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문제?! 격차문제입니다.
2018년에 방영된 ‘아는 와이프’는 육아와 직장생활에서 비롯된 부부갈등에 지친 남성 배우자가 과거를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살며 깨닫게 되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룬 드라마다. 새로운 삶을 살던 남성 주인공은 혼인 생활에서 여성 배우자가 변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며 반성하고 변화해간다.
‘한 번만 더’를 소망하며 ‘타임슬립 찬스’를 외치고 과거를 바꾸고 싶은 것은 비단 파트너 관계를 비롯한 인간관계에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그때 다른 진로를, 그때 다른 투자를 선택했다면 지금 내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한다.
2020년 우리사회의 주요한 문제를 되돌아보면 ‘코로나19’와 함께 ‘주택문제’를 꼽을 수 있을 듯하다. 2019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주택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상승으로 인해 ‘주택가격’에 대한 보도가 언론 지면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연이은 공급대책 발표, 금리 인상 등에 힘입어 2021년 하반기 즈음부터 집값문제는 점차 안정되고 이제는 집값 하락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조금 아끼자고 전세로 신혼집을 마련했는데 바로 옆집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걸 보며 ‘그때 샀어야 했는데’를 목구멍에서 삼키고 속이 타들어 간 사람이 부지기수로 생겨난 뒤였다.
우리가 만약 드라마에서처럼 2019년에 만들어진 500원짜리 동전으로 과거를 바꾼다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속으로만 삼킨 ‘그때 샀어야 했는데’를 털어버리고 있는 돈, 없는 돈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내가 지금은 알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던 걸 알게 되는 건 아닐까.
<그림> 전국 주택매매가격지수‧전세가격지수‧월세통합가격지수 변동률 및 관련 언론보도 건수 (%, 건수; 2003.12.~2022.4.)
주 : 언론보도 건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를 활용해 분석기간 동안의 언론보도 중 ‘부동산가격’, ‘부동산 가격’, ‘주택가격’, ‘주택 가격’, ‘전세가격’, ‘전세 가격’ 6가지 단어 중 하나라도 포함하고 있는 보도를 집계함
세상에 많고 많은 집 중 내 것 하나 없는 우리에게, 오르는 집값은 내 집 마련의 꿈이 더 멀어지게 하는 듯해 한숨만 푹푹 나온다. 하지만 ‘집값’은 말 그대로 ‘집’에 대한 통계지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통계가 아니다. 혹시 우리 삶에서 놓친 것은 없는지 우리 자신에게 일어난 통계적 변화를 살펴보자.
가계금융복지조사는 1인 또는 2인 이상이 모여 생계를 같이 하는 생활 단위인 ‘가구’의 자산, 부채, 소득, 지출 등을 조사한 통계청의 통계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져 한숨만 나오는 요즘, 그러면 최근 몇 년 동안 내 집 마련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집을 빌려쓰는 사람과 내 집을 가진 사람의 지갑 사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진다. 나아가 나한테 집을 빌려준 사람은 얼마나 넉넉한 지갑을 가지고 있기에 많은 어린이의 장래희망이라는 건물주가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궁금증을 풀 수 있게 집이나 상가 등을 임대하고 있는 부동산 임대인과 자가점유자, 전월세 세입자의 실질 경상소득과 실질 순자산(자산-부채) 변화를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활용해 분석해보았다. 이를 보면 2016 ~ 2020년 동안 실질 경상소득은 부동산 임대인, 자가점유자, 전세 세입자, 월세 세입자 순으로 높았으나 그 차이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질 순자산은 그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자가점유자와 전월세 세입자가 보유한 순자산에 비해 부동산 임대인이 보유한 순자산 가격이 더 가파르게 증가하며 그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임대인과 자가점유자의 실질 순자산 차이는 2012년 1억 8,631만원에서 2021년 2억 9,626만원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격차는 최근 주택가격 상승기였던 2019 ~ 2021년 이전인 2015년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부동산 임대인이 보유한 자산의 높은 가치 때문에 가려지긴 했지만 자가점유자와 전세 세입자 간, 그리고 전세 세입자와 월세 세입자 간 자산격차 역시 2012년에 비해 2021년에 더 커졌다.
어쩌면 우린 ‘내 집 마련’이라는 꿈과 사회적 분위기 길들어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계층분리를 놓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림> 점유형태별 실질 경상소득(위)과 실질 순자산(아래) 변화 (만원(평균))
주 : 경상소득과 순자산은 OECD 제곱근지수 방법을 활용해 균등화 처리하였으며, 두 변수 모두 소비자물가지수(2016=100)로 나눈 뒤 100을 곱한 실질가격으로 구성하였음 / 실질 경상소득(2016 ~ 2020)과 실질 순자산(2012 ~ 2021)의 변화를 표시한 기간이 다른 것은 두 자료를 제공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연도가 다르기 때문임
최근 부산의 MZ세대 구직자 대다수가 부산에서 취업을 원하지만 낮은 임금으로 인해 미스매치가 발생한다고 응답한 부산상공회의소의 조사가 많은 언론에서 보도된 적이 있다. 이처럼 일자리를 이유로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사 온(혹은 간) 비수도권 출신 지인들을 종종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수도권 인구집중은 이들이 거주할 공간과 그 집의 가격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관련하여 앞서서의 점유형태별 실질 순자산을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지에 따라 나누어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부동산 임대인 내에서조차 수도권 거주자와 비수도권 거주자의 자산격차가 커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들의 자산격차는 비수도권 거주 부동산 임대인과 수도권 거주 자가점유자 사이의 격차보다도 컸다. 부동산 임대인과 자가점유자‧전월세 세입자와의 자산격차는 실상 수도권 거주 부동산 임대인과 다른 점유형태 사이의 격차문제였던 것이다.
즉, 우리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자산불평등은 내가 어떤 형태로 집에서 살아가는지(집을 소유했는지, 집을 빌려 쓰는지, 집을 빌려주고 있는지)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어디서 살아가고 있는지와도 결합해 심각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때 샀어야 했는데’라는 자괴감에 지쳐 자산격차와 함께 일어나고 있는 지역격차도 잊고 지낸 듯하다.
<그림> 수도권 거주 여부에 따른 점유형태별 실질 순자산 변화 (만원(평균))
지금까지에 따르면 ‘부동산 임대인’은 자산격차와 지역격차의 문제적 존재로만 보인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 샀어야 했는데’를 털어버리고 ‘내 집’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수도권의 임대인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한 가지 주의해서 이해해야 할 점은 그렇다고 부동산 임대인을 너무 부정적인 존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부동산 임대인은 전월세시장에서 세입자의 계약상대방으로서 주택공급의 주요 행위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나아가 부동산 임대인을 좀 더 잘게 쪼개어 보면 이들 집단 안에서도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활용해 거주하고 있는 집 외에도 부동산을 보유하며 부동산을 임대하고 있는 자가점유자 집단을 ‘부동산을 2개 이상 소유한 부동산 임대인’으로, 단독‧다가구주택에서 거주하며 부동산을 임대하고 있지만 거주주택 외에는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1주택자 집단을 ‘단독주택 1개만을 소유한 부동산 임대인’으로 나누었다. 전자가 다주택자일 가능성이 높은 임대인 집단이라면, 후자는 1주택자 중 노후 생계 목적으로 부동산을 임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두 집단의 실질 경상소득 변화를 보면 ‘부동산을 2개 이상 소유한 임대인’은 2016 ~ 2020년 평균 4,975만원의 소득을 벌었던 반면 ‘단독주택 1개만을 소유한 임대인’은 평균 2,772만원의 소득을 번 것으로 드러났다. 실질 순자산의 경우 전자의 임대인 집단은 2012 ~ 2021년 평균 5억 635만원의 자산을 보유했던 반면 후자의 임대인 집단은 평균 2억 4,343만원의 자산을 보유했다. ‘부동산을 2개 이상 소유한 임대인’의 소득과 자산은 ‘단독주택 1개만을 소유한 임대인’보다 2배 정도 높은 셈이다.
‘단독주택 1개만을 소유한 임대인’은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사실 이들의 실질 경상소득(평균 2,772만원)은 같은 기간동안 자가점유자(평균 3,418만원)와 전세 세입자(평균 3,275만원)가 벌어들인 소득보다 적은 수준이었다. 2012 ~ 2021년 이들의 실질 부채는 평균 1억 430만원이었는데 이 역시 같은 기간 자가점유자의 실질 부채(평균 5,229만원)보다 높은 것이었다. 반면, 이들의 실질 순자산은 자가점유자(평균 2억 314만원)보다 약간 높은 정도(평균 2억 4,343만원)였다. ‘단독주택 1개만을 소유한 임대인’은 자가점유자보다 소득도 적고 빚도 많지만, 자산은 조금 더 많은 수준에 그친 것이다.
단독‧다가구주택 1개만을 소유한 임대인과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임대인의 존재는 태풍의 눈과 같이 자산격차와 지역격차의 중심에 놓인 보통의 부동산 임대인과는 다른 특성을 지닌 임대인도 일부 있음을 보여준다. 좀 더 생각해보면 임대인뿐만 아니라 자가점유자, 전세 세입자, 월세 세입자 각각의 집단 내에서도 거주하고 있는 지역, 주택유형, 연령 등에 따라 이해관계가 나뉠 수 있음을 우리는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림> 부동산 임대인 세분화별 실질 경상소득(위)과 실질 부채(아래) 변화 (만원(평균))
‘타임슬립 찬스’를 외치고 과거로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우리가 어디서, 어떤 형태로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 최근 몇 년 동안의 우리 소득과 자산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았다. 돌아간 과거에서 발견한 것은 내가 월세로 살든, 전세로 살든, 혹은 집을 가지고 있든 계층격차를 극복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자산불평등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아는 격차문제’였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벗어나 보고자 ‘내 집 마련’의 베일을 쓰고 영혼까지 끌어모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집 마련’의 베일로 눈을 가린 시민을 향해 정치는 각종 주택공급 대책과 규제 완화를 통해 모두가 집을 가질 수 있다고 부르짖는다.
하지만 앞서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점유형태에 따라, 그리고 우리가 수도권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심지어 내가 부동산 임대인이더라도 다주택자인지, 단독‧다가구주택 1주택자인지에 따라 우리가 처한 경제적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그렇게까지 분석하진 못했지만 예를 들어 같은 전세 세입자라고 하더라도 아파트에서 사는지, 단독‧다가구주택에서 사는지에 따라, 나아가 수도권에서 살고 있는지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를 것이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회계층 구조에서 ‘내 집’을 마련하게 해주겠다고만 부르짖는 것은 사회적 자원을 분배하는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질서가 무너진 아노미 상태에서 정책의 수혜를 받는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질 위험이 크다.
‘그때 샀어야 했는데’라는 후회 때문에 ‘내 집’을 마련하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속삭임에 빠져 눈 앞의 격차문제를 잊는 꿈에서 깨어나 지금 각자가 처한 계층적 격차를 직시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점유형태와 거주지역으로 대표되는 서로서로의 계층을 잊는 ‘무지’의 베일을 써야 한다. 그렇게 각자가 서로의 처지를 바꾸어도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격차완화 질서와 원칙을 찾아야 한다. 한정된 자원을 누구에게 분배하는 것이 공정할지를 바로 세우지 않고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격차문제 해결을 이룰 수 없다.
※ 이 글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새사연의 「주택시장 변화와 가구경제 및 주거 변화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정돈한 글입니다. 보고서는 링크를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