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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삘릴리 May 17. 2022

호랑이 시어머니 산후조리원

한국에는 있고, 외국에는 없는 산후조리문화?


  이메일을 열던 수경의 눈이 반짝인다. 반가운 델레나의 메일이다. 그러고 보니 델레나와 스카이프를 한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수경은 서두르듯 그녀의 메일을 클릭한다.  


  동거 중이던 델레나의 아들 부부가 딸을 낳았다는 깜짝 뉴스다. 예비 며느리가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그녀의 집에서 출산 축하 파티를 열었단다. 어제는 예비 며느리랑 손녀딸을 데리고 평소에 꼭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자랑도 늘어놓았다. 그녀가 동봉한 사진에는 햇살이 좋은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그녀와 예비 며느리 그리고 유모차에 누운 아기가 있었다. 예비 며느리가 아기를 낳은 지 5일째 되는 날이란다.


  허걱! 아기을 낳은지 겨우 5일 된 산모가,  뼈에 바람이라도 들까 벌벌 떨며, 출산으로 망가진 몸을 추슬러야 할 시간에 카페테라스에서 커피타임이라니.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델레나와 그녀의 예비 며느리를 보며 수경은  7년 전, 델리나와 함께했던 파리 여행에서 나눴던 '출산 후 몸조리'에 관한 대화가 떠오른다.


  수경과 델리나는 남프랑스 아를에서 진행된 번역작가를 위한 콘퍼런스에서 처음 만나, 15년째 랜선 우정을 이어가는 친구사이다. 콘퍼런스가 끝난 뒤, 그들은 아를에서 한 달간 체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주최 측에서 마련한 숙소에 함께 머물며 친해졌다. 아를에서 한 달간 꿈같은 시간을 보낸 뒤에도 수경과 델레나는 종종 스카이프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전했다. 그러다가 7년 전에 두 사람은 의기투합, 파리에서 '한 달 살기'를 감행하며 더 돈독한 우정을 다졌다. 서울 출신 수경과 뉴요커 델레나는 파리에서 한 달간, 파리지앤느로 살며 그동안 이메일과 스카이프로 나누던 우정을 백만 배쯤 돈독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 몸조리할 때 한 여름인데도 긴소매에 긴바지를 입었었다. 우리 시어머니 명령이셨지. 몸조리하는 여자가 팔, 다리를 내놓으면 뼈에 바람 든 다고 질색팔색 하셨어. 양치질도 더운물로 해야 했고."

  "우왓, 정말 더웠겠다. 그런데 몸조리가 뭐야?"

  "몸조리 몰라? 여자는 아이를 낳으며 몸이 많이 망가지잖아. 그러니까 몸을 잘 추슬러서 원래 상태로 만들도록 하는 거지. 21일간 영양식을 먹고, 안정을 취하면서 몸이 잘 회복되도록 노력하는 거야. 미국 여자들은 몸조리 안 해?"

  "그런 게 어딨어? 난, 큰애 낳고 3일 만에 백화점에서 쇼핑했는 걸?"

  "뭐시라? 아이를 낳은 지 3일 만에 외출했다고?"

  "그게 뭐 어때서 그렇게 놀란 토끼 눈이 되냐?"

  "아픈 데는 없었어? 아니, 지금은 괜찮아?"

  "당연하지. 딱 봐도 내가 너보다 더 건강해 보이지 않니?"

  

  그날의 대화는 서로에게 문화충격이었다. 출산 후 3주간, 집에서 몸조리를 했다는 수경과 아기를 낳고 3일 만에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는 델레나는 서로의 얼굴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국 여자들의 몸조리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몸조리를 못하면 평생 크고 작은 병에 시달린다고 믿었던 수경은 출산 3일 만에 쇼핑을 즐긴 델레나가 여전히 건강하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었다. 동양 여자들이 특히 한국 여자들 체질이 약해서 몸조리를 못하면 건강에 치명타를 입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우리 새아기, 산후조리는 내가 해주마. "


   수경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시어머니 강여사가 당당하게 말했다. 시어머니의 말이 곧 법이었던 그 시절, 수경은 산후조리를 해주겠다고 자처하시는 시어머니를 거역할 수 없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시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이 앞서지만, 당시에는 고마움보다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해야 마음 편안할 텐데, 벌써부터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산후조리를 자처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수경의 친정엄마 반응은 의외로 쿨했다.


  "사돈이 경험이 많으시니까, 나보다 네 산후조리를 더 잘해주실 거야. 나보다 살림도 잘하시고... 얘, 솔직히 난 사돈이 산후조리를 해주신다니까 마음이 놓인다. 지금 우리 형편도 그렇고..."


  당시, 수경의 친정은 쑥대밭처럼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친정엄마가 친척 빚보증을 서주셨다가 집을 날렸고, 뇌출혈로 건강을 잃은 아버지는 경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이던 동생들 뒷바라지로 버거웠던 친정엄마는 수경의 산후조리까지 할 자신이 없었는지, 순순히 시어머니의 뜻에 따랐다. 친정엄마의 힘든 상황을 알면서도 수경은 서운했다. 그래도 딸인데... 마음 편안하게 산후조리를 받을 수 있도록 친정엄마가 보살펴주기를 바랐다. 혹시, 친정엄마가 죽어라 반대하는 결혼을 감행한 수경에게 벌을 주고 계신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새아가, 너는 틀림없이 아들을 낳을 거다. 네 배 모양이 딱 아들이야."


  딸 넷에 아들 하나를 두셨던 시어머니의 아들 타령은 끝이 없었다. 결혼한 시누이들도 딸을 낳아서 아들 손주에 대한 시어머니의 열망은 더 컸던 것 같다. 요즘처럼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문제가 달랐겠지만, 수경은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 시어머니의 아들 타령을 들어야 했다. 12시간 넘게 진통을 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수경에게 시어머니는 조용하게 말씀하셨다.


  "괜찮다. 넌, 아들을 낳을 거니까... 아파도 조금만 참아라."


  그날, 수경이 출산한 산부인과에서는 여자아기 셋에 남자아기 하나가 태어났다. 수경이 몸이 찢어져 허물어지는 진통에 시달리는 사이, 다른 산실에서 세 명의 여자아기가 태어났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아들을 낳았다. 아기가 첫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분만실 앞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아들을 확인한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은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모두들 아기를 보느라 몰려갔고, 마무리 처치를 받고 분만실을 나서는 수경을 기다려준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산부인과에서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수경은 본격적인 산후조리에 들어갔다. 7월 중순에 아기를 낳은 그녀는 솜이불을 깔고 덮은 채 몸조리에 들어갔다. 아무리 더워도 찬물로 이를 닦거나, 몸을 씻는 일은 금지였다. 하루 세끼 소고기를 듬뿍 넣고 산모용 미역으로 끓인 미역국에  맛깔난 반찬들, 따뜻한 쌀밥을 듬뿍듬뿍 먹어야 했다.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시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을 수경은 맛있게 먹었다. 그래야 아기에게 건강한 모유를 먹일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문제는 그녀의 부실한 유선에서 시작됐다. 5남매를 찰진 젖으로 잘 먹여서 키운 친정엄마의 전적을 믿었던 수경은 그녀도 엄마처럼 아기에게 영양 가득한 모유를 먹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기용품을 준비하면서 젖병을 사지 않았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젖병을 사자는 남편에게 임신으로 잔뜩 부풀어 오른 가슴을 내밀며 젖병이 필요 없다고 큰소리까지 쳤었다. 모유수유를 꼭 하겠다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던 수경의 기세는 출산 3일 만에 꺾여버렸다. 공갈빵처럼 부풀었던 가슴이 전혀 딱딱해지지 않았다. 유선이 돌아야 가슴이 딱딱해지면서 젖이 나올 텐데, 흐믈흐믈한 가슴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다.


  "새아가, 얼른 아기한테 젖을 물려라. 자꾸자꾸 아기한테 젖을 물려야 젖이 돌지, 힘들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배는 고픈데, 엄마 젖은 나오지 않으니 빈 젖을 빨다가 지친 어린 아들은 죽어라 울어댔다. 배가 고파 우는 아기를 품에 안고 씨름하던 수경도 함께 울었다. 그렇게 기진맥진 한바탕 난리를 치고 쓰러지듯 누우면, 기다렸다는 듯 강 여사의 채근이 시작됐다. 왜, 아기에게 젖을 물리지 않느냐는 질책은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시어머니 눈치를 보느라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 앉아만 있다 보니, 산후조리는 고사하고 출산 후 산부인과에서 봉합했던 자리가 다 뜯어져 버리는 대참사까지 발생했다. 너무 아파서 더는 앉아서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 없게 되자, 시어머니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수경의 친정엄마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 집은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너희 어머니는 뭘 하신대니? 시집에서 딸 몸조리를 해주는데 그렇게 무심하실 수 있는 거니?"


  시어머니의 말이 수경의 가슴에 꽂혔다. 억울한 마음에 울컥했지만, 수경은 호랑이 시어머니에게 대들 엄두도 못 냈다. 사돈댁이 어려워서 손주가 보고 싶어도 연락조차 못하는 친정엄마와 친정식구들 생각에 가슴이 저렸다. 시어머니가 몸조리를 해주신다고 나서지만 않았더라면, 그녀도 편안하게 친정에서 몸조리를 했을 거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소리는 목울대를 넘지 못했다. 수경의 전화를 받고 친정엄마가 부랴부랴 젖을 잘 돌게 해준다는 한약과 돼지족을 사들고 달려왔다. 한약을 먹고, 돼지족을 고와서 국물을 마셨지만, 그녀의 가슴은 그대로 말라버렸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수경은 모유를 포기하고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엄마젖도 못 얻어먹는 가엾은 내 손주, 짠해서 어쩐다냐~"


  시어머니는 손주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며느리가 받을 상처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기에게 모유를 못 먹여서 그녀가 얼마나 속상할지, 얼마나 힘들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대놓고 구박을 하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할 지경이었다. 수경은 시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설 때마다,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산후조리를 자처한 시어머니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준다고 덜컥 딸을 맡긴 친정엄마도 미웠다. 그렇게 수경은 후끈후끈 뜨거운 방에서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의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시에미가 종인줄 아는 거야 뭐야? 삼칠일이 지났는데 일어날 생각도 않고... 어이구 내 팔자야. "


  까무룩 그루잠을 자던 수경은 시어머니의 끌탕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오늘이 며칠이지? 비몽사몽간에 수경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벌써 삼칠일. 출산 21째 되는 날이었다. 밤사이 서너 번 이상 깨서 우는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새벽같이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다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수경은 시어머니가 몸조리를 한 달간 해주시는 거로 생각했었다. 시누이들 몸조리도 한 달간 해주셨다며, 어렴풋이 그녀의 몸조리도 한 달을 약속하셨던 것 같은데, 수경의 착각이었는지, 시어머니는 그녀의 방 밖에서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푸념을 늘어놓고 계셨다. 놀란 수경은 그대로 방을 뛰쳐나왔고, 그렇게 21일간의 산후조리가 끝났다. 수경을 위해 오픈했던 호랑이 시어머니 산후조리원이 갑자기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세월이 흘렀고 수경은 이제 산후조리를 해주시던 시어머니 나이가 됐다. 생각해본다. 만약, 그녀도 시어머니처럼 며느리 산후조리를 해주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기꺼이 그녀만의 산후조리원을 오픈할 수 있을지를. 잘 모르겠다. 마음으로는 며느리 산후조리를 해주어야 한다면, 그녀처럼 스트레스받지 않게 마음 편안하게 잘해주어야지, 생각하지만... 몸이 약한 수경이 시어머니 강 여사처럼 넘치는 정열로 며느리를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다행인 건, 아직 그녀의 아들이 결혼을 안 했고, 이제는 산후조리를 집이 아닌 산후조리원에서 한다는 것이다. 산모와 신생아가 공동시설을 이용하기에 가끔 감염사고가 발생하고, 산후조리원에 따라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까지 비용이 어마 무시하다는 문제가 있지만 어쩌랴. 부지런히 일해서 며느리가 좋은 산후조리원에 갈 수 있도록 돈을 모으는 수밖에...  


  노트북 앞에 앉은 수경의 시선이 카페테라스에서 활짝 웃고 있는 델레나와 그녀의 예비 며느리 사진으로 향한다. 산후조리를 몰라도, 산후조리를 전혀 받지 않아도 왜 저들은 저렇게 건강한지,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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