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Ssam Mar 27. 2023

죽음을 맞이하려면 차라리 암이 나아?!

삶을 완주한다는 것

존경하는 정신과 선배님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롤모델로 꼽을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이시형 박사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경북의대 선배님이시기도 하지만 정신과 의사로 병원 안팎에서 사회적인 역할도 하셨던 1세대 의사이기도 해서입니다. 그분이 쓰신 “배짱으로 삽시다”는 책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비소설 베스트셀러 1위라고 하죠. 방송활동이나 대중강연도 많이 하셨고 이제는 90을 바라보는 나이시지만 여전히 매년 책을 출간하시면서 이제는 본인이 쓰신 책의 개수가 자신의 나이보다 많아졌다고 하실 정도로 다독가이자 다작가이기도 합니다.


한 번은 이시형 박사님을 만나 제가 하고 있는 정신종양학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야기를 드렸더니 본인이 경험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과거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를 할 때 암 환자 병동을 맡아서 진료한 적이 있다고요. 그런데 자신도 암 환자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많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그때 당시 빅터 프랭클의 로고치료(Logo Therapy)가 도움이 되었다면서요. 그 인연으로 한국에 귀국 후 빅터 프랭크의 대표작인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번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삶의 큰 어려움 앞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현재의 의미로 가져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그러면서 이시형 박사님이 암에 대한 개인적 소회를 이야기하셨는데 저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차라리 암이 나아. 심장질환이나 이런 건 너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데, 암은 바로 죽는 게 아니니까 그만큼 삶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거든. 나도 나중엔 암으로 죽었으면 좋겠네."

어떻게 보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삶의 마지막을 가깝게 느끼고 계실 것이고, 최근의 저서에서는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셨기에 박사님의 이야기는 더 울림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망원인은 1위는 40년 가까이 암입니다. 2021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망 중 26%가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암에 이어 심혈관질환, 폐렴, 뇌질환 순이지요. 암 이외에는 대부분 급성기 질환에 의한 사망입니다. 이러한 급성기 질환은 질병의 발생도 갑작스럽고 심장이나 폐, 뇌와 같은 인체 주요 장기에 생기는 병이기 때문에 발생 당시부터 급격하게 악화되고 중환자실 등에서 집중치료를 받게 되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어르신들이 가장 걱정하고 우려하는 죽음의 상황이 있습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한 채, 의식도 없이, 침상에서 누운 채로 하염없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삶이 끝나는 거죠. 혹은 중환자실에서 가족들 면회도 못하는 상태로 인공호흡기나 에크모와 같은 생명유지장치에 의지한 채 상당 기간을 보내다 쓸쓸히 마무리하는 삶입니다. 이런 죽음은 그 과정 자체가 고독이자 고통이기에 누구나 피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내 생의 끝자락을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 준비하고, 남기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마지막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나에게도, 함께 하는 가족에게도 그 죽음이라는 과정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이별 후의 삶의 의미로 남길 수 있습니다. 헤어짐은 슬픔이지만 헤어짐의 과정에서 추억에 남길 수 있는 여러 모습과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암으로 죽는 게 나아"라는 이시형 박사님의 말씀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샌가 죽음이라는 것을 저 멀리 있는 딴 세상 이야기이거나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갑자기 닥친 불행으로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죽음이란 누구나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인생의 숙명입니다. 정신심리 발달과정에서 보자면 그 과정에서 이루어야 할 최종적인 발달 과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준비도 안된 채 맞이하기보다는 준비하고 예상하면서 한 걸음씩 밟아가는 게 더 성공적입니다. 죽음을 성공적으로 맞이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 말 입니다만 우리 모두는 결국 언젠가 그 자연스러운 죽음이라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맞이하고 싶은 날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암으로 죽는 게 나아"라는 표현은 나 스스로의 죽음을 성공적으로 가져가겠다는 선언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암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산 좋고 물 좋은 데로 가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