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카페는 커피 값이 꽤 비쌌고,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가기엔 꽤나 부담스러운 분위기였다. 돈 좀 있는 중년층이 비싼 커피를 마시며, 소소한 담소를 나누는 곳이었다. 고객들에 맞춰 엔틱 가구와 비싼 것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 무렵 우리 부모님은 돈을 조금 벌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를 향유하고 싶어했다. 그 덕에 난 널 만날 수 있었다.
엄마 아빠는 입에도 맞지 않는 쓴 커피를 마시며, 어울리지도 않는 주식따위의 얘기를 나눴다. 난 핫초코를 마시며 얼른 이 카페에서 벗어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오래된 가구에서 나는 칙칙한 냄새와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돈 냄새가 불편했다. 그냥 나가서 돈까스나 사 먹고 집에 갔으면 좋겠다, 여길 왜 따라왔을까, 그냥 학교 끝나고 집이나 갈 걸 같은 생각이 가득했다.
핫초코를 반 정도 마셨을 때,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구엔 정말 한톨의 관심도 없었지만 엄마 아빠 얘기를 듣고 앉아있느니 차라리 가구 구경이 나았다. 괜히 여기저기 둘러보며, 슬쩍 만졌다가, 열어도 봤다가, 다시 닫았다. 그렇게 가구 사이를 한참 비집고 다니다 내가 멈춘 곳은 턴테이블이었다.
딱 봐도 오래됐고, 쾌쾌한 냄새가 났고, 색도 너무 칙칙했다. 그리고 그 안엔 돌아가지 않는 LP판이 얌전히 꽂혀있었다. 난 손가락으로 LP판을 돌렸다. 한 바퀴, 두 바퀴, 그리고 세 바퀴.
“노래 틀어드릴까요?”
처음은 네 손가락이었다. LP판을 틀어 준다며 쭉 뻗은 너의 손가락을 따라 난 너의 팔목, 팔뚝, 어깨, 목, 그리고 얼굴을 보았다. 섹시했다. 아니, 그 표현은 부족해. 멋있어, 예뻐, 아름다워, 무엇보다 부드러워. 어떤 수식어를 떠올려다 모자랐다. 그리고 난 얼굴이 붉어졌고, 괜히 네게 무뚝뚝하게 굴었고, 널 애써 무시하려 했다.
마음과 다르게 난 네 옆에 붙었고, 가만히 네가 노래를 틀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네게선 은은한 섬유유연제 향기가, 내게선 풋풋한 첫사랑의 향기가 났다. 난 두 향기가 제법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둘이 합쳐지면 더 향기로울 것이라, 이 카페에 가득 좋은 냄새만 가득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입술을 꽉 다물고 턴테이블과 한참을 씨름하던 넌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거 안 되나봐요.”
머쓱한 얼굴로 웃던 너의 입꼬리, 뒷통수를 긁던 네 손가락. 이 두가지는 쾌쾌한 턴테이블을 반짝이는 마법의 상자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가게를 너의 향기로 채우기에, 나의 머릿속을 너로 채우기에, 내 마음을 몽글거리는 풋사랑으로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 순간 난 직감했다. 넌 내 인생에 마음대로 들어와 마음대로 헤집고 다닐 것을, 네가 내게 아무리 상처 줘도 난 널 포기할 수 없을 것을, 난 너에게 단 한순간도 이기지 못할 것을 알았다. 난 너에게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