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 주 Apr 08. 2024

영원회귀 “결혼 테스트”

당신은 파트너의 청혼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봄비가 하루종일 내렸다. 바삐 움직였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했다. 두통도 밀려왔고, 몸도 몹시 피곤했다. 이제 좀 쉬어볼까! 하던 찰나, 남편은 산책을 제안했다.

“비 오고 나면 벚꽃도 끝이야. 밤에 보는 벚꽃은 또 다르지. 좀 걷자!!”

몇 번 거절하다 ‘밤에 보는 벚꽃’이라는 꽤 설득력이 있는 말에 이끌려 주섬주섬 챙겨 따라나갔다. 비는 보슬보슬 내리는 정도였고, 포근한 봄밤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산책로에 그 많던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니 거침없이 걸어갈 수 있어 좋았다. 벚꽃이 한창일 때는 하천을 따라 핀 벚꽃을 보려고 일주일 내내 이 지역민뿐만 아니라 외지인들도 북적북적거리던 산책로였다.  하천에 물은 콸콸 흐르고, 아름드리나무 덕에 내리는 비는 우산에 걸쳐지는 정도이며, 벚꽃은 조명에 의해 조용한데 화려하게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남편은 자기 덕에 이런 호사스러운 풍경을 본다며 어깨뽕을 세웠다.

“나오니 좋지? 넌 운동을 좀 해야 돼. 너무 안 움직여. 벚꽃도 비 그치고 나면 이제 없어!! “

사실, 두통도 심하고 몸의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남편은 혼자 걷기 위해 나가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혼자서도 걷는 사람이다. 산책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혼자서는 절대 나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몸을 일으켜 함께 걸어주고 싶었다.

“그래. 나오니 좋네.”

좋았다. 고요한 밤에 사람의 소음은 들리지 않았고, 자연은 약속된 오케스트라 마냥 각자의 소리를 내지만 한 가지의 울림을 위해 소리를 내어주는 듯하였다. 남편의 강요에 의해 끌려 나오 듯 나왔지만, 오롯이 호사를 누린 것은 나 인 듯싶기도 했다.



문득, 걷다가 읽었던 철학서[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저.]에 니체가 주장한 이론 ‘영원회귀’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니체는 우주는 똑같이 반복된다고 주장하였다. “당신의 삶은 정확히 똑같이 반복될 것이고, 앞으로도, 뒤로도, 영원토록, 다른 것은 없다. 결코 편집은 불가능하다. “ 영원회귀 실험의 예로 한 학자가 제안한 테스트가 있다.


“결혼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다. 책에서는 긴 결혼 생활 끝에 막 이혼을 마쳤다고 상상해 보라고 한다. 지금 아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로 당신은 영원회귀하였다면, 전 파트너의 청혼에 다시 “네”라고 답할 것인가?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이 글을 읽은 후,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 질문을 해보았다. 물론 나 역시 이 테스트에 답을 했다.


나는 “네”라고 대답할 것이었다. 이 결혼의 모든 것이 완벽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만나도 찰떡같이 나와 맞는 사람은 단연코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 열심히 싸웠고, 사랑했고, 미워했고, 다독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이 사람하고는 티키타카하면서 극복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막연하게 남편 역시 이 질문에 대해 “네”라고 말할 것이라 예상을 했다. 오히려 나보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단언했다.


남편은 출근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두세 번은 전화를 한다. 나의 안부를 묻고 애정 어린 말도 잘하는 편이다. 항상 먼저 다가와 ”사랑해, 내가 많이 사랑해 “ ”난 너 없으면 못 살아. “ ”네가 바람나면 우린 다 죽어~그놈도, 나도, 너도 “ ”우린 뭐든 같이야~“ 이런 닭살스런 말도 자주 하는 편이라, 단 한 번도 그의 사랑이 이기적일지언정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네 “를 단언했다. 혹은 다음 생에도 나를 만난다고 할까 내심 걱정 아닌 걱정을 하였던 터라…^^;;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그의 대답을 분위기에 취해 남편에게 물었다. 니체의 영원회귀 이론을 간단히 설명한 후 그에게 물었다.

“어쩔래? 넌 이미 다 알아~우리가 살았던 순간들을, 그런데 나와 결혼할래?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거야?”

“나는 다른 사람이랑 하겠어.”

“에? 다른 사람이랑? 왜?”

나는 예상과 다른 대답에 호기심 상승과 흥미진진해져서 재차 왜? 라며 빠른 대답을 재촉했다.

“너랑은 이미 다 해봤어. 열심히 사랑도 했고, 열심히 싸우기도 했고, 슬프고 힘든 순간들도 같이 극복해 봤고, 후회 없이 한 듯 싶어서… 음~~ 그래 다른 모험을 하겠어.”

“아니, 그 선택에 개차반 같은 여성을 만날 수도 있다면, 오히려 더 힘들게 살게 될 수도 있잖아?”

“뭐, 어쩔 수 없지. 싸우고 고쳐보고 안 되면 이혼하겠지.”


단언했던 그의 대답이 “네”가 아니라 “아니”라서 좋았다. 이 결혼이 만족스럽지 않아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그의 대답이 좋았다. 적당히 그럭저럭 잘 살아온 것 같아 다시 반복하겠다던 나의 대답보다 그의 “아니”라는 말이 좋았다.


늘 남편은 함께 하는 것에 목마른 사람처럼 군다. 나는 늘 혼자가 목마른 사람처럼 군다. 어쩌면 그의 애정이 이 결혼을 유지하는데 더 큰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반문하게 되었다.


혼자 나가는 것이 힘든 남편을 위해 두통과 피곤을 제쳐두고 나왔던 나와 달리, 그는 운동을 미루는 아내를 위해 애써 밤 산책을 벚꽃에 핑계 삼아 끌고 나왔을 것이다. 함께 산 세월만큼 부부는 공유된 사실은 차고 넘칠지 모르지만, 서로를 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언하지 말고 그녀의 그의 생각들을 물어봐 주자. 자주~~


매거진의 이전글 라면을 먹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