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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수 Feb 22. 2019

부산에서 마케터로 살아온 이야기

불운한 마케터는 나뿐인가

올해 나이 31살, 부산 모 대학 광고홍보학과 전공, 병원 및 바이럴 마케팅 5년 차.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온 동안의 내 경력들. 처음엔 단순히 글을 쓰는 일이 좋아서 막연하게 카피라이터를 꿈꿨다. 그러다 학교 수업을 듣고 이래 저래 살다 보니 마케팅 자체에 흥미를 느끼기도 하고, 또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집과 가까운 부산 어디에선가 일을 시작했다.



 첫 직장, 연극 사무실의 공연 기획자


처음엔 연극 운영 사무실에서도 일했다. 마케팅을 하다가 왜 연극?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나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잊고 살았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났다. 연극이라는 장르에 가게 된 경위는 마케팅을 하다 대학교 때 처음으로 갔던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몇 년 동안 참여하면서 그 무대가 주는 흥분과 행복, 그리고 일말의 덕심에서 공연 기획자라는 꿈을 꿨고 마케팅과 그러한 공연 기획 등을 함께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길래 갔던 것 같다.


먼저 내가 일했던 첫 직장에서는 소극장 연극들을 홍보하거나 판매하거나 관리하는 일들을 했다. 공연 기획이라고는 하는 데 있는 연극을 주기적으로 올리고 전화 및 쿠팡, 티몬 등에서 들어오는 예약 명단을 취합하고 소극장에 가서 티켓을 발권하는 일까지 다 했다. 점심시간엔 안에서 밥을 해 먹기도 했고 정말 성격이 더럽고 특이했던 두 명의 상사가 있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마케팅이라고 해 봤자 대학교 커뮤니티나 그런 곳들에 의미도 없는 개수 채우기 글을 복붙 했던 것도. 길이나 대학가에 포스터를 붙이기도 하고. 그렇게 오래 다니지 않았고, 잠깐만 다니다가 그만뒀다. 이건 마케팅이 아니야.라고 생각을 하며.






센텀시티에서 집으로 걸어서 퇴근하는 길의 풍경을 사랑했다. 무려 2013년에 찍은 사진.




두 번째 직장, 바이럴 마케팅 회사



이 곳은 초반에 그렇게 잘 나가는 회사는 아니었다. 회사 건물이 번쩍번쩍하고 내부 인테리어도 가고 싶게 만드는 회사였다. 집과도 가깝고, 위치도 좋고. 무엇보다 예전에 청소도 밥도 직접 해 먹던 회사가 아니라 진짜 '회사' 같은 느낌이 가장 좋았다. 면접을 보고 그 앞에서 '제발 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까지 했고, 합격했다.


하는 일은 간단했다. 블로그들을 만들고, 꾸미고 거기에 우리 광고주들에 대한 글을 올리고 카페나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것. 업종은 다양했다. 맛집, 병원, 서비스, 자사도 있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글 쓰는 건 워낙 좋아했고 키보드를 치는 손도 빨랐으니까. 하루 할당량이 주어지는 제도였는데 9 to 6 시스템에서 보통 일은 3-4시에 끝내고 나는 놀다가 퇴근하곤 했다. 중간에 회사 내부 사업을 좀 키우면서 그거에 대한 TM 도 했었다. 일이 어렵진 않았으나, 일이 많이 없고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거나 나아질 생각은 하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포스팅만 하는 일에 신물이 났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소위 말하는 기획서도 쓰고 싶었고, 경쟁 PT도 일도 따오고 싶었고. 전체적인 마케팅을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진짜 효과를 내고 싶었는데, 그냥 개수만 채우면 되는 마케팅이 과연 효과가 있는 걸까? 이렇게 내가 일을 하다가는 뭐가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퇴사했다. 첫 직장은 6개월 만에 나왔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서울에 있는 음반 기획사도 면접을 봤었다. 정말 운이 좋게 자율 이력서를 써서 보냈는데 면접 제의가 왔고 보러 갔더니 당장 일을 하자고 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였고, 처음 시작하려 하는 마인드가 좋았다. 그런데 막상 가서 면접을 보고 출근을 이야기하는데 덜컥 겁이 났다. 월급은 생각보다 적었고 급하게 둘러본 주변 고시텔들은 월급의 반 이상이 월세였다. 집에서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집에 일이 생겼고 서울행은 그렇게 꿈만 꾸다 포기했다. 어쩌면 내 의지와 겁이 원인일 수도 있고.



애증의 병원 마케팅


회사 이직 정말 많이 했다. 하지만 조금 억울한 면도 있는데, 바로 이 이후부터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싶었다. 그러니까 집에 일이 생겨 돈을 얼른 벌어야 했고, 아는 분이 소개를 해 줘서 오픈 안과에 마케터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나쁘지 않았다. 일도 재밌었고, 내가 마케팅에 관련된 일을 기획하고 그 효과로 신생 병원에 환자가 늘어가고 일손이 부족한 것을 다 느끼고 볼 수 있었으니까. 이때 한참 페이스북 매체가 뜰 때라서 페이스북을 정말 열심히 했다. 어느 정도 유명세도 탔었고, 환자도 많았다. 카페 바이럴도 효과를 정말 잘 냈었고, 1년도 안 된 병원 치고는 성과가 괜찮았지만 문제가 터졌으니 바로 '내부 권력 다툼'. 상사들끼리 싸우고 이래저래 말이 나오다가 병원 직원들의 이간질과 그러한 일들로 팀이 해체가 됐고, 나는 1년 만에 처음으로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리고 이후에 간 치과도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다뤘다. 바이럴 마케팅뿐 아니라 대외적인 기획 및 홍보, 오프라인 행사, 원내 행사, 소위 말하는 블로그 상위 노출, 랜딩 페이지 기획, 홈페이지 제작 가이드 작성 등... 어느 정도 이름도 있는 치과였고 경기가 안 좋다고 하지만 확장을 하고 회사 사람들도 나쁘지 않아서 오래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생긴 '내부 권력 다툼'. 상사가 바뀌었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마가 꼈나 싶을 정도로 황당했고, 2년 근무를 코 앞에 두고 권고사직 처리도 안 되게끔 눈치와 압박 속에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오래 다니려 했으나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고, 내 의지가 아닌 타인들에 의해 등이 떠밀려 나오니까 화가 났다. 그리고 병원은 다신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 마케팅 관련된 건 다음에 다시 쓸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날이 좋으나 좋지 않으나 정말 미팅을 자주 다녔다



내 피 땀 눈물 마케팅 대행사



오랜 방황과 병원과 정치질에 치를 떨며 여행도 하고 쉬다가 마케팅 대행사에 취업을 했다. 아~여기도 진짜 할 말이 너무 많은 곳인데 쓰다 보니까 나 정말 어디 가서 굿이라고 하고픈 심정이다. 어쨌든 처음으로 '대리'라는 직함을 달고 입사를 했다. 회사 사무실도 쾌적, 직함도 마음에 들고. 오픈된 듯한 느낌도 좋았다. 그러나 이내 쏟아지는 일일일. 매일 야근을 하며 제안서, 기획서를 썼고 그만큼 일도 어느 정도 들어오는 편이었다. 담당하는 업체가 늘었고, 업체의 일은 물론 다 퍼주자는 마케팅을 1도 모르는 대표님의 마인드로 인해 모든 업무가 서비스로 직원을 갈아서 돌아가던 시기.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 망해가서 고민이라던 어느 요식업체 대표님은 너무 바빠서 손님을 돌려보내야 할 정도로 호황을 맞았다. 처음에는 작은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광고주가 전적으로 나를 믿어 올 때의 쾌감. 비록 어느 대기업의 브랜드는 아니더라도 소상공인을 살린다는 게 사실은 기뻤다. 어쨌든 마케터는 주어진 주제에 대해 알려서 그 주제를 준 사람들의 목표를 이루게 하는 것이니까. 역시나 중간에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기본 9-10시에 가더라도 진짜 일을 하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대표님도 조금만 있으면 더 큰 일들을 할 수 있으니까 힘내자고 다독였고, 그로부터 2일 후에 회사는 폐업한다.






거짓말 같지만, 처음 한 달 정도 일한 연극 회사와 제대로 된 마케팅이 하고 싶어 나간 두 회사 빼고는 모두 내 의지로 그만둔 곳이 없다. 이렇게 회사가 쉽게 망하나? 사람을 쉽게 내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운이 빠졌다. 생각해보면 어디서도 인정을 못 받는 사람은 아니었고, 모든 직원이 나갈 때도 나는 끝까지 남아서 최후까지 있다가 나온 사람이었는데. 뭐가 잘못인 걸까? 내가? 아님 사회가? 아님 내가 간 곳들이 운도 없이 그랬던 걸까? 새로 시작하는 곳들을 간 게 잘못인가? 무수한 고민들과 후회들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느덧 나이는 30대가 되었는데 나는 뭘 할 수 있나라는 생각과 자괴감도 들었다. 거의 대부분의 업무를 하던 블로그나 바이럴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나만의 무기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 그래서 속상했다. 지나고 나서야 조금 더 열심히 살 걸, 다른 것도 배우고 살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마케터로서 조금 더 알고 다른 사람들과 차별점을 둘 수 있는 게 뭘까? 일자리도 더 줄어든 부산에서 나는 뭘 하며 살며 좋을까? 에 대한 고민과 고민을 하던 참에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다. 모든 것이 파격적이고 달라서 힘들기도 한 곳. 거기서 난 조금씩 내가 가야 할 방향과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다. 이 기나긴 불행 담 혹은 경험담을 늘어놓는 것도 다시 한번 더 다짐을 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열심히 하자.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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