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의 과정을 정서적으로 버텨나가기
20대 대학생 여성 A는 지금은 원하는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지만, 과거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A는 입시 준비가 한창이던 고등학교 2학년 때 림프종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다행히 몸은 건강해졌지만 1년가량의 시간 동안 제대로 된 학교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미술이었기에 그만큼 더 남들보다 노력하며 쫓아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 갑작스러운 암 투병은 모든 걸 중단시켜 버렸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마음은 학교에 가 있었다. 하루하루 자신이 또래 친구들에 비해 뒤쳐져 가는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암 치료에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공부마저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좌절로 다가왔다. 남아있는 치료를 다 중단하고 암이 설령 다시 나빠지더라도 학교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부모님은 화를 내기도 하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치료를 다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지만 친구들의 어색한 시선과 함께 무언가 격차가 생기며 스스로 뒤처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다시 힘겹게 입시 준비를 했고 1년 재수를 한 끝에 대학에 들어갔다. 물론 지금은 대학을 잘 다니고 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있지만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암에 의해 폭력을 당한 느낌이다.
암은 주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발병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만큼 돌연변이 세포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고 면역체계도 떨어질 수 있고 암에 영향을 줄 만한 환경에 더 노출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암이 노인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기검진의 발전은 전반적인 암 발생을 증가시켰고 청소년과 청년층에서의 암 발생도 동일하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혈액암이나 배아암, 골육종, 신경모세포종 등 소아에서 나타나기 쉬운 암 종류가 있고 유방암이나 난소암도 다른 암에 비해 젊은 나이에 발생하는 편입니다. 최근에는 국내 20-49세의 젊은 층에서 대장암 발생률이 세계 1위라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이는 서구화된 식생활 습관으로 인해서 위암의 발생률이 줄고 대장암의 발생률이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죠. 또한 기존의 국가 검진의 정책이 대장암보다는 위암에 더 초점을 두고 있어서 청년층에서 대장내시경 검사 빈도가 낮아 용종 제거 등 조기 관리가 되지 않은 채 암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처럼 젊은 연령이라고 해서 암에서 자유롭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연령대와 마찬가지로 암은 돌발적으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다만 암에 의한 영향은 나이에 따라 엄연히 다릅니다. 모든 암이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암으로 인한 피해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이는 그 나이에 만들어 놓은 기반이나 만들어 가야 할 성취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기에는 그 시기에 꼭 경험하며 쌓아나가야 하는 발달과업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린 나이일수록 언어와 운동, 감각, 사회성이 한참 발달해야 합니다. 또래와 함께 어울리며 대화하고 다투고 화해하기도 하고 몸으로 부딪히며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청소년기라면 대인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부모의 곁을 떠나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가기 애씁니다. 자기의 미래를 꿈꾸면서 욕심을 내기도 하고 학업에 노력할 시기이지요. 청년기에는 사회에서의 역할 내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이후의 삶을 이끌어가기 위한 방향과 기반을 다져갑니다. 대인관계뿐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가족 단위를 만들어 간다는 면에서 이성관계도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어린아이부터 청년기까지는 자아와 주변 관계가 역동적으로 변화해 가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암은 이 시기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아버리는 크나큰 장애물입니다.
특히 학업은 성장을 위한 주요 기반입니다. 암은 학업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킵니다. 암 치료의 기간은 1년이 될지 수년이 될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치료를 마쳤다고 해서 몸이나 마음의 컨디션이 이전처럼 바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죠. 그만큼의 회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치료와 학업을 병행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체력이 따라오지 않을 수도 있고 주변 또래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막상 주변에서는 도와주려고 하지만 점점 뒤처져 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게 고통스러워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 수 있습니다. 학교를 일정 기간 쉬게 되면서 유급이나 자퇴를 실제로 고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이후라 하더라고, 혹시나 건강을 다시 잃을까 무리하며 학업에 돌아가는 것을 부모님이 염려하고 자제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편향된 인식도 젊은 나이의 암 경험자를 힘겹게 만듭니다. 주변의 시선은 암 투병에 대한 안타까움과 염려이기에 나쁜 의도는 아닐 겁니다. 포털사이트의 지식게시판에서 암을 치료하는 학생이 학업을 고민하면 대다수의 반응이 공부에 신경 쓰지 말고 지금은 치료에만 집중하라고 조언합니다. 다만 이런 조언은 이 시기 암 경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젊은 나이일수록 삶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이 욕심은 우리의 삶을 더욱 성장시키는 동력입니다. 학업에 대한 욕심 역시 마찬가지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욕심을 버리고 치료에만 집중하라고 하는 건 나란 자아는 없이 나의 신체만 강조하는 셈이니까요. 물론 치료도 중요한 영역이지만 그 치료를 하면서도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도 함께 필요한 시기가 이 연령대입니다.
분명 나는 암으로 피해를 입었고 이건 내가 잘못하게 아니고 그 누구나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건데 무언가 나만 피해를 받은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분명 어려움은 있는데 그걸 보완해 줄 수 있는 현실적인 도움은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특히 젊은 암 경험자를 위한 사회적인 지원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학업과 관련된 현재의 대표적인 지원이 병원 학교입니다. 암 치료를 위해 입원해 있는 기간 중에 병원 학교를 통해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출석 및 수업, 또래관계를 이어갈 수 있고 원치 않은 유급도 막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병원 학교를 다니더라도 학업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고 특히 대학입시과정에서는 여전히 불이익이 있습니다. 청소년기 투병 생활을 한 경우에는 입시과정에서 내신에서 받는 피해를 줄여 줄 수 있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배려자 전형의 일종으로 암 경험자에 대한 지원책이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지원이 되기에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여러 선진국에서는 암의 상태에 따라 입시시험 및 학교의 시험 및 과제 등에서 시험 시간과 과제 기한을 늘려주는 식의 지원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를 물리적으로 다니기 어려운 경우에는 사회적 차원에서 교통수단을 지원해 주기도 합니다. 학업적으로나 관계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젊은 암 경험자가 받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차원의 지원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지원이 불공평하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암은 누군가의 책임이 아닌 돌발적인 사건입니다. 누구나 그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젊은 암 경험자가 자신의 역할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회적 역할에 있어서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배려와 지원은 비슷한 표현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려는 안타까움으로 인한 도움이라면, 지원은 다시금 일어설 수 있기 위한 도움입니다. 암 경험자에게 배려와 지원이 모두 필요하겠지만, 특히 젊은 암 경험자에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회복의 힘을 신뢰하고 존중해 주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암이 우리의 삶을 멈추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암 경험자가 바라보는 목표는 현재의 암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암 이후에도 지속되는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회 역시 멈춰 서 있는 삶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삶을 위해서 지지와 응원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젊은 암 경험자 역시도 여타 젊은이처럼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갈 중요한 다음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층 대장암 발생률 세계 1위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516181?sid=102
Together Teens and 20s
https://together.stjude.org/en-us/teensand20s/keep-up-with-school.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