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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별 Nov 18. 2024

그 시절의 나에게

토닥토닥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날들이었지만 지나온 나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는 않다. 하지만 만약 과거의 나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딱 3통만 쓰고 싶다.


출처:Pixabay


#1. 학교 2학년 봄날의 나에게


안녕, 나는 47살이 된 너야. 이 나이가 되어서 널 떠올려 보니 14살은 딸 같네. 아직 아기네. 아가야, 요즘 많이 힘들지? 네가 담임인 국어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너의 짝이 수업 시간 내내 너에게만 들리게 욕하잖아. 바로 네 뒷번호라서 실기 시험도 같이 봐야 하는데 그 애는 일부러 안 해주잖아. 반 아이들은 그 애가 무서워서 하교 후에 너랑 놀잖아. 그 애 무리들이 널 화장실로 불렀던 날에는 아이들에게 뒤늦게 전해 들은 담임이 집으로 전화해서 너에게 괜찮냐고도 물어봤잖아. 자기가 좋아하는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너를 괴롭히는데 왜 넌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니? 그럴 때는 우선 가족에게 말하는 거야. 선생님에게 도움 요청하는 거야. 그리고 더 용기가 생기면 그 애한테 그러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 거야. 를 지키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이야. 너를 방치하지 말고 사랑했으면 좋겠어. 그 애는 일 년 내내 너를 괴롭힐 거야. 그러면 매일 학교 가는 일이 지옥이 될 거야.  그 애는 2학년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너에게 미안했다 한 마디 던지고 가버릴 거야. 그건 진짜 사과가 아니야. 부디, 용기를 내어 너를 지키길 바라.




#2. 고1이 된 나에게


안녕, 나는 미래에서 온 너야. 고등학생이 되니까 학교 분위가 많이 다르지? 아빠가 대학 가지 말고 빨리 졸업해서 돈이나 벌라고 하니까 더 마음못 잡겠지? 네가 아직 몰라서 그렇지 너의 힘으로 대학 갈 수 있는 방법도 있어.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고 들어갈 수도 있고, 대학 가서 아르바이트하는 방법도 있어. 친구들이 공부는 해서 뭐 하느냐고 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 그렇게 말해놓고 그 친구들 학원 가서, 집에 가서 공부해. 너만 안 하고 있는 거야. 입학 성적 상위권이었다고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기도 했던 담임이 너를 자꾸 교무실로 부르잖아. 그 수학 문제집들 감사히 받아서 풀어. 제발 선생님 말씀 좀 들어. 공부 안 하고 반항하는 게 지금은 멋있어 보이지? 근데 아니야. 그래놓고 공부 안 한 후회 수능 날에 갑자기 몰려와서 그날 넌 이 붕괴될 거야. 험을 망치고 나서야 고등학교 때 공부 열심히 안 한 걸 평생 후회할 거야. 그리고 막상 네가 대학 붙으면 아빠도 대학 보내주더라. 그러니, 얼른 정신 차리고 공부하자. 주변에 멘토도 없고 혼자 멘 잡기 힘들다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 봐. 넌 의외로 책 말을 잘 듣는 아이야.




#3. 20대의 나에게


안녕, 파란만장한 20대를 보내게 될 너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보내. 러시아어 전공 살려서 취업은 했지만 사회생활이 녹록지 않지? 러시아랑 사업하는 회사들이 대부분 규모가 작기도 하고 잘 망하기도 해. 그래도 잘 버텨 봐. 작은 회사들에서 쌓았던 경험 나중에 대기업에 들어갔을 때 큰 도움이 될 거야. 다른 회사들은 다 다녀도 되는데 러시아에서 수산물 수입한다는 그 회사는 붙어도 절대로 가지 마. 거 다 거짓말이야. 마피아까지 만나게 되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을 겪게 될 테니 제발 그 회사만 거르길 바라. 그리고 사람을 무조건 믿지 말고 사람 보는 눈을 좀 키워. 너를 진심으로 아끼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을 친구로 뒀으면 좋겠어. 혹시 네가 1번이라고 생각했던 우정과 사랑이 널 힘들게 하더라도 그냥 털어버리고 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 배우고 싶은 것들도 배우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그 아까운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시간들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단다.




내가 쓴 편지들이 과거의 나에게 전해진다면 조금이라도 바뀌는 게 있을까? 바뀐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까? 그럼 좀 더 행복했을까? 사실은 편지보다 가서 한 번 안아주고 싶다. 마음으로 안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 덜 울었을 텐데. 조금 덜 외로웠을 텐데.  말을 제때 할 줄 알았다면 조금 덜 힘들었을 텐데.

그 시간을 다 지나온 너를, 이제라도 글로 안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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