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사이에서 피어난 장미
10. 희망을 보았다
호기롭게 일기를 시작하던 한 달 전과는 달리, 한동안은 침울함에 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뿌리를 옮겨 심으면서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 고수가 다 말라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흙은 계속 축축한데도 고수만 시드는 것으로 보아 물은 줬지만 그 물을 흡수할 수 없는 상태인 것 같았다.
추가로 불려놓은 싹들도 내 부주의로 인해 제때 심지 못해 모두 죽어버렸다. 어느날 아침에 바로 팍 죽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들어 가기 때문에, 섣불리 사망 선고를 할 수도 없었다. 매일 매일 조금씩 축 늘어지는 애들을 보면서 속상하지만 이번 고수 농사는 실패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고수 일기도 쓰지 않고, 죽어가던 고수를 방치하던 그 때. 과장님이 나한테 놀라서 사진 하나를 보여주셨다.
다 말라 비틀어진 애들 가운데서 꼿꼿하게 위로 뻗은 싹이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전에 자랐던 애들은 다 맥없이 주저 앉은 것을 봤던 터라, 이렇게 꼿꼿한 아이는 분명 새롭게 나타난 것일 테다.
고수는 흙을 뚫고 치열하게 태어나고 있는데, 나는 고작 몇 주 사이에 쉽게 포기해 버렸던 게 부끄러웠다. 아직 끝이 아닌데.
미안하다. 고수야.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우리 다시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