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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삭 Apr 15. 2023

출간 연재-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 5

미니 인터뷰 시어머니편

나 진짜 열심히 살았어


나는 애 아빠가 몰래 중국 갔다가 걸렸던 일만 없었으면 한국으로 안 왔어. 중국에 몰래 갔을 때 내가 사전에 알았더라면 무조건 막았을 거야. 더는 그 땅에서 살 수 없게 되니까 애들 데리고 떠난 거지. 북한에  있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사람을 좋아해.  북적거리는 거 좋아하는 성격이야. 북한에서 그렇게 살다 가 중국에 갔는데 정말 아무것도 보장이 안 되어 있고, 위험에 노출되니까 너무 후회되는 거야.  


그때 나는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어. 혼자 집에 있어도 누구 하나 찾아오는 이가 없고, ‘○○ 엄마’ 하고 불러 주는 사람도 없었어. 애들은 또 셋이니까. 중국은 애가 셋인 집이 없잖아. 애들은 한창 놀 때인데 소리도 내면 안 되고, 다른 아이들 학교 갈 때, 우리 애들은 집에 갇혀 있어야 했으니까. 소리도 내지 말라, 장난도 치면 안 된다,  애들한테 조용히 살라고 이야기해야 하니까,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내가 다 못 살겠더라고. 중국에 온 게 너무 후회되었어. 내가 한 번쯤이라도 여기(중국) 와봤으면 절대 안 왔을 거야.


그런데 우리는 대가족이 이동했잖아. 다시 가서 살 수가 없었어. 여기서 살아야 해. 그래도 애들이 제일 중요하잖아. 애들이 무슨 죄가 있어. 애들은 그냥 엄마 아빠 따라서 온 것뿐인데. 잘못되었을 때 애들이 어떻게 될까 봐 기도 못 펴고 살았어.  


내가 중국에서 먹고살려고 안 해본 일이 없어. 중국에서 7년 살았잖아. 한국에 와서 생각해 보니까 중국에서 살았던 것처럼 살면 여기서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더라고. 나 진짜 열심히 살았어. 나는 사실 여기서 일하면서 북한 사람이라고 차별당하는 것도 못 느꼈어. 북한 사람이라고  나를 얕잡아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 함경북도 사투리 때문에, 내가 말이 좀 투박하니까, 서울 사람들은 부드러운 말투를 쓰잖아. 내 말투가 세니까 나를 무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럴 때 위축감을 느낀 적 은 있지. 그런데 나는 당당히 일했어. 어디 가서 맡은 일은 열심히 했어. 그러면 되는 거지, 내가 왜 북한 사람이라고 위축되면서 살아야 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살았어. 한국에 오고 나서는 후회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어. 


예전에 대한통운 다닐 때 이런 생각을 했어. 내가 북한에  있을 때 적대교육을 받았잖아. 어렸을 때부터 그런 (남한을 적대시하는) 교육을 많이 받았어.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지금 서울에 살고 있잖아. ‘와, 내가 어떻게 서울에 와서 살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여기 온 뒤로 애들이 속을 썩이지 않아서, 그게 제일 좋아. 이제 애들은 다 컸잖아. 민이도 그래. 장가가서 애 낳고 잘 사는 거 보니 좋아. 우리 경이(시언니)도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거든. 대학교도 잘 졸업했고. 막내가 좀 방황하기는 했지만, 오래 방황하지 않았으니까.  


앞으로 바라는 건, 지금도 그렇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거. 인생은 두 다리로 걸을 때까지라고 하더라고. 아프지 않고 걸을 수만 있으면, 힘껏 일하면서 살고 싶어.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애들 잘되는 거 보는 게 내 바람이야. 아프지 않고, 건강관리 잘해야지. 애들한테 짐이 되지 않도록.  


언제 서글프냐면, 내 나이가 이제 육십이 넘었잖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잖아. 그걸 생각하면 좀 서글퍼. 하지만 그게 인생인 걸 어쩌겠어. 경이도 빨리 애 낳고 잘 살았으면 좋겠고, 아이가 자라는 것도 보고 싶어. 앞으로 내가 바라는 건 그게 다야. 자식들이 잘되는 거, 아프지 않은 거, 아파서 엄마보다 먼저 떠나는 일만 없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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