에서 비밀 앞에 정직한 것이 정답처럼 그려진다면, 이 영화는 그 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평론가는 ‘아쉬가르 파라디 작품의 인물들은 각자 변호인을 대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거리 를 두고 인물에 대한 판단을 하기보다, 관객의 가치관에 따라 어떤 인물을 선택하여 응원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라는 생각을 하고 보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시간을 넉넉히 두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또 한가지. 스페인 영화입니다. 유럽영화 특유의 리얼한 연기와 절제된 음악, 아름다운 풍경이 담겨있는 영화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이 더 절실해진 요즘 화면에서라도 이국적인 풍경을 만나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겠죠. 개인적으로 저는 파코의 농장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Tip: 영화를 끝까지 보면 첫 장면이 새롭게 다가오는 영화가 있죠. 이 영 화가 그렇습니다. 많은 은유가 담겨 있죠. 그래서 이 영화 두 번 보는 것도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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