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넷플릭스를 통해 청춘시대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5명의 대학생이 공동거주하며 겪는 우정과 사랑, 나아가 데이트폭력과 아동 성폭력 같은 사회문제에 이들이 연대하여 극복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남자 셋 여자 셋, 응답하라 시리즈 등등 한 집이나 한 동네에 거주하는 등장인물들이 알콩달콩 관계 맺고 여러 사건에 대응하는 공동체 이야기는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칼 같은 각자도생의 현대사회에서 ‘저런 게 어딨어’ 싶지만 가족, 찐친(진짜 친구; 절친, 베스트 프렌드)과 각자 나름의 친밀관계를 만들며 살아가는 우리 삶을 생각하면 또 어딘가 그런 집과 동네가 있지 않을까 궁금하다.
궁금증에 찾다 보니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복음자리 잼이 마을 공동체와 얽힌 음식이라고 한다. 70~80년대 서울에서 내몰린 판자촌 철거민들이 힘겹게 시흥시 신천동으로 이주해 복음자리 마을을 만들어 살았고, 이들이 생계를 위해 만들어 판 것이 복음자리 잼의 시작이란다. 재개발로 복음자리 마을의 대부분이 고층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고 잼 사업도 이제 다른 기업에서 운영하지만 이런 공동체가 진짜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그림> 복임자리 마을의 옛 모습 (출처 : 디지털시흥문화대전)
하지만 왠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 같다. 그래서 더 찾아보니 서울 마포구에 응답하라 1988에서나 볼 법한 마을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1994년 신촌공동육아협동조합 우리어린이집을 통한 공동육아로 시작된 ‘성미산 마을’이다. 아이돌봄 문제를 공동체에서 해결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먹거리, 아이교육, 건강, 주거 등 다양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대응하며 마을을 만들었고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옆집에 사는 분의 얼굴도 잘 모르는데 우리의 일상생활 속 많은 문제를 이웃과 함께 풀어가는 마을이 진짜 있다니 놀랍다. ‘대량구매하면 더 싼데 싶어’ 괜히 물건을 많이 사 쌓아두었다가 못 쓰게 된 일이나, 오래 여행가고 싶어도 우리 집 고양이가 걱정돼 못 간 게 생각난다. 저런 드라마 같은 마을에서는 같이 나누고 같이 돌봐줄 수 있겠구나 싶다.
그런데 먹거리, 돌봄같이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은 불편한 여러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건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한두 푼도 아닌 집 문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상상이 잘되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문제의식의 이웃 혹은 찐친과 마을이라는 가까운 물리적 공간에서 살 수 있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데다, 영혼을 끌어모아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집’이 아니던가. 집 문제를 이들과 함께 해결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내 삶에 유용할 듯하다.
길을 모르겠을 때는 물어보면 된다. 성미산 마을의 주민이 주거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보니 ‘공동체주택’과 ‘사회주택’이라는 집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두 주택 모두 공공의 지원을 받아 입주자에게 저렴한 주거비로 집을 제공하는 동시에 입주자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공동체주택은 공공이 지원하는 다른 주택들과 달리 입주자가 주택을 소유하거나 입주자 공동체가 주택을 소유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단다. 이름부터 공동체 냄새가 물씬 풍기더니 말 그대로 공동체가 내 집 마련을 도와준다.
<그림> 성미산 마을의 주거공동체 함께주택협동조합의 함께주택 1호 (출처 : 성미산마을 홈페이지)
공동체주택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이 집은 서울시와 부산시에서 조례에 따라 지원하는 주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그 집을 지어 운영하는 사업자에 따라 주택을 정의한다고 한다. 공공주택사업자가 짓는 공공분양주택과 공공임대주택, 민간사업자가 분양하거나 세를 놓는 민간주택, 사회적경제 주체가 운영하는 사회주택 이런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공동체주택은 누가 지었느냐보다는 입주자들이 상시적으로 공동의 관심사를 해결하며 공동체 활동을 생활화할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두는 집이라고 한다. 때문에 서울시 조례는 공동체공간과 공동체규약을 이 주택을 정의하는 요소로 포함하고 있고, 공동체주택 인증을 위해서는 공간계획과 공간의 운영‧관리계획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대신 집을 점유하는 방식(임차와 소유)과 집을 지어 운영하는 사업자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공동체주택이 가능하다. 우선, 점유방식에 따라 임대형과 자가소유형이 있고, 임대형은 다시 사업자별로 공공임대형, 민관협력 임대형, 민간임대형으로 나뉜다. 이때 민관협력 임대형과 민간임대형은 사회적경제 주체가 참여하는 사회주택 모델로 지어질 수도 있다. 이런 공동체주택들 중 공공임대형은 시세의 50%, 나머지 유형은 시세의 95% 수준의 주거비로 거주할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민간임대형과 자가소유형 주택은 공동체를 통해 내 집 마련 걱정을 덜 수 있는 집이기도 한다. 자가소유형 공동체주택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입주시점부터 찐친들과 내가 집을 사서 소유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민간임대형 공동체주택은 기본적으로 민간임대사업자가 소유한 주택을 찐친들과 공동체를 이뤄 장기간 빌려쓰는 집이다.
하지만 민간임대형에서도 민간임대사업자와 협의하여 임대차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공동체주택의 소유권 지분을 적립해나가거나 미리 약속한 분양가를 임대차종료 시점에 내는 방식 등으로 우리 집 마련을 할 수 있다. 자가소유형 주택과 비교하여 민간임대형 주택에서 우리는 한 번에 집값을 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럼 공동체로 마련하는 ‘우리 집’이 나 혼자 마련하는 ‘내 집’보다 좋은 점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HF한국주택금융공사는 공동체주택을 짓는 사업자에게 총사업비의 최대 90%까지 저리의 PF대출을 보증해준다고 한다. 게다가 서울시는 이렇게 빌린 돈의 이자를 2%포인트까지 지원해준단다. 이런 공공지원은 우리 집 마련에서 내가 부담해야 하는 주거비 부담을 줄여준다.
예를 들어 한 비영리 주택시행사에서 서울 강북구에 짓기 위해 준비 중인 민간임대형 공동체주택은 60m2(18평) 방이 3억 3천 정도의 전세가(시세의 95% 수준)를 보였다. 지분적립 방식으로 나중에 집의 소유권을 얻으려고 하면 이보다 조금 더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HF한국주택금융공사는 인생을 잇고 행복을 지을 뿐 아니라 공동체주택도 짓고 있는 것이다.
건물 내 다른 집들을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찐친, 이웃이 소유하고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다세대주택이나 나홀로아파트에서 내 집을 마련하게 되면 건물 내 집들의 소유자가 다 다르기 때문에 주택의 물리적 관리와 처분이 쉽지 않을 수 있는데, 공동체주택에서는 그런 어려움을 덜 수 있다.
<그림> '책'을 테마로 한 공동체주택 마을 '도서당' (출처 : 조수봉)
이제 찐친과 ‘우리 집’을 마련하는 것이 주거비 부담에서나 주택의 관리와 처분에서나 보통의 빌라 등에서 내 집을 마련하는 것보다 장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근데 찐친이 1~2명이라 공동체주택을 우리끼리만 마련하기에 어려우면 어떡하지? 난 아싸(아웃사이더, 비주류)라 찐친이 많이 없는데...
서울시가 제공하는 공동체주택 매뉴얼 북에 소개된 공동체주택을 짓는 과정을 보니 이런 걱정이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 우선, 마음이 맞는 몇몇이 모여 공동체주택을 통한 ‘우리 집’ 마련을 결심하면 개개인이 활동하고 있는 SNS와 카페, 서울시 공동체주택 플랫폼 등을 통해 입주자를 모집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이렇게 하나, 둘 모이는 미래의 이웃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넓혀가는 과정을 거친다. 나아가 미래의 이웃들과의 모임에서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집을 어떤 형태로 설계할지, 공간배치는 어떻게 할지, 예산은 얼마나 부담할지 등에 대한 논의들도 하게 된다고 한다. 조금은 두렵기도 하지만 이런 매뉴얼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새롭게 만난 이웃들과도 찐친이 되며 ‘우리 집’을 마련할 수 있을 듯하다.
사실 마을, 동네, 공동체 이런 단어를 들으면 따뜻하지만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공동체주택에서 살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서울시에서 공동체주택으로 인증한 사례들은 육아, 예술가, 독서, 반려동물, 여성 등을 테마로 하고 있었다. 우리 일상, 취미와 밀접해 보여 우리도 공동체주택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찐친들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집을 마련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공동체주택을 알게 되었지만 막상 진짜 도전해보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찐친과 함께 사는 집을 꿈꾸거나 이사하기 지쳐 투자목적보다는 거주목적에서 내 집 마련을 계획하고 있다면, 무거운 발걸음을 떼 공동체주택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미 공동체주택을 지어 운영하고 있는 몇몇 사회적경제 주체가 있다고 하는데 이들에게 문의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도시에서 쫓겨난 어려운 사람들이 뭉쳐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시도가 오늘날 우리 삶에 또 다른 선택지를 주고 있음에 공동체라는 단어가 주는 따뜻함을 다시 발견한다. 오늘 같은 날엔 찐친과 함께 사는 삶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 이 글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