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랑 같이 살면서 진짜 아무 일도 안 하고 애들에게 하루 통으로 시간 쓴 거 처음 봐요.”
그 말은 듣자마자 마음이 아팠다. 그게 사실이었으므로.
최근 요 며칠 아이들을 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정말, 글로성장연구소에서 최리나작가님이 내게 문득 주는 일들과 나작가 수업 준비를 빼면 정말 꿈결같이 보낸 삼사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뭐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고 가까운 곳에 지하철을 여러 번 타고라도 아이와 함께 가고, 능률을 따지기 전에 아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려고 노력하는 것. 재미없는 인형놀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공감하고 인정의 말로 맞장구를 시작하는 것.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런 것들을 반복하면 일단 글쓰기 관련 업무를 하는 것보다 체력적으로도 더 힘이 들고 정신적으로는 몇백 배 힘이 든다. 그런 날들을 보내던 중 남편이 내게 저런 말을 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자책도 했다. 모두 잠들고 눈물도 흘렸다. 양육서도 다시 읽어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삼사일이 지나자 나도 모르게 1월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월에서부터 3월까지 두 아이는 학원에 가지 않고 온전히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는데.
나는 일을 할 시간이 없는데. 끄적끄적 대다가 과거의, 7년 전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모두 다 집에 있고 1살, 2살 때.
'그때도 없는 시간을 쪼개서 뭔가를 했었어. 그때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데 뭐. 지금도 할 수 있어!'
생각은 이상하게 적극적으로 흘러갔다.
일단 1월, 2월 동안 ‘준비기간’으로 삼자. 2024년 출강 나간 이력과 수입, 업체, 어떻게 연락 와서 섭외되었는지를 정리해 놓자. 그리고 유튜브 1년 치 주제를 모두 정하자. 영상을 5개 정도 미리 찍어서 바쁠 때를 대비한 영상을 준비해 놓자. 또한 그 영상에 관련된 내용을 좀 더 깊게 블로그에 적자. 아니 적기 전에 그 제목을 정해놓고 세부내용 1년 치를 정리해 놓자. 기업강의 주제로 영상과 책을 많이 보자. 관련내용은 꼭 정리를 해놓고 블로그에 올리자.
신문도 좀 더 꼼꼼히 읽어서 매일 10개 정도 기사를 분별해서 정리해 보는 습관을 가져보자.
브런치 역시 브런치북을 만들자. 목차를 만들어서 책에 들어갈 내용을 가볍게 써보자. 목차를 서른 개나 마흔 개쯤 많이 담아보자.
아이들이 함께여서 못하는 일은 물리적으로 나를 둘로 나누는 일이다. 내가 생각을 해서 서류를 정리하거나, 글을 쓰는 일은 할 수 있다.(물론 그 시간이 명확하게 하루 3시간 밖에 안되고, 신문만 읽어도 2시간이 흐르니 전혀 맞지 않는 계획이지만......)
이쯤 되니 아이 둘을 가정보육하면서 아이들과 24시간을 함께 하는 내 미래는 서서히 멀어진다. 또다시 자책을 하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가 내게 영상 캡처를 하나 보내주었다.
고현정 배우가 유퀴즈에 나와서 했던 말.
출처 유퀴즈
엄마는 산뜻하게 열심히 살고 있고
이틀 동안 아이들이 독감이라 밤을 새우고 간호했다. 아이들을 간호하며 비실 비실 거리다가 오늘은 병원에서 링거까지 맞고 왔다. 그 사이 남편도 독감에 걸렸고 우리 집은 총비상이었다. 그 비상이 끝나고 나는 지금 링거를 맞은 찰나의 에너지로 이 글을 쓴다. 또한 조금 있다가 리나작가님과 함께 나작가프로젝트 회의까지 마치고 잠을 잘 예정이다.
나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살가운, 24시간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을 못하는 엄마이지만 나쁜 짓이나 남을 험담하는 일 같은 것들에 시간을 주지 않고 유흥을 즐기는 일대신 나대로 산뜻하게 일을 하며 산다. 이렇게 매일 즐겁게 일을 하면서. 계획을 세우면서.
나는 산뜻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는 내게 이렇게 들린다.
나는 나쁜 짓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애를 못 키우고 있다는, 난 왜 이모양인가 자책을 줄이고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주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