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여러 가지 반전이 있었던 해인 듯하다. 주거문제와 관련해서 전세시장의 변화 역시 극적 반전이라고 하겠다. 2021년 상반기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전세가격이 이후 금리 인상과 함께 2022년 곤두박질치며 최근에는 역월세난까지 나타나고 있다. 전세가격 하락과 함께 주목받게 된 깡통전세는 임대인이 「주택임대차보호법」 상의 대항력 발생시점 규정을 악용하는 것부터 임대인-공인중개사-시공사 등이 명의대여 임대인을 활용해 조직적으로 임차인을 기망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둠 속에서 만연하던 각종 ‘전세사기’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전세’는 우리나라와 볼리비아, 인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제도라고 한다. 과거 제도권 금융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는 임대인(주택 소유권자)이 손쉽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기능했다지만, 오늘날처럼 각종 대출이 가능한 시대에는 전세가 없어질 것이라고들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세제도는 이 순간까지도 남아 역전세난, 전세사기 등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집을 마련하는 방법 중 한 가지로 전세가 여전히 기능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한다. 임차인(세입자)의 입장에서는 다달이 임차료를 소모성으로 지출해야 하는 월세보다는 그런 지출이 없는 전세가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임차인의 수요만으로 시장이 형성될 수는 없기 때문에 임대주택 공급자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 있을 듯하다. 그 중 하나가 최근 전세사기 피해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는 ‘갭투기’이다. 자기자본이 적은 사람이 전세세입자의 전세금을 끼고 집을 매매한 후 시세차익을 노려보고자 하는 동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전세자금 대출을 활용해 임차인이 손쉽게 전세금을 마련해올 수 있으니 집값이 상승해도 전세금을 올리며 집을 매매하는 행위가 횡행한다는 점에서 갭투기를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만연한 ‘전세자금 대출’이 지적된다.
전세사기를 비롯한 갭투기와 전세자금 대출의 관계를 생각하면 대출이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그 규모를 보면 갭투기가 얼마나 지탱되고 있을지 전세사기와 역전세난 등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자금 대출은 일반적으로 HUG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 한국주택금융공사(이하 HF), SGI서울보증(이하 SGI)의 보증서에 기초해 이뤄진다. 제한적이지만 이 중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있는 HF와 HUG의 전세자금 대출 보증잔액 현황을 보면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그 규모가 증가해 2021년에는 128조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전세가격지수 변화와 전세자금 대출 규모 변화를 겹쳐서 보면 두 변수 간 인과관계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전세자금 대출이 높은 전세가격을 지탱해주는 일정 역할을 해왔을 것으로 쉽게 가늠된다. 전세시장 상황의 변화 속에서 이와 같이 큰 전세자금 대출 규모는 시한폭탄의 뇌관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고 하겠다.
<그림> HF와 HUG의 전세대출 보증잔액 변화 및 전세가격지수 변화
이처럼 대출 규모가 증가해 온 것은 주거지원 정책으로서 ‘전세자금 대출’이 가진 우리 사회의 높은 선호 때문으로 생각된다. 가장 필요한 주거지원 프로그램으로 전세자금 대출지원을 꼽는 우리나라 국민은 2014년 이후 꾸준히 두 번째(18.7~24.5%)로 많았던 것이다(2014~2021년 주거실태조사). 특히 전세가격과 주택매매가격 상승이 있었던 2019~2020년에는 2018년 이전보다 전세자금 대출지원에 대한 선호가 5%p 정도 증가하기도 하였다.
전세자금 대출에 대한 높은 선호는 정책적으로 전세자금 대출 규모를 확대해 나가게 한 것으로 여겨진다. 주거실태조사가 정책선호 현황을 보여주기 시작한 2014년 이전이기는 하지만 HF에서는 2005년, 8년 만에 전세자금 대출 보증한도를 6천만 원에서 8천만 원으로 확대했다. 이를 시작으로 점점 더 보증한도를 증가시켜왔고 2008년에는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그 한도를 2배나 늘렸다. 2012년에는 HUG의 전신인 대한주택보증에서도 전세자금 대출 보증상품을 출시하였고 이후 HF와 HUG는 지속적으로 대출 보증한도를 높여왔다. 2013년에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요구에 힘입어 만 35세 이상 단독세대주부터 가능하던 주택도시기금대출(전세자금 대출 포함)이 만 30세 이상 단독세대주부터 가능하게 확대되기도 하였다.
<그림> 2014~2021년 주거지원 프로그램 선호(1순위) 변화
전세자금 대출을 통한 주거지원에 대한 높은 선호는 그만큼 이 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주거복지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보여준다. 그러나 전세자금 대출이 갭투기에 동원되고 있는 전세물량과 전세가격을 지탱시켜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출 규모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의문이 있다.
전세자금 대출상품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위험 역시 문제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대출금을 떼어먹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신용이나 담보를 평가한 후 대출을 실행한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은 말 그대로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하는 식인 것이다. 하지만 전세자금 대출은 이러한 담보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 기준에서는 신용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부분적으로 주거복지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있는 전세자금 대출의 이자 부담을 높이는 문제를 일으킨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의 전세자금 대출은 HUG, HF, SGI의 보증에 기초해 대출이 실행되는 방식을 취해 이자 부담을 낮추었다. 예를 들어 2022년 11월 기준으로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대출금리를 보면 주택담보대출은 4.74%, 보증대출은 5.65%, 일반신용대출은 7.85%로 보증대출의 이자 부담이 신용대출의 경우보다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전세자금 대출상품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세자금 대출에는 크게 주택도시기금 재원을 활용한 대출과 은행재원을 활용한 대출이 있다. 주택도시기금대출은 상대적으로 소득과 자산이 낮은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정책자금 성격의 대출로 은행재원 대출과 비교했을 때 금리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은행재원 대출은 1주택자도 주택가격이 일정액 이하면 이용할 수 있고 보증한도 및 대출한도 역시 주택도시기금대출에 비해 높다.
<그림> 전세자금 대출 상품 구분 및 요건
이러한 주택도시기금대출과 은행재원 대출은 앞서서 언급한 바와 같이 둘 다 HUG와 HF의 보증서(은행재원 대출은 SGI 보증서도 가능)에 기초해 은행에서 대출을 실행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즉, 주거복지의 대상이 아닐 수 있는 계층까지 보증이라는 형태의 공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대출을 받는 채무자의 소득, 자산, 주택소유 여부 모두를 심사하지 않는 SGI보증 대출을 보라!). 전세자금 대출의 이러한 상품구조에서 은행은 리스크를 보증기관에 전가시킬 수 있어 상대적으로 손쉽게 대출을 실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가격하락 국면에서 전세금 반환사고가 대거 발생할 때 보증기관 부실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게다가 보증기관들은 대출을 보증함과 동시에 보증금 반환사고 시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먼저 돌려준 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보증보험 상품도 운영하고 있어 대출에 대한 보증 외에 추가적인 리스크 또한 감수해야 하게 된다.
문제는 주거복지 정책의 성격으로 보기 어려운 전세자금 대출로 보인다. 당장 집을 매매할 정도의 소득과 자산은 없지만 주택도시기금대출을 이용하기에는 소득이 높은 계층 등에게 주거사다리로서 이러한 지원을 일부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은행재원 대출의 대상을 과도하게 개방해놓은 것은 앞서서 살펴본 대출 규모의 지속적인 증가와 전세가격의 지탱, 전세시장 하락 시의 보증기관 부실화 위험 문제 등을 일으킨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자신은 전세자금 대출까지 받아가며 전세세입자로 거주하면서 주택을 매매해 임대를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2016~2020년 주거실태조사 데이터를 활용해 전체 표본 중에서 주택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세자금 대출을 이용하고 있는 전세임차인(세입자)을 계산하면 2016년 0.04%에서 2020년 0.18%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정도의 비율이 전체 주택시장에서 큰 영향을 주고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신용대출도 아닌 전세자금 대출을 주택임대 목적의 주택매매자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문제라고 하겠다.
<그림> 주택자산을 보유한 전세임차인과 전세대출을 이용하면서 주택자산을 보유한 전세임차인
전세가격이 하락하는 시기가 오면, 세간에서는 전세제도가 가진 사금융으로서의 기능 상실을 지적하며 전세는 없어질 임차형태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실제로 2006년 22.4%에 달하던 전세세입자 비율은 2020년 15.2%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2006, 2020년 주거실태조사). 그러나 이러한 감소 경향에도 불구하고 임차인 입장에서는 월세보다 전세가 유용하다는 점에서 적절한 범위에서 전세자금 대출지원이 이루어질 필요가 여전히 있을 것이다.
다만, 전세자금 대출이 전세제도와 갭투기를 지탱하는 방식으로까지 작동하고 있는 듯한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전세자금 대출을 지탱하는 공적 성격의 보증이 일부 투기꾼들에게 악용되어 전체 시스템이 무너지고 그에 따라 수많은 서민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징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조직적인 ‘전세사기’일 것이다.
때문에 주거복지 정책이라는 미명하에 지금과 같이 전세자금 대출 규모를 늘려만 가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전세자금 대출이 주거복지 정책으로만 기능할 수 있게 주택매매가 어려운 계층에게만 보증한다든지, 보증사고를 일으키지 않도록 통제받는 다양한 공적 임대주택사업자를 활성화하는 것 같은 대안도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대안 모색이 공유지의 비극에 빠지지 않고 우리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