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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Jan 21. 2023

수술은 마취라도 해 주는데, 항암치료는 마취도 없나?

암의 과정을 정서적으로 버텨나가기

유방암 치료를 하는 A는 유방 부분절제수술을 마치고 항암치료 중에 있다. 수술을 앞두고는 아프면 어쩌나 걱정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수술은 생각했던 것보다 견딜만했다. 수술방에 들어간 이후에는 마취를 하면서 전혀 기억이 없고 깨어날 때는 수술 부위가 아프고 구토감과 두통도 있었지만 곧 괜찮아졌다. 많이 아플 때는 버튼을 누르는 진통제도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염려했던 수술은 잘 넘어갔는데 문제는 항암치료였다. 괜찮은 사람들도 많다는데 A는 유독 힘들었다. 2주마다 반복되는 항암치료에서 병원에서 항암주사를 맞고 오는 날이면 3일을 꼬박 메스꺼움과 구토에 시달렸다. 이건 먹은 것도 없는데 정말 신물까지 올라오는데 낮이고 밤이고 다 힘드니 기진맥진이 된다. 이후에도 며칠간을 메슥거림에 시달리다 1주일 정도가 되면 괜찮아졌다. 주치의 교수님께 이야기를 하니 항구토제를 추가해 주었다. 구토는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메스꺼움은 여전했다. 낮에도 밤에도 메스꺼움에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이걸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항암주사를 맞으러 갈 때부터 며칠간 시달릴 걸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난다. 수술은 마취라도 해 주는데 이 힘든 항암치료는 맨 정신에 견디려 하니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항암치료는 모든 암치료를 의미하기 때문에 약물에 의한 항암치료를 정확히 표현하자면 항암화학요법이라고 합니다. 수술이 눈으로 보이는 암 덩어리를 칼로 떼어내는 치료라면, 항암화학요법은 눈에 보이지 않게 어딘가에 퍼져있을 암세포를 약물로 없애는 치료입니다. 보통 암세포는 일반적인 세포보다 세포의 분열주기가 빠르기 때문에 그 점을 공격하는 약물을 전통적인 항암치료에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적으로 세포분열이 빠른 신체조직은 항암화학요법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되고, 그런 조직들이 바로 소화기관, 모발, 피부 등입니다. 항암화학요법의 대표적인 부작용이 메스꺼움, 구토, 탈모, 피부질환인 이유는 이런데 있죠. 물론 특정 항암약제는 신경계를 더 자극하거나 간이나 신장 또는 혈액계통에 부작용을 만들기도 합니다.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은 당연히 큰 통증을 만들어내지만 다행히 현대의학은 마취제라는 약을 통해 수술로 인한 고통을 상당히 줄였습니다. 보통 수술에서는 혈액으로 주입하는 주사제로 의식을 잃게 하고, 이후에는 폐로 연결되는 기도에 관을 넣어 이 관으로 호흡을 통한 마취약을 조절해서 의식과 운동,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이 호흡을 통한 마취제가 발전하면서 예전에 비해 수술할 수 있는 시간도 길어지고 마취에서 깨어날 때의 부작용도 줄어들었죠. 참고로 간단한 치료나 검사를 위해 사용하는 수면마취는 혈액으로 넣은 주사제이고 대표적인 미다졸람(Midazolam)이라는 약물은 의식을 잃게 한다기보다는 기억을 잃게 만드는 약입니다. 주로 검사 시 의사의 지시에 따라 환자의 협조가 필요한 경우에 이 약물을 사용하고 기억만 잃게 만들기 때문에 몽롱한 상태에서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죠. 아마 수면내시경 등을 하고 난 이후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예능방송 등에서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수술 이후에 생기는 통증에 있어서는 비교적 안전한 마약성 진통제를 포함한 약물이 도움이 됩니다. 수술한 환자의 링거 주변에는 물풍선 같은 것이 들어있는 동그란 플라스틱 통이 있고 작은 버튼이 달려 있는데 이게 수술 후 통증을 조절하기 위한 대표적인 진통제로 자가통증조절기(PCA, Patient Controlled Analgesia)라고 합니다. 무통주사라고도 하는데 마약성진통제가 들어있기 때문에 진통효과가 좋기는 하지만 솔직히 무통까지는 아닙니다. 마약성 진통제가 들어있다 보니 버튼을 너무 많이 눌렀을 때 과도한 양이 들어가지 않도록 적정 용량이 들어가면 더 이상 약이 들어가지 않도록 자체 설정이 되어 있습니다. 약에 예민하신 분들은 오히려 약 때문에 어지럽고 메스껍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수술 후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서 꽤나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수술은 여러 가지로 통증 등 괴로움을 줄여주기 위한 방법이 있는 편인데, 사연에서처럼 항암화학요법에서는 여전히 괴로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항암치료에서도 항구토제 및 진통제, 스테로이드, 조혈성장인자 등 다양한 부작용을 관리하는 약물을 병행해서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의 고통이나 괴로움은 여전히 힘듭니다. 아무래도 항암화학요법은 특정 신체부위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신체적, 정서적 괴로움이 있을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던 와중 종양내과 및 정신종양학 영역에서 관련해서 주목을 받은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2010년 중반부터 항암화학요법 중 발생하는 오심(메스꺼움), 구토 부작용에 정신과 약물인 올라자핀(Olanzapine)이 효과적이라는 연구입니다. 미국의 Rudolph Navari 연구진이 발표한 관련 연구는 저명한 의학학술지인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등에 실리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올란자핀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암치료의 가이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NCCN(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의 가이드라인에서도 여타 주요 항구토제와 동일선상에서 항암치료 중 오심, 구토를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제안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올란자핀이 정신과 약물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올라자핀은 항정신병약물로 과거에는 조현병 치료에 주로 사용을 했다가 최근에는 양극성 장애 및 우울증 등에서도 폭넓게 사용되는 약물입니다. 조현병 치료에 비해서 낮은 용량이기는 하지만 암 환자에게 항암화학요법의 오심 구토를 관리하기 위해 항정신병 약물을 쓴다는 것은 꽤나 의아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저와 같은 정신종양학을 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무릎을 칠만한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도 올라자핀을 우리 중추신경에서 구토감을 조절해 주는 약리기전이 있습니다. (실제 대표적인 항구토제인 metoclopramide도 항정신병약물과 유사한 약리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올라자핀은 항구토작용 외에 다른 여러 효과도 있어 항암화학요법 치료를 받는 암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선 올라자핀은 섬망의 치료효과가 있습니다. 섬망은 우리 뇌가 질병 또는 약물에 의해서 불안정해지며 혼동증상이 발생하는 상태을 의미합니다. 심한 섬망에서는 마치 중증 치매처럼 인지왜곡이 생기고 환상이나 망상이 동반되며 횡설수설합니다. 하지만 가벼운 섬망에서는 의식이 멍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정신신체적인 기능이 쳐집니다. 항암화학요법 중에는 정상적인 우리 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한 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 뇌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항암치료를 받은 직후 며칠간은 가벼운 섬망의 증상이 통상 나타날 수 있고, 이로 인해 정서적인 피로감이나 의욕저하, 불면 및 초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항암치료 중 조절하기 힘든 괴로움인데 올라자핀이 이런 불편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셈입니다.


또한 약 자체가 졸리고 다소 멍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건 정신과 약물 입장에서는 부작용인 셈인데, 항암치료 중에는 여러 신체적, 정서적 괴로움으로 인해서 잠을 못 자고 밤새 설치는 경우가 많으니 이 부작용이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또한 항암치료 직후에는 낮에도 여러 불편감으로 통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고 낮동안 누워 있는다고 해도 의식은 또렷하기에 이런 괴로움이 오히려 정신적 트라우마처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낮에 다소 멍하더라도 정신적인 괴로움이 줄어드는 것이 정서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올란자핀 같은 약이 아니라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를 쓰면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종양내과나 정신종양학 영역에서 항암치료 중에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를 불면이나 낮 동안 초조, 정서적 괴로움을 완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그런 빈도가 상당히 줄어들었죠. 그 이유는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는 우리의 정신적인 상태를 정신줄을 놓듯 불안정하게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좀 전에 이야기 한 섬망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항암치료로 인해서 섬망의 위험이 높아진 상태에서 이런 약물은 기름을 뿌리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는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더라도 증상에 따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합니다.


올란자핀의 또 다른 효과는 식욕 증진입니다. 이 역시 정신과 약물에서는 큰 부작용입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올란자핀을 투약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체중의 증가뿐 아니라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등 다양한 대사성 질환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다만 항암치료 중에는 일시적으로만 사용하기에 이런 위험이 없고 오히려 항암치료로 인해 식욕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보완해 주기 때문에 치료효과인 셈입니다.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에는 뭘 먹어도 마치 모래알을 씹는 느낌이라고 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심, 구토와 더불어 그런 부분이 함께 나아질 수 있습니다.


비교적 안전성까지 확인된 약이고 여러 부가적인 효과로 인해서 최근에는 올라자핀이 항암치료 또는 진행된 암 환자에서 삶의 질을 개선시켜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물론 이 약이 결코 만병통치약은 아니기에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의료진과 상의해서 사용해야만 합니다. 올라자핀 역시 너무 쳐진다거나 식욕이 너무 과하거나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 등으로 인한 부작용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마치 수술 과정에서 여러 고통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 있듯이, 항암치료 중에도 신체적, 정서적 괴로움을 줄여줄 수 있는 수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올란자핀뿐 아니라 항암치료 중 다양한 상황에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적합하고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계속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마치 약장수가 된 느낌입니다. 그래도 나름 제 입장에서의 보호를 한다면 우선 올라자핀은 약물의 특허권이 이미 한참 지난 약입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사용된 약물이니까요.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오리지널 약물의 판매권마저 국내제약회사로 넘어간 상황입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렇게 특허권이 만료된 약물이 의학연구에서는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참 올란자핀이 항암치료 과정에서 주목을 받고 있을 때, 저도 대학병원에 있으면서 암 치료 중 정서적인 요인과 관련된 효과 연구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이미 제약회사 쪽에서는 올란자핀이 그다지 경제적으로 매력적이지 않는 약이기 때문에 더 이상 연구 투자를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죠. 물론 Navari 연구진처럼 국가 연구비로 할 수 있다면 객관성도 담보되고 더욱 좋겠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처럼 국가 연구비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정신종양학 영역에서 연구비를 구하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암의 치료뿐 아니라 암 치료에서 어쩔 수 없이 동반하는 정서적 어려움을 관리하기 위한 연구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기에 관련된 연구 지원에도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Navari RM, Qin R, Ruddy KJ, Liu H, Powell SF, Bajaj M, Dietrich L, Biggs D, Lafky JM, Loprinzi CL. Olanzapine for the Prevention of Chemotherapy-Induced Nausea and Vomiting. N Engl J Med. 2016 Jul 14;375(2):134-42. doi: 10.1056/NEJMoa1515725. PMID: 27410922; PMCID: PMC5344450.

https://pubmed.ncbi.nlm.nih.gov/27410922/


NCCN Guideline for antiemesis

https://www.nccn.org/guidelines/guidelines-detail?category=3&id=1415


Ji M, Cui J, Xi H, Yang Y, Wang L. Efficacy of olanzapine for quality of life improvement among patients with malignant tumor: A systematic review. Cancer Rep (Hoboken). 2019 Aug;2(4):e1167. doi: 10.1002/cnr2.1167. Epub 2019 Feb 26. PMID: 32721128; PMCID: PMC7941422.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794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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