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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Jul 26. 2023

햇살이 그리운 날이면

경남 거제 | 거제 관광 모노레일 & 맹종죽 테마파크

 요란한 장맛비가 창문을 두드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잘 빨아놓은 하얀 운동화는 젖은 땅으로부터 튀어 오르는 빗물로 금세 지저분해진다. 먹물이 튄 것처럼 얼룩이 진 운동화는 장마가 끝날 때까지 한동안 신발장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있을 테다.


 잔뜩 낀 먹구름이 잠시 물러가고 종일 젖은 땅을 말려주는 햇빛이 간간이 내리쬐는 날이 반복되는 요즘, 작년 가을에 떠난 경남 거제에서의 하루를 떠올리고는 한다. 당시 일기예보를 비웃듯 무척이나 청명한 하늘, 푸른 녹음 속에서 뜨거운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아낸 그날은 한참 늦은 하계휴가를 떠난 날이었다.


  사전 예약을 하고 방문했던 거제 관광 모노레일. 우린 예약한 시간을 착각해 늦었지만 휴가철이 지난 보통의 평일이어서 관광객이 적어 직원분의 배려로 다음 시간대에 탑승을 할 수 있었다. 탁, 탁, 탁. 바닥에 깔린 선로를 따라 구동하는 모노레일 안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영화 '쥬라기 월드'를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설레하는 중년의 여성을 비롯한 같은 공간의 사람들은 모노레일 운행 종료 지점까지 동행인과 담소를 나누었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공간의 색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소소하게 불어오는 숲의 바람도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사락사락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은 자유로웠고, 어느새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는 그렇게 수풀 안에서 이유 모를 미소를 짓곤 했다.

 아직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점점 하늘과 가까워져 갔다. 쉼 없이 달린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기대감이 커져갔다. 드디어 도착한 산 정상에서의 거제는 푸르렀다. 지평선 위로 솟아오른 크고 작은 섬과 푸른 바다, 노란빛으로 물들어 추수를 앞둔 논까지 드넓게 펼쳐진 광경은 일상을 벗어났음을 실감하게 했다. 10월이었음에도 몹시도 더웠지만 햇살을 느끼고, 땀을 흘리며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때. 끝없이 걷고, 하늘을 향해 오르고, 바위를 밟으며 매끈하지 않은 질감을 느끼고,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살갗의 온도를 느낄 때. 여행의 즐거움은 감각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을 그늘 없는 햇살 아래에서 보냈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보다 건조한 햇살 아래 바짝 마른 흙내음이 먼저 느껴진 그곳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아끼는 카메라에 서로를 담았다. 앞으로 남은 삶의 가장 젊은 날일 이 순간을 끊임없이 기록했다.


그리고는 자리를 옮겨 대숲으로 향했다. 오감이 살아난다. 대숲에서는 자주 눈을 감게 된다. 벤치에 앉아 턱 끝을 살짝이 올리고 눈을 감는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깊은 들숨과 날숨으로 마음은 평온을 찾는다. 그리고는 들려오는 파르르 흔들리는 댓잎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가공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소리. 경적 소리와 음악 소리, 불필요한 말소리, 휴대전화 알림음에 지쳐 있던 귀에 휴식을 주는 소리였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건강을, 누군가에게는 목표의 성취를,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결실을, 누군가에게는 금전적 여유를 소원하는 글이 가득 담긴 소원 나무에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하는 소망과 의지, 결심과 함께 귀중한 이들을 향한 사랑과 마음씀이 묻어났다. 맑은 날의 햇살처럼 두 팔 가득 담고 싶은 포근함이 담겨 있었다.

 

 요즘 부쩍 햇살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요란한 장맛비가 대지를 적시는 날이면 구름 뒤로 가려진 햇살이 그리워지고, 사회면을 가득 채운 어두운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불안한 기운의 차가운 공기를 훈훈하게 데워 줄 온기가 가득 담긴 햇살이 그리워지고는 한다.


먹물이 튄 것처럼 장맛비로 얼룩이 진 운동화는 장마가 끝날 때까지 한동안 신발장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있을 테지만, 준비 없이 가슴으로 튀어 누군가의 마음과 삶을 망가뜨리는 짙은 얼룩은 깨끗이 빨아 햇살 좋은 날 널어놓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끔히 사라지게 되기를 바라게 되는 2023년의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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