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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Jan 21. 2023

암에 대한 원망, 내가 암에 걸린 이유는?

암의 과정을 정서적으로 버텨나가기

중년 여성 A는 이번 정기 건강검진에서 폐암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적 절제만으로 치료를 마무리했고 추가적인 항암치료는 필요 없다고 했다. 치료도 잘 마무리되었고 크게 후유증도 없지만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시점부터 머리 안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다. 바로 '내가 왜 암에 걸렸을까'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암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많았다. 남편은 내가 암에 걸리기 1년 전부터 일이 많다느니 회식이 있다느니 하면서 집에 늦게 들어왔다. 오죽하면 외도를 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12시가 넘어서도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남편이 올 때까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지 조마조마하면서 날밤을 샜다. 남편이 들어오고 난 이후에도 괜히 와이셔츠를 꼼꼼히 확인하는 자신을 보면서 신세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아들은 잘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다시 수능을 치겠다고 했다. 물론 아들의 일이기에 믿고 그렇게 하라고는 했지만 괜히 시간을 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됐다. 스트레스가 많고 밤에 잠을 잘 못 자면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데, 남편이나 아들로 인해서 신경을 썼던 게 암을 만든 건 아닐까 생각이 흘러간다. 거기다 얼마 전에는 고등어구이를 할 때 나오는 연기가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뉴스도 봤다. 순간 남편이 등 푸른 생선이 건강에 좋다면 고등어 반찬을 자주 해달라고 하는 것까지 떠오르니 순간 속에서 울컥 서러움과 억한 심정이 올라온다.




암이 어떻게 해서 우리 몸에 발생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의료계에서의 난제입니다. 물론 기존의 여러 가지 연구로 인해서 암에 대한 다양한 원인들이 밝혀지고는 있지만 그 가운데도 설왕설래가 있죠. 그 대표적인 양대산맥이 '암 발생이 우연히 무작위로 발생하느냐' 혹은 '암이 내 생활환경에서의 외부요인에 의해 발생하느냐'입니다.


암의 무작위 발생 이론은 암세포가 우리 몸 안에서 무작위로 생겨나는 돌연변이 세포에 원인이 있다는 이론에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줄기세포부터 다양한 세포가 끊임없이 세포 분열을 하면서 그 각자의 역할에 맞는 세포로 분화해 갑니다. 각각의 세포 분열 과정에서는 DNA가 복제되면서 새롭게 생긴 세포가 자연스레 죽은 세포를 채워 넣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는 돌연변이라는 세포 분열 과정의 오류가 생깁니다. 이런 돌연변이 세포는 스스로 망가져서 사멸하기도 하고, 우리 몸 안의 면역체계에 발견되어 제거되기도 합니다. 즉 우리 몸 안에서는 끊임없이 돌연변이 세포가 생기고 죽거나 제거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무작위로, 혹은 운이 나쁘게도 돌연변이 세포가 죽지 않고 면역체계를 회피해 살아남게 되고 그 돌연변이 세포가 끊임없이 분열하며 성장하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암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런 메커니즘을 생각한다면 암은 우연 또는 운에 그 발생 원인이 있습니다.


반면 외부 환경에 의해 암이 발생한다는 이론은 이러한 돌연변이 세포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느냐와 어떤 환경으로 인해 우리의 면역체계가 떨어지면서 돌연변이 세포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지느냐에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방사선에 노출되거나 특정 화학물질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게 되면 우리 몸에서는 돌연변이 세포의 발생 확률이 분명 높아지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신체적으로 무리를 하고 불건강한 생활 습관을 반복하게 되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약해지면서 평소 같으면 제거할 수 있는 돌연변이 세포가 살아남을 가능성도 높아지죠. 그런 환경에서라면 암세포의 발생이 순전히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여러 외부 환경적인 요인들을 발암요인이라고 합니다. WHO에서는 특수 환경의 유해한 요인부터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위험 요인까지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요인을 발암 위험도에 따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주의할 부분은 이러한 발암요인 중에는 우리가 분명 피해야 하고 피할 수 있는 요인도 있고,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요인도 있다는 점입니다.


암이 발생하는 데는 앞서 언급한 생물학적 요인도 있지만 행동학적 요인도 무시하기 힘듭니다. 행동학적 요인은 정신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습니다. 스트레스나 불안, 우울, 불면 등 정신적인 요인은 내분비계, 면역체계 등 다양한 신체적 기능에 있어서 생물학적으로도 암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합니다만, 정신적인 요인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면서도 상당한 위험요인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있을 때 불건강한 생활습관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 술이나 담배에 의존하기도 하고 불규칙적 생활을 하거나 자포자기하듯 건강한 식습관이나 운동과 멀어져 버립니다. 우울감은 우리의 건강관리를 소홀하게 만들고 평소 챙겨 먹어야 하는 고혈압이나 당뇨와 관련된 약을 빼먹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건강검진을 소홀히 하면서 조기진단의 기회를 놓쳐버리게 합니다. 이런 여러 요인을 다 고려하면 암의 원인을 따지는 건 상당히 복잡한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암의 발생에 무작위 요인이 더 큰 지, 혹은 환경과 습관의 요인이 더 큰 지에 대한 논란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5년 연구 결과에서는 암 발생에서 무작위성 돌연변이의 영향이 2/3 가량 차지한다고 발표하며 저명한 학술지인 Science에 실렸습니다. 그러다 2016년에는 동일한 데이터를 다른 방식으로 분석해서 무작위성에 의한 역할은 1/3 정도밖에 되지 않고 환경적인 요인이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또 다른 저명한 학술지인 Nature에 발표했죠. 이러한 논란은 어찌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암의 발생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화시켜서 원인을 찾는 것은 오히려 오해만 더 키울 수 있습니다. 한 연구자는 이런 비유를 들기도 합니다. 암의 발생을 탁자 위에서 땅에 떨어져 깨져버린 화병이라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그 화병은 불안정하게 기울어진 탁자 위에 놓여 있었는데, 누군가 실수로 화병을 툭 건드리면서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럴 때 화병이 깨진 원인을 불안정한 탁자라고 해야 할지, 실수로 건드린 행위에 두어야 할지 참 애매할 수밖에 없는 거죠.


결국 암은 이미 깨어져 버린 화병처럼 일종의 현실적인 결과물입니다. 다만 깨진 화병은 어떻게 수습하기 힘들지만, 암은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관리가 가능하죠. 그런 의미에서 암의 원인은 내가 지금 이 암을 어떻게 관리할 거냐에 초점을 맞춰서 바라봐야 합니다. 즉 암 관리에 불필요하거나 방해가 되는 방식으로 암의 이유를 찾아서는 안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암을 바라볼 때 환경적인 요인을 원망의 대상이나 회피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원망의 대상이라면 내가 암에 걸린 이유를 남의 탓, 환경 탓을 하며 분노하는 겁니다. 그게 가족 누군가가 되었든, 직장의 일이 되었든, 미세먼지 등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 탓을 하는 거죠. 물론 환경에서 관리부실이나 사고로 인해서 발암환경에 노출된 경우에는 당연히 피해를 파악하고 문제제기를 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일상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원망해 보아야 우리만 더 괴롭습니다. 회피의 수단이라면 우리가 우리의 건강을 챙기지 않고 안 좋은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하면서 건강관리에서 도망치는 것을 반복하는 겁니다. 남 탓을 하면서 자포자기하면서 술, 담배나 나쁜 식습관, 불규칙적인 생활습관을 반복하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무시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건강을 포기하는 회피행동입니다. 이런 원망의 대상이나 회피의 수단으로 암을 바라보는 건 암에 오히려 압도되어 자기 스스로를 더 갉아먹을 따름입니다.


암이라는 위기 상황일수록 우리는 소위 정신줄은 더 강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결국 암에 피해를 입는 건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위기상황에서 나를 보호하고 지켜내야 할 주체도 먼저는 자기 자신입니다. 나의 중심을 잡은 그다음에서야 주변 사람들의 지지적인 환경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억울한 부분이 있고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서 지금부터는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과거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채워 넣으려 노력하고, 미루어 두었던 문제가 있다면 풀어내려 해야 합니다. 끊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이제는 털어내야 합니다. 그게 환경이든 관계이든 습관이든 말입니다.


암이 무작위의 문제이든, 환경의 문제이든, 뭐든 간에 각각의 이유에는 그에 맞는 대응방법이 있습니다. 무작위의 문제라면 암이 발생했을 때 초기에 빨리 발견하고 치료하면 됩니다. 그렇기에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한 조기 발견이 중요합니다. 최근 들어 암 발생이 늘어난 건 이런 조기발견이 증가한 면도 있기에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암이 생겼다 하더라도 관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반면 환경의 문제라면 평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지려 노력하면 됩니다. 이건 암에 걸리기 전이든, 암에 걸리고 이후든 마찬가지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은 결코 나쁜 의미의 속담이 아닙니다. 솔직히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고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주변에 드물지 않거든요.



WHO Classification for Carcinogenic Hazards

https://monographs.iarc.who.int/list-of-classifications


Tomasetti C, Vogelstein B. Cancer etiology. Variation in cancer risk among tissues can be explained by the number of stem cell divisions. Science. 2015 Jan 2;347(6217):78-81. doi: 10.1126/science.1260825. PMID: 25554788; PMCID: PMC4446723.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4446723/


Wu S, Powers S, Zhu W, Hannun YA. Substantial contribution of extrinsic risk factors to cancer development. Nature. 2016 Jan 7;529(7584):43-7. doi: 10.1038/nature16166. Epub 2015 Dec 16. PMID: 26675728; PMCID: PMC4836858.

https://pubmed.ncbi.nlm.nih.gov/26675728/


Reports that cancer is ‘mainly bad luck’ make a complicated story a bit too simple

https://news.cancerresearchuk.org/2017/03/24/reports-that-cancer-is-mainly-bad-luck-make-a-complicated-story-a-bit-too-si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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