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ulturing me May 15. 2022

'인정'에 의지하는 인생, 이제 그만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이는 서로 닮아간다.  쓰는 언어도 비슷하고, 생각의 방향도 엇비슷해져 간다.  그런데 한 가정에서 밀착되어 지내는 가족 사이에서는 오히려 소통의 문제가 자주 나타난다.  함께 지내다 보면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간다. 이것도 알아줬으면 좋겠고, 저것도 알아주기를 원한다. 구태여 말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을 꿰뚫어 봐주고 서로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길 기대한다. 가족이란 관계는 이렇듯 무언의 요구를 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족 간의 갈등은 바로 이런 무언의 기대들 때문에 생겨나게 마련이다. 밖에서는 멀쩡한 사람이 집에서는 이상한 사람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알아봐 주고 인정해줄 것을 기대했던 가족에게서 그런 리액션을 받지 못하면 마음의 갈등이 생기게 된다. '만족도는 기대치에 반비례한다'는 법칙이 가족 간에서는 더 심하게 작용한다.


엄마인 b는 가족 내의 갈등이 심하다고 했다. 본인이 최선을 대해 아들을 키웠음에도,  아들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지 못해서 진로를 방황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의 편안한 학교생활을 위해서 일반 고등학교를 두 번이나 옮겨줬고 마지막에는 대안학교를 보냈었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다기 힘들어하면 당장 그만두라고 아들 편에 서서 충분히 이해해 줬다고 했다.  그렇게 모든 상황을 아들에게 맞춰 환경을 조성해 줬음에도 아들은 여전히 방황 중이고 자신과는 대화를 단절해 버려 힘들다고 했다.     


b의 문제는 무엇일까?  언뜻 들어보면 방황하는 b의 아들에게 문제가 있는 듯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본질을 보면 자신의 헌신과 희생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b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아들에게 쏟은 본인의 희생에 대해 인정과 칭찬이 돌아와야 하는데 현실의 결과와 반응은 그러하지 않음에 대한 불만족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가족을 뒷바라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칭찬이 따른다. 분명 칭찬받을 일이고, 그것은 가족끼리 서로 보안적 관계가 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희생이 과해져 그것이 삶이 패턴이 되는 경우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게 된다. 희생으로써 인정을 받았던 사람은 모든 일에 희생을 하며 존재를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희생이 빛을 보지 못하면 견디기 힘들어 더욱더 강도 높은 희생을 자처하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누구를 위한 희생인가?  부모의 과한 희생을 받아온 자녀는 분명 부모로부터 '너를 위해서'란 말을 수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말을 지속적으로 들어온 자녀는 '희생'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어지게 되거나, 무기력에 빠져 에너지를 무의미하게 낭비하기도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은 힘들지 않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에 오히려 즐겁고 기쁘다.  하지만 부모의 희생이 과해서 자녀의 마음에 짐을 남기는 왜곡된 감정은 사랑이 아닌 중독적 감정 패턴이다.


좋은 운동도 과하면 운동 중독이 되는 것처럼, 희생도 과하면 인정 중독으로 빠질 수 있다.  힘들게 희생했을 때 "역시, 당신이 최고야"라고 돌아오는 한마디의 인정. 그 달콤함의 유혹을 지나치지 못하고 인정에 대한 기대치를 쌓아갈수록 실망은 깊어지고 가족이란 공동체를 흔드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타인의 칭찬 따위로 우리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과도하게 애쓸 필요가 없다.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가여운 인생은 여기서 떠나보내자.

 




작가의 이전글 과거에 갇힌 마음.. 상상력으로 열어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