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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덕후의 연구원룸 Nov 28. 2022

아파트를 분양받은 시민만 관리비를 내나요?

아파트에 살지 않는 임차인이 내는 관리비는 관리할 법률조차 마땅찮아

    월말이 다가오면 ‘이번 달은 지갑이 텅 비는 걸 나름 잘 방어했군’ 싶다가도 갑작스러운 큰 지출에 주눅들 때가 있다. 예상보다 큰 고지서를 보고 놀라는 ‘(주택)관리비’ 역시 그런 지출 중 하나다. 서민들의 이런 지갑 걱정을 덜 수 있게 지난 10월 정부는 ‘관리비 사각지대 해소 및 투명화를 위한 개선방안’을 발표하였다. 관리비를 공개해야 하는 아파트(공동주택)를 늘려(기존 100세대 이상 공동주택 → 50세대 이상 공동주택으로 대상 확대) 불필요한 관리비 상승을 막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 관리비 문제는 1990년대에 이미 아파트 관리비리 수사가 이뤄진 적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아파트 관리비의 투명성을 높이고 감독하는 시스템 역시 나름대로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하겠다. 이번에 정부에서 발표한 방안 역시 이러한 제도적 흐름을 강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에서 쾌적한 삶을 살아가길 선호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아파트 관리비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응은 그 의의가 크다. 하지만 문득 ‘아파트에서 살지 않고, 또 집을 소유하지 않고 사는 시민에게 ‘관리비’는 어떤 의미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비아파트에서 임차로 살아가는 시민의 관리비

    아파트가 아닌 ‘원룸’에서 살아가는 ‘세입자’가 느끼는 관리비와 관련해서 2014년 청년주거운동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에서 진행한 ‘원룸 관리비 설문조사’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후 원룸과 오피스텔의 m2당 관리비가 당시 부의 상징 같았던 ‘타워팰리스’의 m2당 관리비보다 비싸다는 게 알려지며 많은 시민의 공감을 얻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국토연구원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아파트가 아닌 주택(비아파트)에서 세입자가 부담하는 관리비 실태와 제도개선 방안을 연구하기도 하였다(발행예정).

    그러나 이처럼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었던 것과 달리 ‘소유’와 ‘아파트’에서 벗어난 시민의 관리비는 여전히 과도하게 부과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에서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 사례를 살펴보자. 해당 사례에서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이하 민간임대주택법)에 따른 관리비 내역 중 인건비를 포함하고 있는 항목인 일반관리비(청소비, 경비비 포함)의 m2당 비용은 평균 1,643.9원(2022.8. 부과분)이었던 반면 서울 아파트의 경우 평균 833.5원(2022.7. 부과분)이었다. 해당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의 일반관리비 등이 2배 가까이 더 높은 것이다. 그나마 제도적 관리영역으로 들어와 있는 임대주택 사례조차 이런 실정이니 민간임대차시장의 수많은 미등록 임대주택 관리비 실정을 긍정적으로 상상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정부 역시 이런 문제를 완화해보려고 지난 10월 발표 방안에서 ‘주택임대차 표준계약서’에 관리비 항목을 명시하도록 하겠다고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표준계약서는 임대차계약에서 사용하도록 권장될 뿐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계약서는 아니기 때문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서 사는 임차인의 관리비를 다루는 ?

    왜 ‘소유’와 ‘아파트’에서 벗어난 시민의 관리비 문제는 잘 해결되지 않는 걸까. 우선, 임차인이 지불하는 관리비를 규율하는 법제가 없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민간주택의 관리비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법률은 「공동주택관리법」,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집합건물법), 「민간임대주택법」 3가지이다. 이 중 앞의 두 법률은 ‘공동주택’과 ‘집합건물’이라는 주거 건물유형에 초점을 두고 관리비를 제도화하고 있고, 또 사실상 주택 ‘소유권자’를 전제로 관리‧감독 시스템을 짜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면 「민간임대주택법」에서 임차인의 관리비 문제를 다루지 않을까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민간임대주택법」이 다루고 있는 임대주택은 행정에 임대사업자 등록을 한 임대인의 주택으로 민간임대차시장의 3/4 정도 되는 주택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러한 집에서 사는 임차인의 관리비는 관리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는 제도적 공백 지대인 것이다.     


임차인의 관리비를 둘러싼 이중적 주인-대리인 구조

    다음으로 관리비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주택을 소유한 시민에게든 그렇지 않은 시민에게든, 관리비 문제는 기본적으로 주인-대리인 문제 구조를 보인다. 주인-대리인 문제는 나의 이익을 위한 업무를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대신하여 수행하도록 맡길 때 그 대리인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그 업무를 수행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아파트 관리비 문제에 이를 적용하면 아파트 소유권자를 대신하여 아파트를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관리주체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비용을 지출해 관리비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인-대리인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사회는 입주자대표회의의 감독 권한을 보장하고 관리비의 구체적인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아파트 단지 범위를 넓혀가는 방식으로 아파트 관리비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임차인’의 관리비 문제는 좀 더 복잡한 구조를 보인다. 임대차계약 관계로 보면 임차인이 거주자로서 주인, 임대인이 관리인으로서 대리인인 구조로 보이지만, 소유권적 관점에서 보면 임대인이 처분권자로서 주인, 임차인은 정해진 기간만 임대인을 대신하여 주택을 사용하는 대리인인 구조로 이해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임차인의 관리비를 둘러싼 이러한 이중적 주인-대리인 구조는 임차인들이 아파트 소유권자만큼 단결하여 관리비를 감시하기 어렵게 하는 구조로 작동한다. 또한, 이는 관리비를 부과하는 임대인에게 관리비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공개하도록 하는 법적 의무를 지게 하는 것에 대한 저항도 일으킨다.      


아파트에서 살지 않는 임차인의 관리비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을 볼 때 아파트에서 살지 않는 임차인의 관리비 문제를 해결하려면 관련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하겠다. 국회에서 이미 관련 법률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주거용 오피스텔과 같은 집합건물의 구분 소유권을 가지지 않은 임차인도 관리비 감독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집합건물법」 개정안과 전반적인 주택임대차계약 관계에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관리비 세부내역을 공개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그러한 예다.

    또한, 이미 제도적으로 관리영역 안에 있는 임대주택에 대해서 관련 법령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임대사업자 등록을 한 주택에 한해서긴 하지만 「민간임대주택법」은 임대주택 관리비 항목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작성된 관리비 장부 등을 임차인과 임차인대표회의가 열람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들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를 임차인이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알리고 또 임대사업자가 이를 준수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임차인의 관리비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더라도 임차인이 이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있다. 임대인이 관리비를 과도하게 부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보완된 제도를 활용해 감독할 조직화 된 주체가 우리 사회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민간임대주택법」은 이 역할을 임차인대표회의에게 부여하고 있지만 ‘아파트’가 아닌 주택은 임차인대표회의 구성의무가 없는 민간등록임대주택인 경우가 많다. 임차인대표회의 구성의무가 있는 주택이라고 하더라도 임대사업자의 소극적인 임차인대표회의 구성 노력과 임차인의 잦은 이사 등으로 인해 임차인대표회의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임차인이 좀 더 오래 거주하며 주택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스스로 관리비를 감독할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임대차구조를 변화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0년의 임대의무기간이 있는 민간등록임대주택을 보다 보편화하거나 임차인이 가지는 계약갱신요구권의 횟수를 늘려가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제는 임차인의 관리비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임대차제도 전반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림> 정액관리비 특약을 포함하고 있는 임대차계약서 (출처: 새사연)


지금 당장은 관리비 가이드라인부터라도

    임차인이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임대차제도로 변화시켜나가는 것과 법적으로 임차인의 관리‧감독 권한을 새롭게 도입하는 것은 아파트에 살지 않는 임차인의 관리비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법률 개정사항이라는 점에서 빠르게 이룰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임차인의 관리비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손쉬운 방안은 무엇일까. 앞서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관리비 문제는 기본적으로 주인-대리인 문제이기 때문에 관리비를 지출하는 사람이 겪는 정보비대칭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관련하여 정부의 정책 차원이든, 사회운동 차원이든 아파트가 아닌 주택을 임차해서 살아가는 세입자들에게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적정한 관리비가 얼마인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효과적인 문제 대응수단일 수 있다. 

    일종의 관리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파트 관리비 공개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 이를 기준으로 전용면적(m2)당 관리비를 산출한 뒤 각자의 전용면적을 곱하여(필요하다면 주택세대수 및 주택유형을 고려한 가중치도 추가로 곱하여) 적정 관리비를 손쉽게 계산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민간임대주택법」 등을 참고하여 관리비 항목을 적절히 정한 후 각 항목의 월평균 시장가격(청소 및 경비 용역비용, 엘리베이터 유지비용, 각종 건물보험료 등)을 제공하는 방식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정보는 임대차계약을 맺을 때 ‘매월 몇만 원’과 같은 정액 방식으로 관리비를 약정하는 임차인에게는 계약에서의 협상력을 높여줄 수 있고, 매달 관리비를 고지받아 관리비를 지출하는 임차인에게는 부과된 관리비가 과도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관리비 문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문제 중 하나이지만 주택시장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주거형태인 아파트 자가점유자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지난 10월 정부가 발표한 개선방안을 계기로 사각지대에 놓인 채 간과되어 온, 아파트가 아닌 집에서 살아가는 임차인의 관리비 문제가 재조명되고 관련 대응방안이 사회적으로 논의되길 기대해본다.

    

※ 이 글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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