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vs옷
남자 혹은 여자를 구분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지양하지만, 차만큼은 여자보다 남자가 애착이 심한 듯하다. 특히 같이 사는 남자는 더 심하다. 10년 이상 탄 차도 타인이 느끼기에는 신차 같은 느낌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겉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안에 탑승을 하더라도 새 차 냄새가 난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의 외장하드보다 차의 외장하드가 훨씬 깔끔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비 소식이 있는 날에도 그는 세차를 하려 든다.
“비 올 건데 왜? 세차를 하지? “
“잘 닦아놔야 비 온 뒤에 얼룩이 안 생겨. 비가 차에 묻은 먼지에 스며들지 않고 흘러내려서 결국 세차가 더 수월해지니 비 오기 전에 한 번 닦아놓는 거야.!!”
“어차피, 비 맞았다고 또 할 거잖아!!!”
“그때는 금방 끝나지. 할 것 도 없어~ 그냥 쓱~~ 닦으면 돼.”
못 말리는 그의 세차 철학이라, 묵묵히 그가 세차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닦아도 ‘나는 안 보련다’하며 눈을 감는다. 그 모습이 참 쓸데없어 보이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내 기준에는 아직 세차타이밍이 아니라고 여기지만, 그의 고집은 남다르기도 하고 나더러 같이 닦자고 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네가 좋아서 하니 내버려 두는 것이다. 주로 내가 몰고 다니는 차가 있고, 그가 몰고 다니는 차가 있다. 하물며 내가 타고 다니는 차도 똑같은 기준으로 세차를 한다.
문제는, 그의 기준으로 차가 조금만 더러우면 세차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도 모르게 차를 엄청 신경 쓴다는 것이다. 과자 부스러기, 먹다 남은 음료 병, 자잘한 쓰레기에 무척 신경을 쓰고, 험하다 싶은 장소에 들렀다 싶으면 차를 한 바퀴 둘러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에게 차란? 편리한 이동수단의 목적성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처절하게 신경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에게 스트레스라고 말해도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이다.
“이왕이면 쾌적한 것이 좋은 것 아니냐! 너보고 청소하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 해 주는데 뭐가 불만이냐! “
“내가 더럽게 쓰면 눈치 주잖아. 긁혀 있는 거 몰랐냐! 차 내릴 때 쓰레기는 들고 내려라! 주차는 왜 거기 했냐! 차를 모시고 다니는 것 같잖아~!”
이런 실랑이는 13년째 지속, 아니 연애 때부터 연인의 차를 닦고 관리할 때부터 지속되었다. 그때는 그저 고마웠고 사랑이라 착각 ^^;;
제법 합의점을 찾았다 싶다가도 재점화되는 부부싸움의 중심주제이다.
때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주제는 주차 문제였다. 차를 철저히 관리하는 그의 행동 양식 중에 주차문제는 세차문제만큼이나 나를 미치게 하는 부분이었다. 그가 주로 몰고 다니는 차로 아이를 데려다주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는 나의 차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나는 호기롭게 말했다.
“저쪽에 안전하고 넉넉한 자리에 주차해 놨어~”
“내 차 빼면 여기 넣어 줄래”
“What!!!!!!!!!!!!!! (‘이런 미친 ‘ : 마음의 소리입니다.), 그 자리도 좋은 자리야!! 그냥 가!!!!”
“아니, 내가 가져올게 차만 빼죠!!!”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한 때는 군소리 없이 차를 빼주기도 했지만, 그날 아침 그의 신경에 거슬리지 않을 자리를 물색하기 위해 지하 주차장을 한 바퀴를 더 돌어서 차지한 주차자리였다. 나 역시 적당히 공간 넓고 다른 차와의 간격에 무리가 없는, 문콕이 되지 않는 자리를 물색했던 것이다. 그가 차에 유난스럽지만 않다면, 나는 아무 데나 주차를 해도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문콕 정도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그런 내가 주차할 때마다, 그가 만족할 만한 주차공간을 찾고 있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가 싫다고 하니까 수고스러움을 자처한다. 그는 나의 인내심의 임계점을 건드린 것이었다.
“적당히 좀 해!!!!! 이 정도면 정신병이야!!! “
나의 고성에 대꾸 없이 그는 뛰어갔다. 차를 가지고 오는 사이 나는 그의 차에 시동을 걸고 분에 못 이겨 혼잣말을 해대며, 차를 가져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홀로 몸만 돌아왔다. 가다가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했나 싶어 돌아오는 줄 알았다. 이유는 오다가 더 좋은 자리가 보여서 거기다 주차하였다고 한다. 어이가 없고, 참았던 화가 분출되니 제어를 잃고 그에게 쏟아부었다.
“내가 똥차하나 사서 몰고 다닐 거야, 신경 1도 쓰지 마! 쓰레기통으로 하고 다녀도 너는 모르는 차야!”
“차도 한 번 안 치우고, 주차도 내가 하지~ 네가 하냐!!”
“뭐래~!! 내가 치울 틈이나 있니? 내 눈에는 깨끗하기만 한데, 자기 눈에 더러워서 치우면서!!!”
정답이랄 것도 없는 싸움에 자기 답을 우겨대는 싸움이다. 아이는 Ctrl+C(복사), Ctrl+V(붙여 넣기) 일상 속 말다툼임을 안다는 눈빛으로 유유히 “잘 다녀올게” 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한 참을 우기다, 어차피 좁혀지질 않을 의견이기에 적당히 물러나는 것을 선택했다. 휴전 상태로 저녁거리를 사고, 아이의 일정을 함께 소화 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 없듯 저녁을 해서 먹고 치웠다. 여유가 있는 저녁이면 남편과 마실 겸 산책을 위해 동네 한 바퀴를 돈다. 낮에 있었던 차와 관련한 다툼이 못내 신경이 쓰였는지 그는 딱 한잔만 하러 나가자고 제안을 했다. 아이는 점점 산책 나가는 일이 드물어졌다. 제 할 일이 많아졌고, 부모의 시간과 분리 중인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그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안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잘 모르는 듯싶지만.
“네가 좋아할 만한 안주집을 찾았지. 연탄 닭발 어때?”
“좋지. 오늘은 소주 각이네.”
그의 말처럼 매콤하고 불맛이 나는 닭발은 소주와 찰떡이었다. 단순하게도 싸우며 미워했던 마음이 어느새 사그라들어있었다. 그도 나와 살며 미치게 싫어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에게 물었다.
“내가 자기의 차_집착 때문에 환장하는 것처럼, 혹시 말인데……오늘은 딱 하나만 말해봐. 이건 진짜 못 참겠다는 거 있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제스처를 취했다.
“괜찮아, 판도라의 상자라고 해도 오늘은 무조건 수용해 보도록 할게! 약속해!”
“오늘 생각했어. 앞으로 차는 고쳐볼게. 진짜야~~~ 자리 옮기고 하는 건 안 할 거야.”
“그래? 앞으로 지켜보지. 근데 있어? 딱 하나만 말해. 많다고 다 쏟아부으면 오늘 큰 일 나니께~~“
“음~~ 사실. 다른 건 다 내가 수용이 되고 네가 안되면 내가 하면 되니까.. 하거든…근데, 애 옷을 개어 옷장에 넣을 때마다 내가 다시 정리하거든. 매번 헝클어져 있어. 볼 때마다 화가 나는데. 그것만 고쳐주면 좋겠어.”
“아~~ 그게 그렇게 환장할 만큼 싫어?”
“내가 네 옷장은 안 거드리잖아. 딸내미 옷은 어쨌든 우리 둘이 같이 넣고 빼고 하는데. 넣을 때마다 짜증이 나.”
솔직히,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열과 행을 맞추진 않아도 정리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자부하는 것은 나의 기준일 것이었다. 그럼에도 판도라 상자에서 하나만 꺼내라고 했는데 딸아이의 옷장이었다는 것이 의아했다. 오늘은 딱 하나씩만 주고받기로 했다. 무조건 수용해 보기로.
“오케이, 당신이 싫다고 하니 내가 노력함세. 열과 행을 최대한 맞춰 보겠어!!!”
기분 좋게 술 한잔 하고, 손을 맞잡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