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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호 Sep 29. 2020

그래서 이 세계는 누가 지킨다고?② <보건교사 안은영>

[오늘 밤엔 넷플릭스-9월 5주]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리뷰

이 글은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5화, 6화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전 글에 이어서...

안은영은 계속 움직인다. 아픈 학생을 찾으려 학교 곳곳을 뒤지거나(1화), 수상한 동료의 뒤를 캐거나(3화), 옴잡이의 윤회를 끊기 위해(5화) 은영은 계속 움직인다. 하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크립톤 행성 외계인도, 고담시의 억만장자도 아닌 보건교사가 혼자서 세상의 모든 불운을 짊어지기란 불가능하다. 은영이 그러한 사실을 여실히 깨닫는 장면이 있다. 5화에서 은영은 중학생 시절 짝꿍이었던 김강선(최준영)의 영혼을 만난다. 강선은 자신이 일하던 공사장의 크레인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밝힌다. 은영은 이렇게 대꾸한다. "나 그거 뉴스에서 봤는데, 그게 너인줄 몰랐어." 이 장면은 새삼 은영의 한계를 환기한다. 젤리를 본다고 해서 은영이 세상의 모든 재난을 미리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설령 자신의 친구와 관련한 사고일지라도 말이다.


은영에게 젤리를 퇴치할 능력은 있어도 인재(人才)를 막을 초월적 힘은 없다.
선잠에서 깬 은영은 이 차가운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만약에' '우연히도' 강선의 사고 당일, 은영이 현장에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드라마는 이 가정을 은영의 꿈에 투영한다. 은영이 사고 직전 현장에 서 있다. 그런데 은영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강선을 구하지 못할 것임을. 이 순간에 은영의 장난감 칼과 BB탄 총은 쓸모가 없다. 어쩔 도리가 없음은 은영도 마찬가지이다. 장난감 칼과 BB탄 총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은영은 주저앉아 오열한다. 이제 은영은 강선의 말했던 사고 당시 상황을 목격한다. 건설 자재를 높이 끌어올리는 녹슨 타워 크레인. 맥없이 휘어지는 지브(크레인에서 회전하는 금속 격자). 혼자 멀뚱히 서 있는 강선. 끝내 은영은 사고 징조부터 비극의 순간과 그 이후까지 오롯이 목도해야 한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은영은 드라마 속 젤리 헌터인 동시에 평범한 시민의 표상이기도 하다. 은영에게 젤리를 퇴치할 능력은 있어도 인재(人才)를 막을 초월적 힘은 없다. 선잠에서 깬 은영은 이 차가운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후 드라마는 잠시 은영의 능력을 앗아간다. 은영은 더 이상 젤리를 볼 수도, 물리칠 수도 없다. 자신이 무용하다고 느낀 은영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목련고를 둘러싼 게임에서 스스로 퇴장한다. 게임에서 물러난 은영은 움직이지 않는다.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을 뿐이다.


은영이 잠시 물러나 있는 동안 다른 인물이 예전의 은영만큼 동분서주한다. 한문 선생 홍인표(남주혁)다. 인표는 학교 지하실과 연관된 일광소독의 흔적을 쫓아 전국을 누빈다(6화). 이때 인표의 분주함은 캐릭터의 첫 등장과 대조를 이룬다. 1화에서 인표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은영이 처음 인표를 찾았을 때 역시 그는 앉아 있었다. 은영이 승권을 조퇴시켜야 한다고 말할 때도 인표는 계속 앉아 있었다. 하지만 승권을 "지금, 당장, 빨리!" 찾아달라는 은영의 부탁에 그제야 인표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실 인표의 첫 움직임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그것은 은영의 채근에 의한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수동적이다. 또한 담임교사로서 최소한의 책무를 행한다는 점에서 소극적이다. 인표 역시 은영과 마찬가지로 지루한 일상을 헤엄치며 해야 할 일을 하는 평범한 존재이다. 마뜩잖은 표정으로 은영과 함께 지하실을 탐사하는 모습도 여하다. 인표는 그저 지하실 책임자로서 은영을 따라가는 중이다. 이 순간은 재미없는 선생 홍인표가 은영의 안내로 모험의 세계에 진입하는 과정이다.


이후 인표는 은영과 일련의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점차 학교(세상)를 지킴에 적극적으로 변모한다. "아무도 모르게" 누구보다 훌륭한 탱커 및 힐러의 자질을 갖춘 인표는 나름의 방식으로 은영을 돕는다. 그는 은영을 충전하거나 온건한 방법을 제시해 두 비행 학생의 문제를 해결(3화)한다. 은영 역시 조력자 인표 덕분에 거대한 젤리 괴물을 퇴치(2화)하는 등 혼자서는 못했을 성취를 이룬다. 어쩌면 3화에서 매켄지(유태오)가 은영에게 했던 조롱("그 학교는 너 혼자 감당 못 해")은 결국 매켄지의 입을 빌린 드라마의 충고일지도 모른다. 은영 한 사람의 능력은 학교 밖 세상은커녕 목련고 하나를 지키기에도 부족하다. 하지만 은영과 인표 그리고 둘을 돕는 학생들의 연대와 협력이 이루어질 때 이들은 학교를 지킬 수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서로의 손을 쥐는 힘이 곧
서로의 삶을 지키는 응력이라 믿는다.


아직 능력을 되찾지 못한 은영이 학교로 돌아온다. 은영은 인표를 찾고 둘은 다시금 지하실로 향한다. 1화와 정확히 대구를 이룬다. 은영도 인표도 젤리를 탐지하지 못하건만 둘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둘은  함께 움직인다. 이쯤 되면 <보건교사 안은영>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투명하다고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 여섯 화에 걸쳐 시청자에게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재기 발랄한 응원과도 같다. <보건교사 안은영> 우리 주변의 혹은 지금 드라마를 보고 있는 익명의 안은영과 홍인표를 격려하고 기린다. 실수하고 귀찮아하고 욕도 내뱉는 일상 속에 산포한 사람들. 그러니까 재미는 없을지라도 부지런한 시민들 말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연대할 것을 권한다. <보건교사 안은영> 서로의 손을 쥐는 힘이  서로의 삶을 지키는 응력이라 믿는다. 그렇게  세계는 바지런하고 싱거운 시민들이 지킨다.




감독: 이경미

출연: 정유미, 남주혁, 유태오, 문소리 등

장르: 판타지, 코미디

시청가능플랫폼: 넷플릭스

원작: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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