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영화 감상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한 해의 삼분의 일이 지난 오늘을 기준으로 올해 52편의 영화를 봤다. 원래도 영화 보는 걸 좋아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여유가 생긴 건지 아니면 영화를 많이 봐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작년 한 해 동안은 35편의 영화를 보았다. 쓰다 말았던 '2022년의 문화생활' 회고는 이렇게 시작한다. '올해는 영화를 많이 못 봤다. 퇴근하고 집에서 영화를 잘 안 보게 된다. 집중력도 없고 기력도 없고.'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최근에 읽은 변영주 감독님의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면 그 누구보다 영화를 많이 봐야 합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영화를 많이 보는 한 해가 되기를.' 이런 걸 보면 여유도 여유지만, 영화를 많이 봐야 한다는 강박까지는 아니고 의무감이 생긴 것도 맞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니까.
친구들과 꿈 얘기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돈 상관 없이 정말 하고 싶은 걸 한다면 무엇을 할래? 그럴 때마다 언제나 난 영화를 찍고 싶다고 얘기한다. 언제부터 영화가 좋았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극장에 가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챙겨보거나, 마블 시리즈를 챙겨 보지도 않았다. 맨 처음 극장에서 봤던 영화나 영화에 빠지게 된 순간 같은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한 건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할 일이 없었던 초등학교 6학년 12월, 친구 넷이 우리 심심한데 영화나 찍을까 하고 시작했던 프로젝트였다. 총 두 편의 시나리오를 썼고, 제목은 <돌려주오>와 <어둠 속의 진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제목이지만, <어둠 속의 진실>은 촬영과 일부 편집까지 했었다. 다들 중학교가 달라지면서 영화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이 경험이 나의 잠재되어 있던 영화 DNA를 깨워준 게 아닐까 싶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많이 보기 시작했던 대학교 때, 영화를 찍는 대외활동을 하기도 했다. 2017년 여름, 한강학술문화교류네트워크라는 단체에서 진행한 한강청년포럼 2기로 참여한 나는, 약 열 명의 사람과 함께 <동화>라는 단편영화를 찍었다. 주제를 정하고, 각자 써온 시나리오를 읽으며 어떤 게 더 나을까 고민하고. 콘티를 짜고, 촬영 장소를 찾으러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고. 좁은 민박집에서 무거운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여 가며 장면을 찍고, 쪽잠을 자고 또 이동해서 찍고. 편집과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까지. 한 편의 영화를 찍는 모든 과정마다 치열했고, 힘들었고, 행복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영화감독이라는 나의 꿈이 시작된 건.
'내가 영화를 사랑할 수 있는 열 가지 이유' 중 가장 단순한 한 가지 이유를 대자면, 재밌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는 암전에서부터 끝나는 암전까지,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내 몸과 마음은 영화가 이끄는 대로 속절 없이 요동친다. <캐롤>의 마지막 장면에서 캐롤과 테레즈의 시선이 교차할 땐 기쁨을. <스포트라이트> 속 아동 성추행을 한 사제의 수가 보스턴에서만 90명에 육박할 거라는 사이프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땐 노여움을.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루가 마고에게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내가 이 장난을 했다고 고백해서 당신을 웃게 해주려 했다고 말할 땐 슬픔을. <알로, 슈티> 속 필립의 거짓말을 지켜주기 위해 촌스러운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며 우당탕탕 차에서 내리는 직원들을 볼 땐 즐거움을 느꼈다. 여러 영화는 내게 희로애락을 안겨 주었고, 사실 한 영화를 볼 때도 희로애락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영화라는 새로운 세계는 힘들고 지친 나를 다독여 주었고, 지루하고 졸린 나를 깨워주었고, 행복하고 즐거운 나를 더욱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결국에 영화는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었다. 영화가 끝난 후 찾아오는 정적 속에서 현실로 돌아온 나는 나에 대해, 나아가 세상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생각하게 된다. 영화 한 편의 제작 과정에 담긴 수많은 성찰을 소화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뱉기도 하면서 영화의 맛을 음미하면, 내 인생을 찍는 카메라의 화각이 조금은 넓어지고 인생이라는 필름의 길이가 조금은 길어지는 기분이다.
영화를 찍고 싶다고는 항상 말하지만, 게으른 나는 아직 시나리오 한 편도 제대로 쓰지 않았다. 영화 공부도 하지 않았다. 지금 쓰는 이 글은 반성문인 동시에 선언문이다. 여태 수많은 영화를 보며 시나리오는커녕 감상문조차 하나도 쓰지 않았던 나를 꾸짖고, 이 글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최소 한 달에 한 편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글을 올릴 것이라는 결심의 표현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정성일 평론가의 말이다. 사랑하는 영화를 더욱 사랑하기 위해 이제 두 번째 방법으로 넘어가는 나는, 내년엔 세 번째 방법까지 넘어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언젠가 내가 만든 영화를 상영하는 날이 온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을 모두 초대할 것이다. 거절은 거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