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은, 카피해 봤자 남의 것.
코로나 여파로 사생활에 제약이 생기면서 사적인 공간은 모두에게 중요해졌다. 집에서도 개인공간을 마련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스페이스에 여유가 없다면 작은 테이블 하나를 들여서라도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해서 타인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적, 공적 모임에 제약을 받다 보니 최근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프라이빗 라운지를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미팅이나 모임 때문에 몇 군데를 가보고 느낀 점은 강북과 강남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충분한 시간의 다져짐에 의해 형성된 강북에는 역사의 흔적이 있다. 그 역사의 흔적이 있는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에게서는 역사와 문화가 스며있는 취향을 자연스럽게 드러 낸다. 공간을 레노베이션할 때에도 되도록 개인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남기려는 노력을 한다.
한편, 논, 밭, 모래사장 위에 아파트를 세워 만든 강남이란 도시는 공간을 세움에 있어 문화나 역사 그리고 뿌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 브랜드나 유명세를 가진 작가의 작품 등을 동원해서 천편일률적인 톤의 인테리어와 눈에 익숙한 오브제들로 채운다.
공간을 만든 주인의 취향이나 개성이 중심에 있지 않고, 유행하는 브랜드가 공간의 주인이 되어가는 아쉬움이 있다. 자유롭고 편하게 의자에 앉고 싶어 의자에 엉덩이를 대는 순간 "그 의자는 누구누구의 작품"이라는 말이 뒤통수를 때린다. 순간 나는 좌불안석이 되고 만다.
심지어 차를 마신 후 잔을 테이블에 놓을 때도 눈치 아닌 눈치가 보인다. 테이블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들은 터라 흠집이라도 낼까 싶어 여간 긴장이 되지 않는다. 생명력 없는 물건들을 모시기 위해 나의 영혼이 마음껏 쉬지 못하는 공간이라니! 헤리티지 없는 강남문화가 매력 없는 이유는 문화 마저도 카피를 하기 때문이다.
내 정서에서는 큰 괴리감이 있는 외국 문명의 결과물을 카피해 놓고서는, 유명하고 비싼 브랜드이니 조심해서 다루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공감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 단순히 유명하고 비싸다는 이유로, 존중의 마음을 표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뿌리와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유명세'와 '브랜드'만 있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